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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Sep 06. 2024

나폴레옹 감독판*영국인이 본 적장

《Napoléon·2023》노 스포 후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공화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를 유럽과 (세계에) 퍼트린 영웅이지만, 유럽을 잿더미로 만든 전쟁광이라는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은 ‘조세핀(바네사 커비)’라는 행운의 상징을 쫓는 운 좋은 독재자 나폴레옹 1세(호아킨 피닉스)로 그려진다. 역사에서 조세핀과 이혼한 시점에서 나폴레옹의 운세가 꺾인 것은 사실이나, 근본적으로 프랑스혁명으로 구(舊) 체제를 청산하려 했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입장이 유럽의 절대왕정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혁명’이란 언제나 기득권에게 최대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1979년 혁명이후 이란이 사우디 왕가에게 눈엣가시가 된 것처럼 말이다.  


①감독판과 상영본의 차이는?

48분 분량의 새로운 푸티지를 추가해 상영시간이 205분으로 늘어났다. 중심인물인 조세핀의 존재감이 늘었고, 마렝고 전투, 암살 시도, 러시아 침공 등의 새로운 장면이 추가되어 상영판보다 훨씬 전개가 매끄러워지고, 볼거리도 풍성해졌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나폴레옹이 왜 조세핀에게 집착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이 미흡하다. 왜냐하면 스콧이 ‘사랑과 전쟁’ 그리고 ‘독재자’라는 두 가지 프레임으로만 프랑스 황제의 흥망성쇠를 설명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깊이가 납작해졌다. 차라리 나폴레옹의 형제자매들, 제롬, 카롤린, 루이, 폴린, 조제프 보나파르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짰다면, 이야기가 더욱 풍성했을 것이다.      



②영국인이 본 나폴레옹이라는 한계?

웰즐리 vs 나폴레옹 

영화에서 워털루 전투에 패한 나폴레옹에게 영국군 사령관 ‘아서 웰즐리(루퍼트 에버렛) 공작’이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웰즐리 공작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언제라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일 뿐이오."라고 적장이 본인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했다. 이 말은 즉슨, 영화는 역사적 고증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나폴레옹 전술의 극치를 보여준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 역시 후반의 매복전만 등장해서 그의 군사적 능력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왜 이랬을까?     


결정적으로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영국의 대륙정책이다. 영국이 보기에, 러시아 제국은 아직 농노에 의존하는 후진국이고, 스페인은 영국과 네덜란드에게 연달아 패해 약소국으로 추락한 지 오래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지역 강국의 군집체에 불과하고, 프로이센은 발전 중인 중진국 수준이었고, 오스만 제국은 기술력과 군사력에서 2류에 불과했다. 유럽 최대 인구 3천만 명을 보유한 프랑스가 공화주의라는 절대왕정에 위협적인 이데올로기를 들고 나온 것은 영국 왕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자꾸 훼방을 놓는 영국과 화평을 추진해 아미앵 조약을 맺는다. 그러나 영국은 유럽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를 부추기고 구(舊) 부르봉 왕가를 후원하여 프랑스 국론을 분열시켰다.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으로 영국 경제를 고립시키려고 했으나, 러시아가 무역을 몰래 함으로써 이에 응징하고자 80만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점령한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청야전술로 나폴레옹의 화해를 거절하고, 끝내 동장군을 만난 대육군(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의 80%는 귀환하지 못한다. 영국은 이렇게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고 러시아가 강성해지자,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다. 크림전쟁, 아프간전쟁, 러일전쟁으로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다. 20세기 독일이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자, 오랜 앙숙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양차 세계대전으로 견제했다. 영국은 이처럼 유럽 대륙의 최강국을 견제한다는 외교적 노선을 유지했다.     


전기물에 이 영화의 미학이 어울리는가?

영화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영상미학이 황홀하다. 데이빗 린이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연상시키는 스펙터클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호아킨 피닉스의 경계선 코미디 연기도 나폴레옹을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지질한 독재자로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보나파르트를 제대로 조롱하려면 뚜렷한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다.     


크레디트에서 나폴레옹이 치른 수많은 전쟁을 언급하면서 전사자 수를 보여준다. 영웅 신화를 전쟁광이라고 못 박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폴레옹이 아닌 다른 지도자가 제1공화국에 집권했더라도 혁명의 위험성 때문에 유럽의 적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물론 유럽 왕실이 보기에 '보나파르트 가문'은 근본도 없는 촌뜨기 집안이라 더욱 어그로를 끄는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다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이 주도한 빈 체제 즉 반자유주의적이고 반동적으로 구(舊) 체제로 돌아갔지만, 이미 유럽 각 지역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랑스혁명의 이념들이 퍼져 있었다. 우리 같은 민주공화국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주의”로 변화의 물결을 막는 시대착오적 조치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최대 업적은 말년에 본인이 회고하듯 《나폴레옹 법전》이다. 대륙법 체계를 쓰는 우리나라는 당연히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의 정신적 가치인 ‘라이시테(Laïcité, 세속주의)’나 그랑제꼴의 인재 양성, 현재의 프랑스 국경선은 나폴레옹 시기에 정착된 것이다. 또 1차 대전까지 나폴레옹 전술이 답습할 만큼 군사적 천재였다. 《전쟁론》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를 '군사의 신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인물의 면모를 여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전쟁광으로 해석하니까 극 중 나폴레옹이 고리타분하게 다가오고 조세핀은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거지?’하고 궁금증만 불러일으킨다.


★★☆ (2.5/5.0)    

  

Good : 황홀한 스펙터클

Caution : 비전 없는 풍자극     


■애플 TV는 《플라이 투 더 문》, 《플라워 킬링 문》, 《아가일》, 《나폴레옹》의 상영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자 극장 개봉보다 OTT로 바로 공개하는 전략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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