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틸 라이프 Nov 20. 2021

영화 마틴 에덴

성공한 자신을 찾아온 옛 연인 엘레나에게 모욕을 준 마틴은 창가에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의 눈길에 들어온 것은 엘레나 모녀 곁을 지나는 한 청년이다. 열정으로 번쩍이는 눈동자와 거칠 것 없는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남자, 그것은 마틴 자신의 얼굴이다.

바다를 떠난 뱃사람 마틴은 길 위에서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그의 눈과 몸은 앞으로 향하지만 그가 지나는 길에는 항상 사람들이 가득하다. 깃발을 들고 환호하는 수많은 시민들, 고달픈 삶의 그늘에 지친 이웃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가 목격하는 세상과 사람은 역사와 사회의 격랑 속에 언제나 전쟁의 고통을 치르고 있다.

 

전진만 할 것 같은 마틴의 걸음은 두 번 멈춘다. 첫걸음은 이성적인 사랑 엘레나와의 만남이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순수한 욕망은 무지를 자각하고 깨치는 계기가 된다. 백지상태에서 기성 교육과 책에서 얻은 지식은 마틴에게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발현시킨다. 그러나, 기성 지식의 한계에 머물러 알에서 깨어나 부화시키는 역량까지는 얻지 못한다. 그때 그 알을 깨트리게 도와주는 이가 사회주의자 루스이다. 그는 사랑이란 감성에서 벗어나 차가운 이성을 깨우고 서로 다른 이념의 충돌에서 갈등하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마틴을 성장시킨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한 루스는 작가로서의 마틴을 각성하게 만들고 엘레나가 움트게 만든 싹이 열매로 자라나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 된다.

영화에는 두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루스의 자살은 혁명의 성공을 꿈꾸었지만 현실에서 좌절한 이상주의자의 실패처럼 보인다. 두 번째 마틴이 겪는 죽음은 환상으로 처리되는 사랑의 종말이다. 검은 상복과 검은 베일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 엘레나의 환영은 신분 차로 좌절된 사랑의 갈등을 종언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이별 후 방황하던 마틴은 연인과 이별하는 그 시간, 비로소 순수한 청년이었던 자신과 만난다. 성공이 독이 되어 환멸과 자기 파괴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자신과 만나 감옥을 열고 자유를 향한 파도를 넘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앞으로만 걷던 그가 막다른 바다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과 현실을 하나하나 조망한다. 그는 일출인지 일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태양을 향해 파도에 아랑곳 않고 헤엄쳐 나아간다.

 

다시 영화의 첫 씬,

-내 글의 힘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한,

나 역시 하나의 힘이며 어찌 보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그 힘에 맞서 내가 가진 건 나 자신뿐이지만

 

이제야 오프닝에 두서없이 등장한 그의 글을 희미하게 짐작한다. 마틴은 모든 글의 주인이 되는 작가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이룩하고 불의하고 무지한 세상과 싸워 나가길 다짐한다. 영화 마틴 에덴은 백지로 출발해 책과 경험의 항해를 겪으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진정한 자유를 얻는 한 남자의 오디세이다. 바다는 안개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하늘과 수평선의 경계도 저 너머 세계도 불투명해 보인다. 갑자기 침몰하는 선박이나 터너의 난파선을 닮은 엘레나 저택의 그림은 모호한 바다의 얼굴과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바다와 마주한 마틴의 미래는 여전히 그림의 풍경처럼 휘몰아치고 출렁이며 혼란한 그의 마음과 투쟁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자객 섭은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