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준은?
최근 서이초 사건과 주호민 작가의 특수교사 고발 사건 이후로 학부모 민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형성되고 있다. 보통은 지나친 학부모 민원에 대한 비판인데, 그러한 담론들 속에 있다가 문득 내가 지나친 학부모 민원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나는 가끔 다양한 행정 기관에, 아주 가끔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원을 제기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의 의견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였다. 그리고 실제 필요 이상으로 강력해진 공공의 권한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민원 기능은 담보되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민원과 꼴불견 진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고민한 결과, 내가 다다른 결론은 '폭력'의 여부였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나오는 대표적인 폭력의 종류는 다음과 같은데, 특히 학부모 민원과 진상의 경계를 넘기 쉬운 폭력은 '인격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말로 상대방에게 정신적・심리적 피해를 주는 행위' 혹은 '의사에 어긋나는 행동을 강요하기'인 것 같다.
신체 폭력: 신체에 직접 힘을 가해 상처를 내는 행위
언어 폭력: 인격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말로 상대방에게 정신적・심리적 피해를 주는 행위
따돌림: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고 괴롭히는 행위
금품갈취: 돈이나 물품 등을 강제로 뺏거나 걷어오라고 하는 행위
강요: 의사에 어긋나는 행동을 강요하기
또한 우리는 중학교 사회 시간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상대성을 가져야 하지만, '인간 존엄성'을 기준으로 이를 파괴하는 경우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배운다. 그렇기에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는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 카이스트 교수가 언급했던 "교육자는 피교육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하며 "그 직무 범위는 때로는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왜냐면 가끔 학부모가 감정 조절에 실패할 수도 있고 교육자가 피교육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자에 대한 '폭력'의 상황이 아닐 때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는 학부모의 반응이 교사의 무책임한 반응에 대한 정당방위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에 살펴본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김병수, 2014)은 객관적 요건으로서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 인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방위행위로 ‘상당한 이유’를 갖춰야 하며, 주관적 요건으로서는 ‘방위의사’라는 주관적 정당화 요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당방위의 성립 요건들에 대한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매체를 통해 이슈가 된 학부모의 민원들은 대체로 '현재성'과 '상당성'에서 그 요건을 부합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폭력'의 기준은 종종 애매하다. 나는 최근 한 연구에 공동연구진으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의 정의인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에서 그 피해의 기준, 특히 '정신상의 피해'의 기준이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에 학교폭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쩌면 피해 학생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기준이 너무 낮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 학생의 상처받은 마음이 거짓이 아닌 이상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도 어른들도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에서 내가 하는 발화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어야 하고,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상대방이 정신상의 피해를 입었다고 느껴 표현한다면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참고문헌
김병수(2014).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 형사정책연구, 25(4),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