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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Dec 17. 2018

6. 멕시코인들의 할로윈 파티의 가다

멕시코는 한 달 내내 할로윈 파티 중!

 이곳 사람들은 집을 꾸미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은 주택단지여서 A열 부터 K열까지 전부 똑같은 모양의 집이다. 그런 집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서든 자기 집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늘 이런저런 장식을 한다. 집을 깔끔히 관리하는 것은 이곳의 에티켓이다. 같이 사는 단지다 보니, 내 집인데 어때 하며 다 자란 잔디를 방치하면 욕을 먹는 단다. 따라서 한 달의 몇 번은 정원사를 집으로 불러야 한다.

할로윈을 위해 판매하는 호박들

 9월이 끝나갈 무렵부터 이곳의 할로윈은 시작된다. 10월이 다 돼서 준비하면 이미 늦는다. 그때가 되면 코스트코에는 이미 할로윈 장식들은 다 빠지고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번의 내 생의 첫 할로윈을 보냈다. 이전에 할로윈은 나에게 있어서 블랙데이, 삼삼데이 등과 같이 날짜 조차 생소한 이벤트 데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이태원 같은 곳에 가면 할로윈 파티 같은 것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클럽을 싫어하는 나한테는 아무렴 먼 나라 이야기기만 하다.


 이곳에서 할로윈은, 10월의 대표하는 주요 행사 중 하나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의 경우는 할로윈 부터 재량휴업일에 들어간다 한다 10월 31일 할로윈은 비록 미국의 행사이지만, 그 바로 며칠 뒤인 11월 1일과 11월 2일은 멕시코의 최대 명절중 하나인 '죽은 자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할로윈부터 바쁘게 돌아다닐 것을 알기에, 아예 31일부터 2일까 연달아서 쉬곤 한다.


 이번에도 나는 브렌다 언니의 친구들의 생일 파티의 초대받았다. 이곳에서는 몇 월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생일파티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단다. 10월생들의 생일파티는 대부분 할로윈 파티가 될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10월은 한 달 내내 할로윈 파티 기간이다. 이곳에서는 생일파티에는 생일선물을 꼭 준비하지 않아도 된 다했었다. 그러나 10월생들의 파티에 초대받는다면, 선물은 몰라도 할로윈 파티에 입고 갈 코스튬은 꼭 준비해야 한다.


-언니, 저 이런 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대체 뭘 입어야 해요?

파티의 초대받았을 때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코스튬 파티라니. 이런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어쩐지 부끄럽기만 했다.  

-부담 갖지 마~ 너무 돈 많이 쓸 생각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물건에서 좋은 아이디어만 내면 되는 거야

언니는 지난 파티의 친구들이 입었던 옷들을 설명해주었다. 한 친구는 휴지를 둘둘 감아와 놓고 미라로 분장한 거라 우겼다고 한다. 다들 그냥 옷만 재밌게 입고 오고, 다른 파티와 별 다를 것은 없을 것이라 했다. 언니는 이곳에서 유행하는 드라마 'adam's family'의 양갈래 머리 딸의 분장을 할 거라 했다.

-가지고 있는 거.. 아! 저 여기 올 때 검은색 미니 원피스 하나 가져온 게 있어요!

-좋은걸! 그러면 마녀 모자나 고양이 머리띠 같은 거 하나 사서 다는 건 어때?


 외국에 가면 파티 갔은 거 자주 간다던데, 우리 딸 이런 거 하나 챙겨가는 게 어때? 아 이모랑 놀러 갈 수 도 있으니 수영복도 챙겨가자. 짐을 쌀 때 옆에서 도와주던 엄마 덕분이었다. 됐어, 내가 거기 놀러 가? 하고는 수영복을 빼버렸다. 그때는 괜히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굴었었는데..


파티의 가져갈 모자, 45페소에 구입

 이모를 따라 옆동네의 시장에 갔다. 골목 사이로 하나, 둘 할로윈 코스튬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브렌다 언니의 조언에 따라 검은색 마녀 모자를 하나 샀다. 하나의 45 페소 약 2~3000원 정도였다. 걱정한 것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준비가 쉽게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빨간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화장도 붉은 섀도로 진하게 하고, 검정 드레스를 입고 검은 구두도 신었다.


 파티는 밤 9시부터 시작이지만, 언니와 나는 '남미 타임'의 맞춰 10시 즈음에 갔다. 멀리서 하얀색 이불을 뒤집어쓴 남자와, 빨강 망토를 쓴 여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브렌다 언니의 친구들이었다. 유령의 코스튬은 하얀색 이불에 검은색 색종이로 눈코 입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브렌다 언니가 말한  부담 가질 필요 없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이 이런 걸까.

