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국 Mar 04. 2019

연극

13. 자신의 현재, 과거, 미래를 내다보는 과정이다

연극도 일종의 교육이다그것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그러나 연극이 지나치게 전시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관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연극에 출연한 어린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직접 출연해 본 적이 없는 몇몇 어린이들은 구경도 하지 않는데 그들은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나는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연극은 어린이들에게 알맞아야 한다어린이의 환상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고전을 어린이들에게 상연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서머힐의 생활 전체가 우리가 자발적인 출연이라고 일컫는 연극의 한 부분이다이런 것을 익히기 위해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준다즉 상상으로 외투를 입어라그것을 다시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라꽃다발을 손에 쥔다그러고 그 꽃다발에서 엉겅퀴를 하나 찾아라...”

 자발적인 출연은 학교연극의 창조적인 측면이다우리의 연극은 창조력을 키우는 데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한 작품에 모든 어린이들이 출연할 수는 있지만 모은 어린이가 작품을 쓸 수는 없다어린이들은 모방을 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창작품을 상연하는 서머힐의 전통이 그들의 창조력을 훨씬 더 자극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1983년 교단에 첫 발을 들인 해부터 우리반에서는 연극을 시작했다. 첫 해에 한 연극에 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우리반 글쓰기 대표인 손**가 희곡을 마련하고, 양기봉이 자신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는 대조적인 화를 잘 내는 왈패인 극중 인물을 연기하고자 해서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1985년 12월, 학년말 시험이 끝났고, 방학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김미희는 희곡을 썼고, 아이들은 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대운 교장은 나를 불러서 학예회에 발표할 연극 대본을 가져오라고 했다. 대본을 읽어본 교장은 나에게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말라고 했다. 연극의 주인공이 가출을 하는 이야기는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전두환정권은 ‘건전’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곡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교장의 부당한 지시에 나는 화가 났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겪고 있는 청소년기의 혼란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들 스스로 혼란을 정돈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울고불고했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연극을 하지 못했다.


 1993년 12월, 학예회에서 노래극을 준비했다. 희곡을 누가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임정선이 노랫말에 따라 곡을 만들었다. 청음 능력이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임정선은 여러 곡의 노래를 만들었다. 무대에 오를 아이들은 열심히 노래를 외우고 동작을 익혀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원하는 다른 반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당시 공연했던 난우중학교 무용실에는 이전에 연극 수업을 했던 선생님이 마련한 암막, 무대 조명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대 조명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대 조명은 없었고, 암막의 일부는 떨어져 나가서 임시로 조치를 하고 공연을 했다. 공립학교의 문제가 열정적인 교사가 마련한 시설이나 장비들이 그것을 준비한 교사가 떠나면 망가진다는 것이다.


 2016년 10월, 시청각실에서 아이들의 노래극이 발표되었다. 3학년 모든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음악, 미술, 체육, 국어 여러 교과 시간에 준비를 한 노래극이다. 학급에서는 모둠별로 노래극을 준비했다. 학교 밖 노래극 전문가가 학생들의 준비를 도왔다. 학급별로 노래극을 무대에 올려서 학급 대표 노래극을 선정하였고, 모든 학급에서 학급을 대표하는 노래극이 결정되면 날을 잡아서 모든 학급의 노래극을 무대에 올렸다. 우수작품에 시상은 없다. 과정을 통한 아이들의 성장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무대에 오른 노래극의 준비부터 발표까지 교과별로 수행평가 기준을 가지고 평가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뒤에 우수작을 뽑아서 따로 시상하는 진부함은 없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활동을 통해서 교실에서 소외되었던 학생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고, 이 과정이 끝난 후에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3학년 1반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극이 무대에 올랐다.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여러 명의 연기자가 태극기를 흔들면서 부르면서 노래극이 시작되었다. 공연을 다 본 후에는 이 노래극을 마을 사람들이 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년부장에게 노래극을 학기말 시험이 끝난 후에 먹골역에 무대를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했지만, 아이들이 노래극을 무대에 올리려면 다시 연습을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아이들을 학교 밖 무대에 올려 학교 교육활동의 성과를 마을로 가져가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 마을의 성장에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추진하였는데 성사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2018년 1월에 관악중학교에서 발표된 마을과 연계한 교육활동의 성과 보고회에서 구본희선생님, 박래광선생님 등은 국어, 역사, 미술과와 연계하여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서 그것을 소재로 연극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린 사례를 소개했다. 멋진 사례였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그들의 현재, 과거, 미래를 극으로 표현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멋지게 성장한다. 연극을 무대에 올려,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무대에 오르는 경험은 어쩌면 인생 전체를 스스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 과정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현재, 과거, 미래로 확장하여 대본을 만들고, 동작을 익히면서 서로 어울어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 사이의 엉킴이 나타나고, 엉킴을 풀어내는 과정을 반드시 겪게 한다. 엉킴을 풀어내는 경험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하며 자신의 성장을 가져온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대에 오른 후에는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작가의 이전글 노동과 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