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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ASIS OFFICE Sep 20. 2018

무엇을 팔 건가요?

시장에도 콘셉트가 있다

"뭘 파실 건가요?"

"커피랑 에이드, 파운드케이크랑 마들렌 같은 간단한 것들이요."

"많이 만들어보셨어요?"

"아니요. 이제 학원도 다니고 슬슬 배워보려고요."




특정인과의 대화가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여러 차례 나눈 이야기다.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나 팔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자신의 가게 그 자체다. '할 줄 아는 게 자장면과 짬뽕뿐이라서'라든가 '손님과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라든가 하는 절박함이나 의지마저 찾기 힘들다. 무엇을 팔지를 정하지 않고 가게 자리부터 구하고 그릇이나 가구부터 사다가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할 거라는 착각이 상당수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남들 다하는 쉽고 뻔한 메뉴로 다른 가게와 차별화를 주려면 그들보다 맛있어야 한다. 적어도 비슷하게는 해야 하는데 경험조차 없다면 어떻게 다른 가게로 가는 사람의 발길을 돌리게 할 것인가. 음식이 완벽하지 않다면 음식에 대한 열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 해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그것마저 없다는 얘기다. 음식이 아니라면 서비스나 사람에 대한 욕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안 왔으면 한단다. 그러면서 기대하는 매출은 하늘 아래 뫼로 생각한다.  


간혹 맛도 서비스도 엉망인데 인테리어나 좋은 자리(빼어난 주위의 자연환경)를 무기로 인기를 끄는 곳이 있다. 또는 하늘이 도운 듯 모든 것이 실망스러운데 잘 되는 곳도 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잘된 곳이다. 하지만 운을 믿고 가게를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가게의 세 가지 조건은 맛, 서비스, 분위기다. 그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성공확률은 낮아진다. 우리는 세 가지 모두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실패 확률을 낮추고 성공확률을 높이고 더불어 그 크기도 키울 수 있다. 셋 중 두 가지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한 가지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맛과 분위기가 좋은데 사장이 불친절하다는 소문이 나면 그건 실패와 직결된다.




은 보통 이상은 해야 한다. 맛없으면 안 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생각나는 곳 정도만 돼도 성공한다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얘기한다. 지금 잠시 생각해보라.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을 맛있는 집, 결혼식 사회와 축가를 부탁할 친구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보다 갈만한 곳이 없다.
맛이 있다면 조금 허름해도 직원이 좀 불친절해도 식사 후에 친구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맛있게 먹었어?"




나는 내성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외향적으로 바뀐다. 세상이 나를 바꾼 건지 내가 세상에 맞춘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필요에 의해 서비스에 적합한 인간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인상이 너무 안 좋아서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럴 땐 의식적으로 많이 웃는다거나 편안한 느낌의 옷이나 안경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 나도 안경을 쓴다. 때론 수줍음을 타는 모습 자체가 순수하게 보여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사가 너무 잘된 나머지 '너 하나쯤은 안 와도 돼' 하는 식의 태도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여요?'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너 하나쯤'은 그곳의 모든 사람이 될 수 있고, '바쁜 거'는 언제든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너무 친절하지는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반드시 상냥해야 한다.




분위기는 주로 인테리어에서 온다. 우리는 인테리어와 함께 가게에서 틀어둘 음악까지 가이드해주는데 오감을 만족시켜야 감동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테리어는 맛이나 서비스에 비해 효과의 지속시간이 짧다. 후각이 오감 중 가장 빨리 지치 듯 인테리어는 사람들에게 가장 빨리 소모된다. 또한 가게 주인의 뚜렷한 철학이 배제된 인테리어는 그저 잠깐의 시각적인 자극일 뿐 금방 싫증 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최근에 생겨나는 힙한(?) 카페들이 오픈 초기와 다르게 손님이 없어 1년도 안돼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

무엇을 팔 것인가.
내가 잘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 지금 당장 잘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너무너무 잘하고 싶은 것을 팔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노력해서 만든 것을 찾아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분 나쁜 표정이나 말투로 내 음식에 마이너스 점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설령 내 음식을 나의 기대보다 맛없게 먹었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지는 말자. 음식은 마음으로도 먹는다. 인테리어는 이 모든 것을 기준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인테리어는 당신이 판매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 가게 주인과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는 공간과 콘텐츠 간의 이질감을 주어 심리적인 편안함을 잃게 한다. 인테리어만 멋지게 하고 sns를 이용해 이슈화 시키려거든 자신이 먼저 그만큼 멋있어야 한다.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거나 스타일이 좋다고 멋있는 사람은 아니다.




고추와 고추가루 엿기름 전문





오래된 재래시장에 있는 작은 점포들에도 저마다 잘하는 품목이 있고 콘셉트가 있다. 수입과일만 파는 곳이 있고, 젓갈만 파는 곳이 있다. 같은 채소도 큼직큼직하게 쌓아두고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소분해서 2인 가정에서 먹기 좋게 파는 곳이 있다. 상냥한 이모가 있어서 품질은 다른 곳보다 특별히 싱싱하지 않지만 찾는 곳이 있고, 무뚝뚝한 삼촌이지만 살 때마다 덤을 듬뿍 받아서 기분 좋은 곳이 있다. 사람이 많아 정신없는 가게지만 산지직송이라 가격이 싸고 양이 많은 곳도 있다. 이처럼 시장에도 차별화를 위해 저마다 콘셉트를 잡고 특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두 번째 가게에서는 조용한 카페로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팔았고 도심 속의 휴식을 팔았다. LP로 옛 음악을 틀어 3,40대에게는 옛 추억을 소환하고 20대에게는 부모의 추억을 팔았다. 가장 좋은 커피를 하는 원두 회사 중 하나의 원두를 사용하고 다른 곳에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이용한 음료를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맛이 있었다. 매번 케이크와 주스는 품절되었고 한판씩 주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눈이 편한 색의 빛을 간접등으로 사용하고 바쁜 시간에도 LP는 꼭 손으로 판을 뒤집고 바꿔가며 틀었다. 손님들은 다음 곡에 대한 호기심까지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아끼는 LP를 들고 와서 틀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시작한 공간을 함께 만들었다. 떠드는 손님이 있으면 우리보다 그들이 먼저 눈으로 레이저를 쐈고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내어줬다. 우리는 사람들이 아끼는 공간을 만들었다.








 







tip.
메뉴에 자신이 없다면 가능한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메뉴는 하지 말자.

흔한 메뉴는 비교되기 쉽다.

다른 가게보다 맛없다면 사람들은 맛있는 가게로 갈 것이다.

아니면 그곳들을 버리고 우리 가게로 올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나 편안함 같은 것
다른 가게에는 없는 매력적인 나 자신은 어떨까.










이 글은 영세자영업자를 기준으로 쓰는 글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대형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매장은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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