 파티는 생일인 친구의 자취방에서 열렸다. 작은 빌라 같은 곳이었는데, 늦은 시간에도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여러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도 괜찮은가 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거의 매일 밤마다 음악소리와 폭죽 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더 심했지만 그래도 요즘은 새벽 1,2시가 되면 경찰이 와 자제하는 분위기라 한다.


  재밌는 분장을 한 친구들이 많았다. 분홍색 부직포로 옷을 만들어 공주 분장을 한 친구, 마찬가지로 부직포를 오려 피자 옷을 만든 친구. 영화 코코에 나오는 해골(까뜨리나)처럼 얼굴에 하얗고 검은 칠을 해온 친구. 아, 생일의 주인공은 젖소잠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코스튬을 보고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었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춤을 추고 놀았다. 한 번은 브렌다 언니를 도중에 놓쳐서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 껴버렸다. 춤을 춰야지만 보내준다고 하자, 당황한 나는 얼굴이 벌게져 아, 안돼 못해! 하고 도망을 쳤다. 언니 미안해 나 사실 춤추는 거 싫어해, 클럽도 잘 안 가는걸.라고 나중에 사과하자 언니는 오히려 활짝 웃었다. 나도야! 나도 춤추는 거 싫은걸! 멕시칸들은 전부 춤추고 노는 것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자기는 아니라 했다.

 오히려 늘 파티에 가면 언니 친구들은 춤을 추고 놀지만 자기는 추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핬다. 너랑 오니까 좋다. 나 혼자 춤 안 춰도 뻘쭘하지 않고 즐거워. 그 말에 나는 저도 언니랑 와서 다행인 것 같아요 하고 웃었다.

 혹시나 파티의 분위기를 깨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나와 친구들은 다들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러나 가끔 술을 마시다가 클럽이나 다모토리(감성주점)를 가자고 할 때면 불편해진다. 친한 친구들이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조르지 않지만, 친해진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은 계속해서 졸랐다.

 나랑 가도 재미없을 거야 나 그런 곳 싫어해. 그렇게 돌려가며 거절해도, 아무래도 매번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따라갔지만, 가고 나서는 늘 후회를 했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놀 수 없고,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억지로 취하기 위해 빠르기 술을 마셨다. 그렇게 놀고 다음날 아침에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면 한없이 우울해졌다. 끌려다니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는 왜 친구들처럼 그렇게 못 놀까 하고 괜히 소심한 내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언니와 나는 거실에서 빠져나와 부엌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부엌에는 집주인이 미리 준비한 술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다들 각자 자기 컵을 준비해왔었어야 한다 했었나 보다. 그래서 컵을 까먹고 온 우리는 다른 술은 포기하고 맥주만 마셔야 했다.  언니의 친구들이 간혹 와서 자기 컵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어보라며 빌려줬다. 그런데 개인컵이라고 가져온 것들이 다 먹은 크림통, 요플레 대용량 컵을 씻어온 것들과 같이 하나같이 조잡한 것들 뿐이라서 웃음이 나왔다.

 브렌다 언니는 결국 나에게 컵을 구해주겠다며 파티 주인공의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부엌 찬장에서 대충 아무거나 꺼내서 건네주었다. 나중에 집주인이 와서 "야 그거 내 믹서잖아!ㅋㅋㅋ" 하고 소리쳤다. 기껏 찾은 컵이 믹서였다는 것이  또 웃겨서 나는 그냥 미안해!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던 중 브렌다 언니의 친구 하나가 와서 말을 걸었다.

-춤추는 거 싫어해?

-응, 아니 사실 출 줄 아는 춤이 하나도 없어

-음, 그럼 내가 하나 알려줄까?

 춤이라면 질색하는 나였지만, 워낙 유쾌한 그곳 분위기에 나도 취했나 보다. 이번만큼은 흔쾌히 좋아! 를 외쳤다. 이상한 춤이었으면 거절하려 했지만, 다행히 간단한 스탭과 턴이 전부였다. 이곳 사람들이 파티에서 간혹 추는 춤이란다.

