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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l 09. 2020

후에의 매운 쌀국수, 분 보 후에

베트남 요리와 여행 이야기-2


 밤을 새워 북에서 남으로 열심히 철길을 달린 기차는 이른 아침 중부의 후에(Hue)에 도착했다. 해가 뜬 탓인지 객실 안은 벌써 더웠다. 겨울이라 우중충하던 북부의 하노이와는 반대로 이곳은 항상 여름인 듯싶었다. 어제까지 걸치고 다니던 자켓을 벗어 배낭에 쑤셔 넣었다.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기차는 플랫폼에 멈췄고, 나는 짐을 챙겨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주나 개성 같이 베트남의 옛 수도로, 흐엉 강이라는 커다란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다. 나는 강변을 따라 예약한 호스텔을 찾아 걸었다. 해는 이미 높게 떠 있었지만 길에서는 여전히 여름 아침의 습기를 머금은 상쾌한 냄새가 났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까지 수도의 역할을 수행한 도시는 때문인지 서양식의 커다란 석조 건물들이 길가로 늘어서 있었다. 지난 세기 초 프랑스인들을 위한 고급 호텔인 사이공 모린 호텔의 하얀 외벽이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호텔을 지나 골목 안에 있는 내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했다. 투숙객이 반나마 차있는지 10인실 방은 한산했다. 친절한 호스텔 스태프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내 침대가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머리맡의 창문으로는 길거리가 내다보였다.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은 여행객들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지나다녔다. 


 

 짐을 정리해두고 샤워를 했다. 머물 곳이 해결되니 배가 고팠다. 정오쯤 방을 나섰다. 분명 시간은 점심을 먹을 때지만 나는 아침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Breakfast'라고 써붙여진 식당을 보고 망설임 없이 들어가 앉았다. 여행자 거리 중간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이곳은 파스타에서 쌀국수로 모자라 스테이크까지 구워내는, 메뉴판이 두꺼운 곳이었다. 묵직한 메뉴를 받아 들고 나는 아침식사 장펼쳤다. 바게뜨를 기본으로 달걀, 치즈, 샐러드, 풀드 포크 다양한 옵션을 추가할 있었다.

 "바게뜨에 달걀 두 개, 레몬 아이스티 한 잔 주세요."

 "계란은 삶아드릴까요? 아니면 프라이나 스크램블, 오믈렛?"

 "프라이로 해 주세요. 그리고 버터도 조금만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고, 나는 빵을 찢어 버터를 발랐다. 옛날 중국집 볶음밥에 올라가던 프라이처럼 달걀은 웍에 빠르게 튀겨낸 듯 가장자리가 바삭바삭했다.     

           


 이 도시 오고 싶었던 이유는 후에 성 때문이었다.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만든 이곳은 왕족들과 그 신하들만 살 수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도시였다. 장방형의 성채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어 문으로 난 다리를 건너야만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맥주를 한 캔 사 마시고 수련이 가득 떠있는 해자를 지나 왕궁 내부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 낮술을 마시면 술이 잘 오른다. 기분 좋게 느릿느릿 발이 가는 대로 성 안을 걸어 다녔다. 베트남 전쟁시기 남북 베트남의 사이에 위치해 많은 건물들이 파괴됐지만, 이후 복원을 통해 어느 정도의 모습을 되찾았다.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성도 넓은 탓에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조용한 후원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붉고 노랗게 칠해진 담벼락 사이를 걷고 있으니 신비로운 세계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기울어진 담장과 여기저기 이가 빠진 포도(道)는 왕궁을 여러 갈래로 구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역들은 좁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문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기분이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났다. 더운 지역에 있어서 그런지 궁 안에는 열기를 식히기 위한 연못들이 많았다. 연못가의 제단에는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누가 피웠는지 향이 가득 꽂혀 있었다. 풀숲에서는 풀벌레들이 우는 옥타브 높은 소리가 났다.          



