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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Mar 07. 2019

운동과 경기

15. 수영과 자전거, 올스타전으로 빛나는 구기대회

서머힐에서는 여름에는 하키를겨울에는 테니스를 많이 한다수영은 모든 학생들이 즐긴다

서머힐에서는 인위적인 체육이 없으며 어린이들은 놀이와 수영자전거 타기를 통해 육체적인 운동을 충분히 하게 된다그들은 집안에서는 탁구를 하거나 장기를 두며트럼프 놀이를 한다.

서머힐은 학과성적에 따른 상이나 성적표를 주지 않는다운동의 성과에 대해서는 상을 준다우리가 학업 성적에 따른 보상을 반대하는 이유는일은 그 자체만을 위해서 행해져야 하지 보상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테니스는 본질적으로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지리학은 그렇지 않다내가 지리학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남르이 이 분야에서 나보다 많이 혹은 적게 아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머힐에서는 운동이 본래의 역할을 할 뿐이다한 어린이가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얕잡아보거나 열등아로 취급하지 않는다.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둬라라고 하는 것이 어린이가 자기 자신으로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을 때 발견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내가 수영을 처음 배우게 된 것은 교사 1년차인 1983년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들의 수영강습 안내가 있었다. 학생들을 모아서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외 수영장으로 5일 동안 인솔을 하게 하였다. 수영을 지도하는 강사에게 나도 수영 강습을 함께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발차기, ‘음파’를 시작으로 강습을 받았다. 4일째에 물에 몸이 떠서 앞으로 가는 신기한 체험을 한 덕에 여름방학이면 학생들과 야외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호흡은 전혀 되지 않았지만, 물에 떠서 갈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도시 주변으로는 늘 하천이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학교에서 필수로 가르치지 않는다. 하천이 생활과 연결되지 못하고 관리만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에 두 개의 수중보를 세워 물을 가두어 배를 띄웠고 사람들은 배를 타면서 배를 띄운 이들을 배불리면서 한강 주변에 백사장을 잃었고 놀이를 빼앗겨야 했다. 여름이면 수십만 명이 강수욕을 위해서 모여들었던 노량진 백사장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에 물놀이를 하던 도림천은 도시화로 인해서 오염이 심해졌고 그곳에서 더 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수영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수영은 수영장에서나 할 수 있는 체육활동이 되고 말았다. 하천이 되살아나고 사람들이 하천의 물에 발과 몸을 담글 수 있게 된다면 수영은 더 이상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체육활동이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체육활동이 될 것이다.


 1993년 난우중학교에서 체육대회의 한 종목인 구기대회는 종전의 구기대회와 달랐다. 그 이전까지 구기대회는 예선을 거치는 동안 경기에서 패배한 학급은 탈락하고 이긴 학급이 올라가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체육대회에 결승전을 치르는 동안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의 관심은 뚝 떨어져서 체육대회 분위기가 썰렁했다. 하지만 그 해, 구기대회는 매 경기마다 선수 선발전이 되었다. 청, 백으로 나뉜 팀 안에서 토너먼트 방식이었지만 예선 경기에서 지는 반은 올스타전에 출전할 학생의 수가 적었고, 예선 경기에서 이기면 올스타전에 출전할 학생의 수가 많았다. 구기대회 하는 날은 청, 백의 올스타들이 경기를 하였기 때문에 경기의 수준도 높았고 자기반의 아이들이 뛰고 있었기 때문에 응원의 목소리가 높았다. 모든 학년의 모든 경기가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전까지는 구기대회가 끝나면 경기 중의 경쟁과 대립으로 인해서 후유증이 있었지만 그 해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이후, 나는 학교를 옮겨갈 때마다 구기대회에서 올스타전을 권유했다. 그러나 나의 권유를 받아들인 학교는 2017년 태릉중학교가 유일했다. 체육교사들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조금 더 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최근 들어서 ‘여학생 친화적 자전거 타기’라는 희한한 이름의 프로그램이 생겨난 덕분에 학교에서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전까지 자전거 타기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이 발명한 10대 발명품 중의 하나인 바퀴를 동력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동하는 자전거는 기후변화, 대기오염의 시대에 적응하는 중요한 이동 수단이 되었다.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에 나는 자전거를 만나지 못했다. 동네 친구들 중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자취를 할 때 세 들어 있던 집의 집주인의 손자들 덕분이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고, 그들이 가진 자전거를 가지고 인근에 위치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자전거를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배움이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9년 10월, 사당중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을 때에 우리 학급은 강촌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우리 반을 제외한 모든 반은 서울랜드로 활동을 갔다. 우리 반의 여러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왜 우리 반은 서울랜드로 가지 않느냐고 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여쭤보렴, 체험학습으로 기차를 타고 강촌으로 가서 아름다운 가을날 자전거를 타고 구곡폭포에 다녀오는 것과 서울랜드에 가서 놀이 시설을 타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체험학습으로 적절한지 물어보고, 부모님 중에 몇 명이라도 서울랜드로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들어오면 서울랜드로 가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더는 말이 없었다. 체험학습 당일, (육지현과 )두 명의 아이가 집결지인 청량리역에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를 했더니 서울랜드라고 한다. 당장에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두 명은 울면서 청량리역으로 왔다. 아이들과 강촌에 도착하니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아이가 두 명이 있었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그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고, 도저히 탈 수 없었던 한 명은 2인용 자전거로 나와 함께 구곡폭포 쪽으로 달렸다. 2인용 자전거는 신기하게도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의 대화에 아주 좋았다. 그날 나는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2인용 자전거에서 나눌 수 있었다. 이후에도 강촌으로 체험학습을 갈 때면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강촌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른 교사들은 서울랜드에서 아이들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지금쯤 백운 호수 주변 카페에서 차 한잔 나누면서 수다를 떨 시간인데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하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하지만, 체험학습이 그래서는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오래된 미래의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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