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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6. 2023

맛있는 망고 같은 곳_이스탄불

유럽 도시와 사람 이야기-2

#2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깊고 진하다. 3박 4일 동남아 여행에서 먹었던 맛있는 망고 이야기를 3년 4년째 질리지도 않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점에서 나는 이스탄불에 남겨둔 기억이 많다. 그것들을 가끔 찾아 돌아볼 때마다 나는 이 도시에 다시 오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오랜만의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첫 도시로 이스탄불을 놓는 것에 나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아시안 사이드의 카드쿄이에 숙소를 잡는다. 대륙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반대편으로는 부두에서 15분마다 페리가 다니고, 해협 아래를 지나는 지하철도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나쁘지는 않다. 비잔티움 혹은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 도시의 오래된 이름을 간직한 유럽 사이드의 골든혼은 유서 깊은 구시가지지만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번잡할 뿐 아니라 물가도 훨씬 비싸기 때문에 일주일 이상 머물기는 힘들다.

카드쿄이 거리

  며칠을 쉬고 알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리는 4년 전 여행에서 만났던 누르의 친구다. 하지만 누르는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안탈리아로 내려가버렸고, 대학원을 다니는 알리만 이스탄불에 남았다. 우리는 유럽 사이드의 니샨타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장소인 니샨타쉬는 부촌이다. 깔끔하게 구획된 시가지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19세기풍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명품샵과 고급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나는 알리를 만나기 전 동네 구경도 할 겸 일찌감치 가서 아침을 먹었다. 하디카(Hadika Kahvalti evi)는 터키식 아침식사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한, 그렇기 때문에 조금 비싼 식당이다. 터키식 아침식사인 카흐발트에는 대략적인 공식이 있다. 둥근 접시에 토마토와 오이가 깔리고, 이어서 몇 종류의 치즈, 올리브와 계란, 햄, 그리고 버터나 카이막이 담긴다. 접시 다음으로는 부드러운 바게트 같은 식감의 터키식 빵인 에크멕이 든 바구니와 차가 따라 나온다. 좋은 밀이 많이 나는 터키는 빵이 맛있다. 어딜 가서 어떤 요리를 주문하든 따라 나오는 빵은 우리나라 식당의 공깃밥 같다. 다만 공깃밥과 달리 추가를 해도 대부분 돈을 안 받는다.

터키의 일반적인 아침식사

 하지만 이곳의 아침식사는 그 공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건강한 아침식사라는 콘셉트에 맞춰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스와 치즈의 가짓수가 훨씬 많았고, 직접 만들었다는 여러 종류의 절임이 작은 그릇에 담겨있었다. 나는 계란이 먹고 싶어 터키식 계란 요리인 메네멘을 추가 주문했다. 따뜻하고 축축한 메네멘을 먼저 떠먹고 딱딱한 깨빵인 시미트에 카이막과 꿀을 발라먹었다. 깨와 유지방의 고소함과 꿀의 끈적함이 잘 어울렸다. 전라도의 백반집에 간 것처럼 찬의 가짓수가 많아 물리지 않고 빵과 차를 계속 먹었다. 꽤 오랜 시간 식사를 했는데도 친절한 직원이 와서 빈 찻잔을 계속해서 채워줬다.    

하디카 카흐발트

 약속시간 전까지 거리를 돌아다녔다. 길은 깔끔했다. 다만 언덕이 많아 등에 금방 땀이 났다. 땀을 식히려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터키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음료를 천천히 마셔야 한다. 음료를 다 마시면 지켜보던 직원이 잔을 홀랑 치워버리기 때문에 뭔가 더 주문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빈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곳 특유의 문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터키 친구들도 그건 주문을 더 하라는 압박이라고 확인을 해줬다. 그래서 나는 항상 한 모금을 잔 밑에 옅게 깔아 둔다. 그러면 직원들은 계속해서 잔을 흘끔거릴 뿐 치워가지는 않는다.  

