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교장공모제와 정치, 서머힐의 미래
이제 내가 어린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지금보다 더 귀에 거슬리는 시기가 오면, 나이를 먹으면 참을성이 많아진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한 어린이의 묵은 콤플렉스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 나는 이 어린이도 시간이 지나면 선량한 시민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는 불안을 덜어주지만 용기를 줄어들게 한다. 몇 해 전에 한 어린이가 일이 뜻대로 안 된다며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했을 때, 나는 쉽게 “그냥 뛰어내려!”하고 말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말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나는 이 세상이 서머힐의 교육방법을 그렇게 오랫동안 적용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도대체 그들이 이 방법을 한 번이라도 적용해 보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더 좋은 방법을 발견해 낼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의 이론만이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새롭게 더 나은 것을 연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치가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치적인 신문들은 항상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적인데,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한 가정이 수백 가지의 사회적인 미움으로 득실거리고 있는 나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이 깃든 행복한 가정이 우리 사회에 있을 수 있겠는가?
서머힐 자체의 장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서머힐의 장래는 인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세대들은 자유 속에서 자라야만 한다. 자유를 선물하는 이는 사랑도 준다. 그리고 사랑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서머힐의 니일 교장처럼 나 역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없지는 않지만, 명예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두 번의 교장 공모제에 지원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 두 번 다 떨어지는 일을 경험했지만 내가 교장 공모제에 나선 것은 명예욕 때문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학교의 모습을 만드는 데에 교장이란 자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형혁신학교가 생기기 전까지 내게 학교란 교과 지식을 전달하고, 학교교육계획에 의해서 교사에게 부과된 책무들을 다하며, 시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에서 요구한 사업들 중에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들이었다. 28년 동안 그렇게 교사로서 일을 하던 2011년에 소위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서울에 서울형혁신학교가 생기고,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아카데미 연수가 열렸다. 연수에서 일본의 서머힐 학교라 불리는 ‘기노쿠니 학교’의 학교장을 만났다. 학교에 대한 상상력이 다시 작동하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사용자인 정부의 교육에 대하여 일정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 때로는 단결된 행동으로 맞서던 상황에서 전교조와 동색인 진보교육감의 서울 교육에 새로운 상상력이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혁신학교 선도요원과정 직무연수를 듣기도 하고, 혁신학교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접하면서 상상력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필요한 근육의 힘을 길렀다.
2015년 1월에 태릉중학교 교장이던 백해룡 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였고, 3월에 서울형혁신학교인 태릉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태릉중학교에서 보낸 처음 1년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혁신학교가 왜 이것 밖에 못하나?’하는 마음에 혁신학교의 키잡이인 연구부장교사에게 이렇게 해보라고 서류를 내밀기도 했지만 원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품고만 살 수 없어 2016년부터 2년 동안 혁신업무를 담당하는 연구부장을 자처했다. 연구부장을 하면서 기획인 김미정 선생과 마음을 모아 생각했던 일들을 펼쳐 나갔다. 학년부 중심의 수업과 생활교육, ‘배움의 공동체 수업’, ‘학생 자치활동’은 이미 태릉중학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내가 주도한 것은 교원들의 소통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를 활성화 하고자 했다. 김형란 선생은 학생들의 화장과 두발에 대한 교사들의 지도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토론의 의제에 대하여 발제를 하였고 토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토론을 발제한 교사들의 없었다. 주로 내가 토론해야할 주제를 꺼내 발제하고 모둠 토론을 거쳐 전체 토론을 하는 식이었다. 토론을 통해서 교직원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에 대하여는 교장이 승인해달라고 했으며, 승인이 어려운 경우는 그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여, 교직원 회의에서 삼분의 이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교장의 판단을 따르도록 하는 규칙도 합의했다. 하지만, 교장이 승인하기 어려운 결정은 한 적은 없었다. 교원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교원학습공동체’를 적극 운용하였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 ‘회복적 생활교육’을 위한 학습 모임을 만들고, 직무연수와 연계하여 참여를 촉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혁신학교의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교장의 판단이 나의 판단과 다른 경우에 갖게 되는 한계가 컸다. 게다가 이○○ 교장이 새로 부임하여 그동안 내가 일구어 온 성과들을 해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의 고통이 커졌다. 교원학습공동체의 운영을 어렵게 하고,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해체하려 했으며,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가 사라졌다. 학생회 활동은 학생회가 제작해온 ‘태릉 뉴스’제작이 중단되거나 ‘한여름 밤의 콘서트’ 내용이 축소되면서 약화되었다. 교장의 철학과 의지가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교장 공모제에 두 번 도전을 하였다. 아쉽게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고 더는 내가 원하던 학교를 이루어갈 희망을 접었다. 그리고 퇴직을 결심하였다.(이전까지 나는 나의 퇴직 이유가 정년이 되었거나 아이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교장 공모제 응모는 명예 때문이 아니고 학교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내가 지원했던 학교에 교장으로 선정된 이들은 실패하지 않고 잘 할 것을 알고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애초 없었다. 그들도 학교 혁신의 방향을 잘 알고 실천해 왔던 나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변화를 믿는다. 아이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부족함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아이들이 겪는 문제들은 부모로부터, 환경으로부터 받은 문제들 때문에 생긴 것이며, 부모와 함께 변화를 도모한다거나, 어떤 경우에는 아이의 결심과 변화를 이끌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문제를 정확하게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교사 자신의 경험 안에 자신을 가둔 상태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또는 수업과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안에서만 아이를 바라봄으로써 문제아를 계속 문제아로 남겨 둔다. 아이들이 겪는 문제에 공감하고 지지하고, 아이가 겪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할 수 있으면 아이는 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의 문제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교사 자신의 삶도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문제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임용제도를 거쳐 교단에선 교사들이 모두 그러리라는 희망은 없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서머힐은 희망이다.
니일은 정치적인 것들은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얼핏 정치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영국은 한국의 정치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한국의 정치는 분단으로 인해 생긴 이데올로기가 오랜 동안 지배해왔던 나라이다. 지금도 종북, 빨갱이라는 표현을 통한 이념의 굴레가 정치판에서 서로를 얽어매기 위해서 쏟아진다. 일제에 협력했던 세력들이 분단 시대에 남한에 득세하여 분단 이데올로기와 결합하고, 자본주의와 강고한 유대를 형성하였다. 그런 이유로 사회 분열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집단들이 존재한다. 영국보다 더 진한 미움이 정치에 깊게 베어있다. 교육이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정치판을 갈아엎어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야 마침내 교육도 새로운 희망으로 정치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정치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다. 달라진 정치 상황이 교육에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교원이 시민권으로서 정치기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미움이 아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한국의 교육도 북유럽 교육처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삶의 바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가 아이들의 자유롭고 행복한 성장을 갖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은 경제, 자본은 여전히 사회에 미움을 낳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성장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서머힐은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