 성을 나와 다시 시가지로 걸었다. 성에서 여행자 거리까지는 걸어서 40분 남짓 걸린다. 오토바이를 타도 되는 거리지만 한번 걸은 김에 끝까지 걷기로 했다. 온 길을 되짚어 해자를 건넜다. 이어 커다란 흐엉 강이 나왔다. 다리 위에는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튿날에도 아침 일찍 다리를 건넜다. 강 건너편 티엔무 사원으로 목적지를 찍고 그랩 바이크를 불렀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강바람을 맞았다. 후에 성의 서쪽에 있는 이곳은 19세기에 지어진 성보다 200년 정도 먼저 지어진 유서 깊은 불교 사원이다. 사원이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는 강이 휘돌아가는 풍경이 잘 내려다보였다. 계단을 올라가 절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커다란 탑이 세워져 있었다. 거친 벽돌을 7층 높이로 쌓아 올린 이 탑은 천 년의 간격을 두고 중국 시안에 서있는 대안탑을 닮았다. 



 절의 가람배치는 우리나라와 큰 틀에서 유사하다.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불상이 안치된 본당이 나오고, 본당 뒤로는 아름답게 꾸며진 후원이 있다. 분재로 장식된 정원과 오래된 건물 곁을 걷다 생뚱맞게 옛날 자동차 한 대가 세워진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곳은 베트남의 한 스님을 위한 기념관이었다. 틱꽝득 스님은 1963년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탄압 정책에 반발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소신공양을 행했고, 가부좌를 튼 채로 불타 죽었다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전시된 자동차는 그때 사이공까지 타고 간 자동차를 보존해둔 것이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등신불에 대한 섬뜩하리만치 생생한 묘사에 읽어내기가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접한 소신공양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종교적인 열망 하나로 인간의 감각 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작열통을 견뎌낸 그에게 경외심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사원을 나와 한산한 길을 걸었다. 외국인인 내가 길을 걷고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냐고 말을 많이 걸어온다. 나중에는 뚜 하는 경적 소리만 울려도 손을 저었다. 후에 성까지 3킬로미터 남짓한 길을 걸으니 등에서 땀이 났다. 땀을 식히려 들른 카페에서 받아 든 메뉴판은 베트남어로만 쓰여있었다. 느낌대로 위에서 다섯 번째 메뉴를 찍어 주문을 했고, 내가 고른 것은 딸기가 들어간 밀크쉐이크였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 앉아서 음료를 마셨다. 오늘 밤의 계획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술도 마시고 싶었지만 우선 배가 고팠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여행자 거리로 돌아가 호스텔 스태프가 추천해줬던 식당으로 향했다. 어제저녁에는 웨이팅이 있었는데, 지금은 애매한 시간대 때문인지 손님이 없다. 마담 뚜(Madam Thu)는 다양한 종류의 베트남 요리를 파는 곳이다. 반쎄오나 넴루이 같은 요리 말고도 볶음밥이나 쌀국수 같은 비교적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있었다. 나는 후에의 전통 요리법으로 만든 쌀국수 분 보 후에(Bun bo Hue)와 스프링롤을 주문했다. 



 분 보 후에는 여타 베트남 쌀국수와는 달리 국물이 빨갛다. 소고기와 고추로 맛을 낸 국물에 레몬그라스 향까지 가미되어 태국의 국물 요리인 똠양꿍과 비슷한 맛이 났다. 면도 북부의 얇은 면인 포(Pho)와는 달리 우동처럼 둥글고 조금 더 굵다. 국수와 거의 동시에 새우를 넣은 스프링롤이 나왔다. 라이스페이퍼에 새우와 야채, 쌀국수 면을 넣고 돌돌 말아낸 롤은 작은 접시에 소담히 담겨있었다. 나는 하나를 집어 땅콩 소스에 찍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찐득한 연갈색 소스가 겉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패션후르츠가 디저트로 나왔다. 이제껏 '패션후르츠 맛'은 많이 먹어봤지만 실물을 접한 건 처음이다. 잘린 단면으로 보이는 노란색 과육에는 씨가 가득 박혀있었다. 작은 숟가락으로 속을 긁었다. 과일에서는 풍선껌 맛이 났다. 씨는 먹어야 할지 뱉어야 할지 몰라 와드득 씹어먹었다. 포도씨를 씹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실수로 포도씨를 삼키면 누나가 배에서 포도가 자란다며 놀리곤 했는데, 패션후르츠 씨를 삼키며 그 생각이 났다.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물을 부어주었다.