니샨타쉬 거리

 니샨타쉬의 한 펍 앞에서 알리를 만났다. 그는 4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 있었다. 알리는 터키 남자의 숙명이라며, 곧 머리를 밀고 다녀야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맥주를 주문하고 밀린 근황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잘 지내냐는 내 물음에 알리는 2년 전에 헤어졌다고 짧게 대답했다. 오르타쿄이에 있는 알리의 집에서 누르와 알리의 여자친구 외즈게와 함께 자주 놀았는데, 이제는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기본 안주로 놓인 짭짤한 땅콩을 집어먹었다.

 알리는 전화를 받았고, 탁심으로 자리를 옮겨 친구 커플과 만나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이스탄불의 최대 번화가인 탁심은 이곳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니샨타쉬가 좀 더 고지대에 있는 덕분에 우리는 내리막길을 걸어가 아흐메트와 멜리스와 합류했다.


 아흐메트와 멜리스는 알리와 같은 이스탄불 공과대학(ITU) 학생이었다. 지금은 4년 차 캠퍼스 커플이라며, 멜리스가 신입생 때 바둑 동아리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동양인인 나에게 당연히 동양의 기예인 바둑에 능숙할 것으로 기대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바둑판으로 오목과 알까기 이외의 게임은 해본 적이 없다. 자기들도 부모님의 권유로 배웠다며, 어릴 때는 바둑이 싫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좋아졌다며 웃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부모님들도 산만한 자식을 바둑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막상 바둑 학원에 가면 산만한 애들만 모여있어 더 정신이 없더라는 친구 말이 떠올랐다.

 요즘 이스탄불의 힙스터들은 밖에서 술을 먹는다는 말을 듣고 우리도 테켈(Tekel, 터키의 주류 판매점)로 향했다.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북적대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비피터 진과 슈웹스를 샀다. 다들 길거리에서 플라스틱 컵에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어 우리가 서 있을 자리를 찾기도 힘들었다.  

 "왜 술집 안에서 안 마시고 나와서 서서 마시는 거야?" 내가 물었다.

 "술집 안에서 마시면 훨씬 비싸. 밖에서 취한 다음 술집이나 클럽에 들어가 노는 거지." 아흐메트는 많이 놀아본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 동네 출신인 아흐메트가 고등학생 때 술을 마시던 공원이 근처에 있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공원에서는 해협이 내려다보였다. 불빛에 둘러싸인 좁은 바다는 호수 같았다. 공원에는 우리 말고도 술을 마시는 무리들이 많았다. 그들과 눈인사를 하며 계단에 앉았다. 잔인할 만큼 진의 비율이 높은 진토닉은 맛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얼른 병을 비우고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술을 따라 마셨다. 입에서 슈웹스와 진의 씁쓸한 맛이 가시지 않고 맴돌았다.

 멜리스는 록클럽에 가고 싶어 했다. 록클럽의 무대에서는 밴드가 딥퍼플을 연주하고 있었다. 여자 보컬이 낀 팔찌가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무대 옆의 엠프에서 터져 나오는 베이스와 드럼비트가 몸을 울렸고, 사람들은 그 울림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나는 이미 피곤했다. 하지만 피곤함을 잊기 위해 더 취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을 헤집고 바 앞으로 가 바텐더에게 롱아일랜드를 주문했다. 바텐더는 꽤나 자세하게 내 취향을 물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고 술을 받았다. 바 옆에 자리를 잡고 서서 두 잔 째를 마시니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고, 누군가에게 이끌려 잠깐 춤을 췄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세 잔 째의 롱아일랜드를 시켜줬다. 다음날의 숙취가 걱정됐다. 기억하지도 못할 얕은 이야기를 하고 잔을 홀짝이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고 알리가 택시를 불러줬다. 택시에 얹혀 가면서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내 방의 침대에 누워 다음날까지 계속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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