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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n 11. 2021

다낭에서 망고먹기

베트남 요리와여행 이야기-4

 기차를 타고 다낭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를 넘어서였다. 내일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일찍 다낭에 내려와 함께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공부했던 이 친구들은 곧 졸업을 앞두고 있고, 나 혼자만 휴학을 한 탓에 30학점은 더 들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졸업여행인 셈이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오후 3시로 예정된 친구들의 도착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윤과 현이는 출국장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올 때 별일 없었고?"

 "어어 근데 배고프다 빨리 밥부터 먹자"

 "그래 가자 밥 먹으러"

 현이는 깔고 앉은 캐리어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윤은 기다란 검지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그리고 꽁초는 멀리 날려 보냈다.


 유튜브를 좋아하는 현이는 이미 여행지에 대해 예습을 마쳤다. 그런 그가 베트남에서의 첫 끼니를 해결할 장소로 고른 곳은 목 해산물 식당(Moc-Seafood). 우리는 택시를 타고 미케 해변 앞에 내렸다. 식당 앞에는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메뉴를 보며 토론을 하는 사이, 이미 우리 자리가 준비됐다며 종업원들은 우리를 안으로 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멋쩍어진 우리는 그들을 따라 '준비가 완료됐다는'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에는 수많은 종류의 해산물들과 그에 맞먹게 많은 가짓수의 요리법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현이는 새우를 먹고 싶어 했다. 나는 가리비, 윤은 문어를 각각 골랐다. 다들 한국에서도 먹던 익숙한 재료를 골랐지만, 이곳의 요리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바가 없다.

 "요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노말, 노말이요."

 그들은 우리의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엄지를 세우고는 물러갔고, 곧이어 요리가 담긴 접시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나는 부산에서 먹는 조개구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청사포에 있는 포장마차 골목에서 양은냄비에 담긴 미역국과 함께 먹는 게 좋다. 비록 미역국은 없었지만, 이곳에서 먹는 가리비 요리도 나쁘지 않았다. 파와 마늘, 버터의 조합은 어느 재료와 어울려도 꽤 괜찮은 맛을 낸다. 다른 테이블에서 먹던 커다란 블랙 타이거 새우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비싼 가격에 우리는 보통 크기의 새우를 골랐다. 접시에는 갈릭버터 소스가 끼얹어진 새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소스의 맛에 감명받은 우리는 같은 소스의 다른 요리를 주문하기 위해 종업원을 불렀다. 

 "바다 고동도 한 접시 주세요. 갈릭버터 소스랑 같이요."

 하지만 소라와 같다고 생각했던 베트남의 바다 고동은 우리가 먹기에는 많이 쓰고, 비렸다. 우리는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식당을 나와 해변과 밤거리를 산책했다. 과일가게를 찾고 싶었지만 밤에 영업을 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파릇한 망고를 사들고 호텔방으로 들어와 우리는 둘러앉았다. 그리고 토론을 시작했다. 왜 망고가 초록색 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잘라야 할까. 

 "내가 유튜브에서 본 대로 해볼게. 칼 줘봐"

 현이는 호텔방에 있던 버터나이프를 건네받고 껍질을 얇게 벗겨내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망고와는 달리, 덜 여문 망고의 껍질은 사과처럼 단단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방법을 바꿔, 과육과 함께 껍질을 두껍게 썰어냈다. 뭉툭한 칼이 뜯어내듯 지나간 길로 노란 과즙이 흘러내렸다. 해체 작업이 끝난 뒤 우리 앞에는 너덜너덜한 망고가 남았다. 우리는 한 조각씩을 씹었다. 내가 알던 것과 달리 과육이 단단했고, 굉장히 신 맛이 났다. 망고는 겨울이 제철이라는데, 우리는 아마 덜 익은 것을 산 것 같다. 

      


 덜 익은 망고 때문인지 아침에 배가 아팠다. 오늘의 날씨는 우중충했다. 나는 흐린 날씨에는 머리가 자주 아프다. 춥지는 않았지만 따끈한 쌀국수를 한 그릇 사 먹었다. 다낭에 오래 있을 예정은 없고, 오래된 항구도시인 호이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버스는 1시간에 1대씩 핑크 성당 앞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성당 앞 골목에는 어디에도 호이안행 버스가 온다는 표시는 없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성당 앞을 서성였다. 

 다낭의 랜드마크인 핑크 성당은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인증샷을 찍고 가는 장소다. 하지만 흐린 날씨 탓에 대성당은 그리스 신전처럼 치장을 한 유원지 초입의 싸구려 모텔처럼 차가워 보였다. 우리는 성당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 옆에 가방을 깔고 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다행히 우리가 포기하기 전에 낡은 버스가 굴러왔고, 우리는 이미 사람으로 꽉 찬 버스에 올랐다. 이어 우리에게 다가온 차장에게 돈을 건넸다. 아주 싼 값의 운임이었다. 대신 버스는 중간중간 멈춰 승객들을 계속 태웠다. 안 그래도 좁은 버스가 터질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덜컹이는 길을 그대로 느끼며 창문 밖만 바라봤다. 호이안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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