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노선인 발칸 급행열차(Balkan express)를 타고 하룻밤을 꼬박 달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내렸다. 소피아에서 며칠을 쉬고 베오그라드행 버스를 탔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마약상이었다. 그는 말이 많았다. 미국인인 그는 얼마 전 불가리아에서 결혼을 해 국적을 취득했다며 세르비아에는 음악 축제인 엑시트 페스티벌(Exit Festival)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축제에서 팔 마약을 자기 짐 이곳저곳에 숨겨뒀다며 국경에서 절대 안 걸리는 방법이 있다고 신이 난 듯 설명을 이어갔다. 그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꺼낸 소독 티슈 사이에는 지퍼백에 포장된 종이에 적신 엑스터시가 들어있었다.
"하나 줄까?"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종이를 조금 찢어 종이 조각을 혀 위에 올렸다. "잘 봐." 그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약에 서서히 취해가는 사람 옆자리에 앉아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슬슬 짜증이 날 때쯤, 다행히 버스는 베오그라드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티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겨울에 한국에서 헤어지고 몇 달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후덥지근한 플랫폼에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녀의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도심을 벗어난 데딩예(Dedinje) 지구에 있는 할머니집은 깔끔한 이층 단독주택이었다. 1층 테라스에는 할머니의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고, 의자 위에는 키릴로 인쇄된 신문이 반쯤 접혀 있었다. 집 안의 벽난로와 장식장마다 그리스정교의 이콘이 엄숙하게 놓여있어 할머니의 신앙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경건하게 집을 구경하고 내 방을 받아 짐을 내려놓고 거실로 나왔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점심은 먹었니?" 할머니의 물음에 우리는 식탁에 앉아 밥부터 먹어야 했다.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점심 식사 이후 날마다의 하루는 단순했다. 눈이 떠지면 일어났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빵집에서 고기가 든 페이스트리인 뵤렉(Borek)을 사거나 냉장고에서 달걀과 야채를 꺼내 오믈렛을 해 먹었다. 그리고 정원에 앉아 커피 가루를 바닥에 천천히 가라앉혀 먹는 진한 터키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각자 방에서 책을 읽거나 동네를 산책했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벽이 두꺼운 옛날 집이라 방 안은 시원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누워있으면 잠이 잘 왔다.
우리는 해가 넘어갈 때쯤 집을 나섰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티나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거나, 혹은 시내로 나가 타베르나에 앉아 과일로 증류한 전통 브랜디인 라키야(Rakija)를 마셨다. 라키야는 다양한 맛이 있지만 나는 모과로 만든 둔야(Dunja)나 살구로 만든 카이씨야(Kajsija)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든 터키 술 라크(Raki)와 라키야는 발음도 도수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나는 라크의 아니스 향이 화장품 같아서 거부감이 드는데, 이 술은 고도주임에도 불구하고 과일향과 목넘김이 좋았다.
라키야와 탄산수
메이브는 티나의 친구다. 그녀는 옥상이 딸린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메이브의 초대에 응해 우리는 맥주를 사서 그녀의 아파트에 놀러 갔다. 메이브는 병아리콩과 루꼴라가 들어간 샐러드를 만들어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옥상은 놀러 온 친구들로 차기 시작했다. 다들 담배를 말아 피웠고 내가 옥상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네베나가 쌍둥이 동생이랑 시내에 있다는데 보러 갈래?" 티나가 제안했고, 우리는 메이브의 아파트를 나서서 시내 중심부인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로 향했다.
메이브의 아파트
"우리가 시내에서 술 마실 때 늘 가는 곳이 있어." 티나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아계 미국인이지만 베오그라드에서 몇 년째 살고 있는 메이브가 우리를 이끌었다. 어지러운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걸었고, 건물들로 둘러싸인 안마당 같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술집이었고, 중앙의 공터를 향해 각자의 야외 테이블을 펼쳐두고 있었다. 티나의 친구들이 있는 자오크레트(Zaokret)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분위기의 바였다. 네베나와 그녀의 쌍둥이 남동생 바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칠이 벗겨진 야외 테이블에 낮은 의자를 받아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독립 영화감독인바샤와 프리랜서모델인 네베나는 둘 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였고,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았다. 새로운 친구들이 오고 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친구, 친구의 친구, 혹은 아무도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잔을 부딪혔다. 한국에서의 술자리와 가장 다르다고 생각했던 점은 이런 개방성에 있었다. 또 한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술게임으로 방향을 틀어버리곤 했던 내 경험과 달리 모두가 같은 자리에 앉아있을 뿐 각자의 대화 상대와 각각의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대화 상대는 마치 무도회의 파트너가 바뀌듯 계속해서 바뀌었다. 맥주 한 잔과 라키야 네 잔을 마시는 동안 나는 메이브의 친구의 친구인 크로아티인 라라를 소개받았고, 바샤가 사 온 주키니 호박이 올라간 피자에 케첩을 뿌려서 먹었고, 지나가던 폴란드인 관광객 가브리엘과 베로니카를 만났다. 가브리엘은 코리아의 파친코가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강원랜드?"내가 되물었다. "노, 코리안 드라마." 찾아보니 애플 티비의 드라마였다. 아쉽지만 애플 티비는 구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술자리의 텐션은 점점 높아졌다. 화장실에 다녀와 코를 킁킁거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누구는 점점 말이 많아졌고, 누구는 춤을 추고 싶어 했다. 베오그라드는 선상 클럽으로 유명하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사바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클럽으로 개조된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검은 강물 위에 떠서 배들은 집어등처럼 창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여러 배들 사이에서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배는 흔들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불안해 보였다. 나무로 된 갑판 위에서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그 위에 던졌다. 급조한 플로어의 싸구려 스피커에서 나오는 갈라지듯 메마른 소리가 귀를 찔러 따가웠다. 하지만 플로어가 무너져 배가 가라앉는대도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