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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Mar 09. 2019

억압받는 어린이, 자유로운 어린이

17. 부모와 어린이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자유롭지 못한 교육은 활동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라고 하겠다이러한 교육은 생활의 정서를 무시해 버린다그리고 이 정서는 활동적이기 때문에 발산할 기회가 없어지면유쾌하고 활발하지도 못한 채 미움만 남게 된다또 머리만 발달하게 된다그러나 정말로 커다란 자유가 주어지면 이해력은 저절로 싹트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이것은 정신적 육체적인 일들에 있어서 외적인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어린이의 권리이다어린이들이 배고파할 때는 먹어야 하고또 어린이들이 청결을 원할 때에는 스스로 깨끗이 하기도 해야 한다어린이는 야단이나 매를 맞아서는 안 되며항상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유와 방종을 구별을 못하고 있다규율이 엄격한 가정의 어린이는 권리가 조금도 없다어린이의 응석을 귀엽게 여겨서 어린이가 버릇이 없게 된 가정에서는 어린이가 모든 권리를 다 가지고 있다그러나 좋은 가정에서는 어린이와 부모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학교에도 적용된다.

어린이들이 그들의 내면적인 본성에 따라 살려고 하면 어른들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건전한 부모들은 일종의 타협 방안을 찾는다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모들은 폭력을 행사하거나어린이들에게 사회적인 모든 권리를 허락해 줌으로써 어린이의 버릇을 그르친다.

어떤 어린이가 버릇이 나쁠 때는 대개는 잘못 다루었기 때문이다소에가 한 살이 조금 넘었을 때 나의 안경에 관심이 있었다소에는 안경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안경을 벗겨가곤 했다나는 거부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소에는 곧 안경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고안경을 벗기는 일도 없어져 버렸다만약 내가 못하도록 했거나 손이라도 때려 주었다면그녀의 흥미는 계속되었을 것이고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반항심이 생겨났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생후 6개월이 된 어린이에게 불이 붙은 담배가 뜨겁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내라고 내버려둘 수는 없다그러나 우리는 이 때에도 법석을 떨지 않고 그 위험성을 제거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만약 한 어린에게 정신적인 장애가 없다면 그는 곧 자기의 흥밋거리를 찾아낼 것이다그리고 어른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없더라도 어린이들은 모든 종류의 재료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명하게 다룰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가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길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그들에게 학과를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만약 우리가 어린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둔다면그들이 언젠가 한 번은 겪게 될 상관들 밑에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그들이 어떻게 학과를 배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어떻게 그들이 스스로 학과를 공부할 수 있겠는가?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인생의 모든 죄악은 행복을 제한하거나 파괴하는데 있다행복하다는 것은 도움을 줄 수 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불행하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반유태주의나소수민족 학대나 전쟁 등을 말한다.     


 우리반 아이들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었다. 하나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버릇이 없다는 것이다. 버릇이 없다는 시선을 가진 교사들은 내게 아이들을 너무 존중해주기 때문에 버릇이 없어져서 자신이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행복해 보인다는 교사들은 우리반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특별히 아이들을 너무 존중한 적은 없다.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을 존중하고 내게 허락된 만큼의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응대하고 있을 뿐이다.


 나와 친하게 진했던 옆 반 선생님 반에 윤숙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윤숙은 담임선생님에게 정을 많이 주었고, 그 담임선생님과 자주 함께 있던 내게도 친절했다. 윤숙이 새 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보니 윤숙이 담임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화를 내면서 윤숙에게 지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윤숙은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윤숙의 할머니가 그즘에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윤숙이 아침마다 동생을 유치원에 갈 수 있도록 챙기고 난 후에 학교에 오다보니 자주 늦었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서 강원도 양양에 떨어져 살아야 했다. 나는 윤숙을 위로했다. “담임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느라 힘들었겠다. 방법이 없을까?”하고 걱정을 해주었다.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했던 윤숙은 이후에 지각을 하는 일이 없었고 담임선생님에게 그 일로 야단을 맞는 일도 없었다. 어떤 교사는 아이가 학교에 자주 지각을 한다고 야단을 친다. 늦지 말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늦는 이유를 살피고 도울 일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교사의 마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매일 2교시가 지나서야 학교에 오는 영래에게 물었다. “영래야, 무슨 일 때문에 자주 학교에 늦게 오니?” 영래는 부모님이 새벽에 일터로 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미 학교에 늦을 시간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아침마다 전화를 해서 영래를 깨웠고, 영래는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났던 영래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고마운 기억을 간직하고 살고 있었다.     


체험학습 장소를 정하는 때였다. 우리반 빼고 모든 반이 서울랜드로 소풍지를 정했다. 나는 우리반 아이들과 상의하지 않고 강촌으로 정했다. 우리반 아이들은 내게 왜 우리반만 강촌을 가느냐고 항의를 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서울랜드로 갈 것이라고 했다. 체험활동 일이 되어서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서울랜드로 가겠다고 한 아이는 강촌에 가려고 나왔는데, 아무런 말도 없던 두 명의 아이가 서울랜드에 가 있었다. 전화를 해서 당장 강촌으로 오라고 했고, 울면서 온 두 아이는 체험활동이 끝날 무렵에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활기 있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체험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비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가슴과 머리에 쉼과 활력을 동시에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내게 귀찮을 수 있는 체험활동을 결정하고 추진했다. 지금도 그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서 어떤 아이는 자전거를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기차를 처음 타보았으며, 어떤 아이는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내게 가지고 와서 “기차 여행의 즐거움은 삶은 계란을 먹는 것”이며 행복한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교단에 서 있는 동안 내면의 본성이 고통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겪은 삶을 위로하지 못한 시간들이 미안하다. 아직 아이들의 가정이나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의 행동만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나로 인해서 상처를 깊어졌을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존중하면서 교단에 서 있었지만, 너무도 많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채 ‘지도했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마지막 담임이었던 퇴직 직전의 10개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존중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너무도 늦게 시작한 ‘점심시간 10분 데이트’. 운동장 둘레와 교정 둘레를 10분 정도 걸으면서 아이들의 말을 듣고자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더 배려해야할 부분을 살폈으나, 여전히 내가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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