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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Mar 28. 2019

책임, 청소당번

23.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책임 지우기

우리는 어린이들이 책임을 다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우리학교의 일곱 살짜리 남학생은 끌도끼칼 등을 가지고 공작을 하지만 그 애는 나보다도 손을 벤 일이 드물었다책임은 의무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의무감은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발달되어야 한다우리는 어린이에게 적당하지 않은 책임을 지우거나 감당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서머힐에서는 다설 살짜리 어린이에게 소방시설이 필요한지 않은 지를 묻지 않고여섯 살짜리 어린이가 열이 날 때 밖에 나가도 되는가 않는가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지쳐서 축 늘어져 있는 어린이에게 자러가겠는가 아닌가를 묻지도 않는다또한 아픈 어린이에게 약을 줄 때도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어린이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워야 하는가는 부모들이 결정할 문제이다부모들은 우선 자신들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자녀에게 스스로 옷을 고르지 못하게 하는 부모는 자녀가 사회적인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선택하리라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자녀들의 책이나 영화 관람친구 등을 간섭하는 부모는 자신의 생각을 자녀에게 강요하려고 한다이들은 자녀에게 좋은 것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동기는 권위를 휘두르는 데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부모는 자녀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책임을 지워야 하겠지만이 때 어린이의 신체적인 안전도 고려해야만 한다그래야만 어린이는 자신감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교사가 되던 첫 해 소풍(요즘은 체험학습이라 부르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식 표현인 소풍이 남아 있었다.)을 갔을 때였다.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칠십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둘러 앉아 놀이를 하였다. 누군가 놀이에서 놀이의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벌칙을 받게 되어 있는 활동이었다. 정선이가 놀이에서 걸렸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정선이가 여러 친구들 앞에서 벌칙을 안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야하는 상황에서 자존감이 너무 적은 정선이었기에 걱정을 했다. 정선은 망설이다가 벌칙으로 주어진 노래를 불렀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정선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놀이는 계속되었다. 그동안 정선에게 보냈던 나의 관심과 노력이 정선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정선은 토요일마다 우리반 아이들이 남아서 공을 차고 가는 활동을 늘 빠지고 있었다. 정선은 집에서 돌보아야할 동생이 있다고 했다. 나는 정선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실에서의 생활을 관찰하면서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선은 수업시간에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늘 혼자 공책에 해골바가지를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지적을 받으면 갑자기 몸을 굽혀 뭔가를 찾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어느 날 종례 시간에 정선을 부를 일이 있었다. 정선을 불렀으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더 큰소리로 불렀다. 대답이 겨우 정선의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더 크게 불렀다. 정선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이 광경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웃은 아이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서 그들에게 체벌을 가했다. 이 모습이 벌어지는 동안 정선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 소풍이 있었다. 소풍에서 정선은 자신에게 주어진 벌칙을 멋지게 해치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정선은 토요일에 남아서 공을 함께 찼다. 그리고 아이들과 활발하게 어울려 놀았다. 어느 날엔가 말타기 놀이를 하다가 넘어져서 앞니가 두 개가 깨지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쉰 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정선. 다시 만나서 그 때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었는지를 듣고, 그의 삶을 위로하지 못한 내 마음을 꺼내어 전해야겠다.(정선이 청년이 된 2000년에 EBS방송국의 도움을 받아 정선을 만났고 성실한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정선과 술 한 잔을 나누었지만, 그때는 그의 어린 시절을 위로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수업이 끝난 교실 청소에 청소당번을 세 명씩 배치했다. 그 전까지는 여섯 명을 배치했었다. 여섯 명 중에 몇 명은 청소활동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원을 줄였더니 대충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없었다. 책임은 적당했기에 아이들의 불만은 없었고, 청소 차례가 적어지니까 좋아했다. 아이들이 교실 청소를 하는 동안에 아이들을 지켜보지 않고 나는 복도의 쓰레기만 비질을 하여 쓰레받기에 담았다. 학급 담임교사들에게 청소시간에 ‘임장지도’를 하라고 교사들을 교무실에서 교실로 내몰고 있었기에 청소시간에 교사들은 ‘임장’하여 지도를 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감시 감독’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사람이었기에 청소 구역의 일부를 담당하면서, 아이들을 도울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청소활동을 하면서 내가 아이들을 도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주 청소 책임을 회피하는 정인을 불러서 청소를 안 하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잊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업이 끝난 직후에 정인에게 청소를 하고 가야함을 알려주는 날에도 청소를 안 하고 가는 날이 있었다. 정인을 불러서 무슨 일로 청소를 안 하고 갔는지를 물었다. 정인은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다음 차례가 되었을 때에 정인 혼자서 청소를 하게 했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게 나은 지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 하는 게 나은 지를 물었더니 함께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후에 정인은 한동안 청소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체험활동 장소를 정할 때는 아이들은 놀이시설에 가기를 원했다. 서울랜드, 롯데월드를 가고 싶어했다. 그곳에 가면 아이들이 즐길 놀이시설이 많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런 시설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번번히 그곳을 피했다. 가능하면 삶에 연결된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하고 싶었다. 어느 해에는 같은 학년의 모든 학급이 서울랜드로 소풍을 가는데 우리반만 강촌으로 자전거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불만은 매우 컸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서 서울랜드로 가자고 요구했다. 흔들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의 교육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끝내 강촌으로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 어떤 아이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지만 소풍이 끝나고 돌아올 때에는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어 있었다. 어떤 아이는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꺼내어서 “기차 여행은 삶은 달걀을 먹어줘야 제 맛이다.”고 하며 달걀을 건네기도 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은 웃음소리 가득했다. 다음 해에 우리반이 된 아이들은 소풍을 강촌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강촌으로 흔쾌히 따라 나섰다. 

어느 해 소풍에는 강촌 구곡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에 채웠던 자물쇠의 열쇠를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열쇠를 찾느라 시간을 한참 보내고 나서, 자전거 대여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알아낸 방법으로 돌멩이를 주워서 자물쇠를 부순 후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반납하고 부지런히 강촌역에 도착하니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헐레벌떡 기차를 타고 앉아서 숨을 돌리는 동안에 ‘놀이시설로 체험학습을 데리고 간 교사들은 지금 이 시각쯤에 아이들 모두 보내놓고, 찻집에 앉아서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텐데 내가 왜 사서 고생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을 성장을 위해서 사서 고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라는 생각으로 내게 찾아온 헛생각을 지웠다.


 아이들에게 의무는 아직 필요하지 않다. 의무가 지워진 아이들은 그들이 감당해야할 일들을 위로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의무감으로 감당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부모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의무로써 감당하면서 힘겨워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의무는 감당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에 스스로 감당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적당한 책임은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하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도와서 책임을 지는 것이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임을 알려주고 감당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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