두번 째로 초대받은 할로윈 파티

 그 날 파티 이후 2주 뒤, 우리는 또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 저번 파티의 입구에서 만났던 빨강망토 언니의 생일이었다. 지난번 파티보다 적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래도 30명은 넘게 모인 것 같다. 빨간 망토 언니는 워낙 집을 꾸미고,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한단다. 확실히 집안 곳곳에 할로윈 풍의 장식이 되어 있어, 저번 파티보다 더 할로윈 파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마녀의 음식이라는 콘셉트로 실험관에다가 손님들이 먹을 칵테일을 만들어 놓았고, 할로윈 모양 틀로 찍은 쿠키, 지렁이 젤리가 들어간 칵테일 푸딩 등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해 놓았다.


파티에서 다같이 춤을 추는 친구들

두 번째 파티에서는 주로 비어퐁(맥주잔 안에 상대가 공을 던져 집어넣으면 마셔야 하는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러다 어떤 노래가 나오자, 갑자기 파티장에 있던 친구들이 다 같이 노래의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지난번에 배운 춤을 전부 까먹어서 이번에도 그냥 구경만 했다. 비록 까먹었지만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내가 먼저 춤을 배우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사실 파티에 오기 전에는 조금 두려웠었다. 왜  흔히 미드나 영드에 나오는 그런 문란하고 방탕한 파티. 그런 것을 막연히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서 놀으니 즐거웠다. 모르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놀아도 불쾌한 경험 하나 없었다. 다들 정말 다 같이, 신나게 놀자는 것이 보여서 좋았던 것 같다.


옆집의 할로윈 데코

그리고 드디어 할로윈 당일, 해가 지자 할로윈 행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우리 마을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지 이날 처음 알았다. 평소엔 다들 차만 타고 다녀 갈애서 아이들 보기가 힘들었는데, 그날은 온 동네길이 알록달록한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한 열댓 명씩 무리 지어 이 집 저 집,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집에 할로윈 장식을 하면 사탕을 나눠주는 집이라는 표시가 된다. 그런 것을 보면 할로윈은 어린이들만이 기다려온 날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집은 아예 업자를 불러서 집 전체에 거미줄 장식을 둘렀고, 어떤 집은 창문마다 사람만 한 크기의 귀신 인형을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코스트코 같은 곳에서 파는 각종 핼러윈 풍선장식부터 시작해, 마당을 파서 해골 장식, 묘 비등을 묻어 두기도 했다. 마치 경쟁하듯 온 집에 장식을 달아 놓는 모습을 보고 '이모 여기는 애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 하는 것 같아.' 라며 고개를 젓곤 했었다.

 

 이날 우리 집으로는 온 동네의 한국 어린이들이 모였다. 6학년인 우리 집 막냇동생이 이모 친구들 아이들의 대장이기 때문이란다. 사촌 동생의 인솔 하에 다 같이 밤에 나가 사탕을 받으러 다니기로 했다. 평소에는 어리기만 한 동생이었는데, 아무래도  더 어린 동생들과 있어서 일까? 의젓하게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또 우리 집으로 모인 것은 아무래도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경비가 단지 입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만 밤에 내보내기에는 훨씬 안심이 된다. 그래서 일부로 단지 밖에 사는 아이들은 한 단지만 골라서 돌으려고 찾아오곤 한다.

 

자칭 소문난 구두쇠라는 이모도 이날을 위해 과자를 3박스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특별히 장식을 안 해놔서인지, 직접 문을 두드리러 오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자 한 이모가 이전에 내가 썼었던 마녀 모자를 빌려 쓰며 말했다. 아예 밖에서 나눠주겠다, 야 너네도 놀지 말고 같이하자 이런 날 같이 즐겨줘야지. 라며 이모와 친구들에게 말했다. 궁금했던 나는 그 이모를 따라 나간다 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과자를 받으러온 어린이들

 초등학생부터, 이제 막 겨우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아기도 있었다. 그렇게 너무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대부분 엄마들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 주고 있다. 안녕 애들아. 안녕. 나는 몰려든 아이들에게 이모와 함께 과자를 나눠주었다. 저 이거 말고 저거 주면 안 돼요?  더 주세요! 하고 졸라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모습도 전혀 밉지 않다. 하하 그래. 이것도 받고 저것도 받아. 하고 나눠주면 gracias!(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쪼르르 다른 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왜 이곳 어른들이 그렇게 신나서 할로윈 맞을 준비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느새 단지를 다 돌았는지, 우리 집 아이들이 돌아왔다. 바닥에 바구니를 엎고는 신나서 각자의 전리품의 개수를 세어본다. 그 즐거워하는 모습에 어쩐지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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