 다시 돌아온 호스텔 방에는 새로운 투숙객이 들어와 있었다. 만 19세의 독일인 필립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누나와 함께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잠깐 누나와 떨어졌다는 그는 어울릴 친구를 찾는 듯했고, 우리는 밤거리로 함께 나갔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한 루프탑 펍이었다. 그곳은 특이하게 커다란 테이블 하나에 손님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다. 우리도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하노이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다는 프랑스인 마리앤은 몇 번이나 내 R발음의 '마리앤'을 목을 긁는 소리인 '마히-앤'으로 고쳐주었다. 꽁지머리를 한 펍의 사장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워터파이프로 타바코를 피워댔다.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의 파이프에서는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뻐끔뻐끔 뿜어져 나왔다. 필립과 벨기에인 에밀은 위드를 나눠 피웠다. 잎담배의 고소한 냄새와 위드의 쌉쌀한 쑥뜸 냄새가 뒤섞였다.

 "우리 다른 데로 옮길까?"

 누군가의 제안에 우리는 근처 다른 술집으로 향했다.

 "여기 소주 파는데, 너 소맥 잘 만들어?"

 "재즈 역시 한국인 다 됐네."

 광주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미국인 재즈와 마이클은 메뉴판에서 소주를 발견하고 언제 주문까지 했는지 나에게 초록빛 병을 내밀었다. 이런 게 있으면 빼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친구들의 글라스를 걷어 술을 섞었다. 그리고 냅킨으로 잔 입구를 말아 쥐고 뿌연 거품을 가득 내서 다시 돌려줬다. 가득 채워 보낸 잔은 빈 잔이 되어 자꾸 내 앞으로 돌아왔다.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면 술을 빨리 마시게 된다. 한국 게임, 미국 게임, 유럽 게임 모두 제각각 자기가 유리한 게임을 하나씩 꺼내놨다. 나는 한국의 클래식 게임인 369를 골랐다. 

 "아시안과 숫자 게임을 한다고? 넌 이미 진거야."

 "지랄, 그건 생각 못했네."

 사람도 많고 게임 템포도 빨라 술병이 빨리 쌓였다. 자정이 훌쩍 넘어 종업원은 우리에게 마감 시간임을 알려왔고, 우리는 아쉬웠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곧 누군가 '가라오케?'라고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또 누가 들었는지 가라오케에 데려다주겠다는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말을 믿고 술에 취한 우리는 헬멧도 쓰지 않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나와 마리앤이 탄 오토바이는 다리 위를 빠르게 달렸다. 축축한 밤이슬을 머금은 강바람이 맞은편에서 때려와 구름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었다. 세 명이 무리하게 올라탄 오토바이는 자꾸 휘청거렸다. '떨어지면 죽겠구나.' 와중에도 죽기는 싫어 시트를 꼭 움켜쥐었다.   

 결국 우리는 허름한 가라오케에서 바가지를 쓰고 나왔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테지만, 가격을 듣고 술이 확 깨버린 우리는 여행자 거리까지 걸어왔다. 한 시간 전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던 다리를 터덜터덜 되짚어오며 경솔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거보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 뒤질 거 같아, 지금 여기서 해결할 사람?"

 에밀의 제안에 우리는 난간에 기대 검은 강을 향해 오줌을 눴다.   

 "난 여기서 수영 좀 하다 가려고." 

 오줌을 누며 필립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물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 설마 악어라도 있을까. 저런 큰 강에 악어는 없을거야. 갑자기 물에 들어가고 싶어서." 

 "난 그냥 갈란다. 내일 신문에나 실리지 마."

 마리앤과 에밀은 필립을 따라 수영을 하러 강변으로 내려갔고 나는 앞서 걸어가는 미국인들을 쫓아갔다.

 "야, 들어봐. 쟤네들 지금 수영하러 강가에 내려간 거 알아?"

 "미친 유럽 놈들." 재즈와 마이클은 고개를 저었다. 

 필립은 동이 틀 무렵 물을 뚝뚝 흘리며 호스텔에 나타났다. 나는 그가 들어오는 소리에 선잠에서 깼다. 

 "진짜 수영했어?"

 그는 조용히 엄지를 세워 보였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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