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은 <테넷>에서 이제까지 쓴 방법론을 총동원했다. 기술적으로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놀란 감독의 소개에 따르면 "<테넷>은 기존에 없던 시간의 개념에 SF와 첩보영화의 요소를 섞은 작품"이라며, 제작과정에서 007 시리즈를 일부러 멀리했다고 한다.
거기다 놀란은 액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저걸 어떻게 찍었지?’라고 싶을 만큼 독창적인 액션과 영상미를 제공한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인버전 액션과 평범한 액션이 마구 뒤섞이고, 타임 패러독스와 본드 포뮬러(007 영화의 공식)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007 영화와 시간 여행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조금 더 쉽게 다가올 것 같다. 왜냐하면 007과 시간여행 영화의 클리셰가 인물의 묘사와 스토리의 설정을 대신한다. 주인공이 왜 임무에 목숨을 거는지, 제3차 세계대전은 대사로 처리되고, 주요 인물 간의 관계도 설렁설렁인 이유다. 필요한 장면만 보여주고 최대한 빨리 넘어간다. 관객이 쫓아오건 말건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고 3차 세계대전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놀란은 불친절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켰을까? 그의 주안점은 '시간'이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연출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에 대해 살펴보자!
[본론] 엔트로피의 방향이 바뀐다?
시간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뉴턴, 칸트, 아인슈타인 모두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시간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가치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경제현상을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접근한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시간과 공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설명하지 않겠다.’고 공리를 정의 내리고,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물리 시간에 배웠을 테니까 방정식 등 수학적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뉴턴 방정식으로는 우리가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놀란은 이 점에 주목한다.
과거 → 현재
과학자들은 보통 시간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흐른다고 설명한다. 즉, 열역학 2법칙을 가져다 쓰고 있다. 예를 들어 큐브를 무작위로 돌리면 맞추기 힘들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큐브로 돌아가기 힘들다. 이것이 시간 여행이 확률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놀란은 엔트로피의 방향을 뒤집어서 '시간의 역행(시간 여행)'을 감행한다. 즉, 인버전 기술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영화에서 '엔트로피의 방향이 바뀐다'라고 표현한다.
[결론] 007을 사랑하는 감독의 타임 패러독스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을 인생 영화로 꼽는 놀란답게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다룬 007 영화’다. 어린 시절 놀란이 본 <007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연인에 대한 부재’가 트라우마로 그려지는 테마를 주관심사로 두게 된다.
비극적인 사랑과 운명을 타임 패러독스 중의 ‘할아버지 역설(모친 살해 역설)’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었다. 이 역설은 ‘닭이 먼저야? 계란이 먼저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에서 존 코너의 엄마‘ 사라 코너’를 죽이려는 T-800, <백 투 더 퓨처>의 아빠가 아닌 아들인 주인공을 사랑하게 된 엄마의 딜레마를 떠올려보시길 바란다.
영화는 <인셉션>, <메멘토>처럼 이 단순한 플롯을 굉장히 어렵게 풀어낸다. 놀란은 시간에 대한 집착은 실로 대단하다. 그의 야심이 거대한 만큼 영화는 실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지금 보는 장면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관객 입장에서 판가름하기 어렵다. 플롯과 액션을 동시에 진행시키면서 역행이 일어나는 장면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거나 '맥스웰의 악마'에서 착안한 빨강(순행)과 파랑(역행)의 색상 구분, 역행 시에 영상과 음악이 거꾸로 트는 역재생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공간), 시제, 인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터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두 번째 약점은 타임 패러독스 영화들이 모두 피할 수 없는 '개연성 논란'이다. 보통의 타임 패러독스 영화들은 ‘결정론’을 통해 그 사건이 꼭 일어나야 했다고 변명한다. 놀란은 결정론을 고려하지 않은 정교한 극본을 썼지만 종국에는 결정론으로 귀결되기에 약간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평행우주’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 난해해졌다.
또 다른 암초는 ‘번역’이다. 도무지 일상에서 쓰지도 않을 이상한 표현을 마구 썼다. 더욱이 도대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긴 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번역이 낙제점에 가까웠다.
★★★☆ (3.4/5.0)
Good : 익숙한 이야기를 참신하게!
Caution : 설명의 부재 그리고 관객보다 빠른 진행속도!
■관람하실 때 초반부터 이해하려 애쓰지 마시고, 후반에 집중하세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클리셰대로 진행됩니다. 놀란답게 영화 결말에서 모든 서사가 한데 모아집니다.
■놀란 사단에 새롭게 합류한 스태프들도 제 역할을 다했다. 오랜 기간 협업해왔던 리 스미스 대신에 새로이 편집을 맡은 제니퍼 레임과, 한스 짐머를 대신해 음악을 맡은 루드비히 고란손의 결과물은 전임자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