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해가 떠있어서 기분 좋게 일어났다. 어제 그랑 플라스에 못 간 게 내심 아쉬웠는데, 해가 뜬 오늘 가게 돼서 더 좋았다. 오전에는 여유롭게 보내면서 '유랑'이라는 유럽 여행 동행을 찾는 카페를 봤다. 마침 26일 동행을 구하는 글이 있어서 쪽지를 보냈고 4시쯤 그랑 플라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시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점심으로 스테이크와 토마토를 구워서 먹고 나왔다. 해가 떠 있고 기온도 최저가 3도라서 코트를 입고 나왔는데 정말 한국의 초봄 날씨였다.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랑 플라스에 가기 전 다음 주말부터 살게 될 집에 먼저 들렀다. 이사할 때 짐이 많아서 헤매면 힘들 것 같아 들러봤다. 역에서 집이 좀 멀긴 했는데, 평범하고 예쁜 집이었다. 위치만 확인하고 다시 그랑 플라스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3시 반쯤 그랑 플라스에 도착해 동행 분께 연락을 드리고 혼자 조금 돌아다녔다. 처음 그랑 플라스의 시청사를 봤을 때 정말 육성으로 놀랐다. 너무 크고 웅장하고 높은 건물이었다. 되게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 같았는데, 건물이 정말 아름다웠다. 부분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아직도 처음 그 건물을 봤을 때 놀라움이 안 잊힌다. 돌아다니면서 유명한 감자 튀김집을 발견했는데 줄이 정말 길었다.
동행 분들을 만났다. 두 분이 먼저 만나고 있다가 내가 합류한 거였는데, 이미 두 분이 30분을 기다려서 감자튀김을 먹었다고 하셔서 우선 돌아다니기로 했다. 음반 CD나 영화 DVD를 판매하는 곳에 들어갔는데, 동행 중 한 분이 영화나 음악을 되게 좋아하셔서 신나 하셨다. 나는 외국 음반이나 영화는 더더욱 잘 몰라서 '오 이런 곳이 있구나' 정도로 구경했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절대 들어오지 않았을 가게인데 동행 덕분에 새로운 곳을 구경하게 되어 좋았다. 결국 동행은 영화 DVD를 하나 구매하셨다.
나와서 또 걷다 보니 검은색 상점에서 이상하게 생긴 팬티를 팔고 있었다. 또 동행 분이 들어가 보자고 해서 들어갔더니 성인용품점이었다. 신기한 게 많았고 다소 민망했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서 와플집을 찾아다녔다. 벨기에 하면 와플, 초콜릿, 감자튀김 유명하니까 하나 먹어봐야지 싶었다. 사람이 많아서 어디 가게를 가도 북적북적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누텔라가 뿌려진 와플을 주문했다. 와플도 달고, 누텔라도 달아서 정말 달았다. 근데 한국에서 파는 것과 별 차이를 모르겠다. 그냥 내가 알던 그 달달한 와플 맛이었다.
5시쯤 돼서 그랑 플라스로 갔는데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불도 켜지지 않아서 우선 펍에 가기로 했다. 기네스에 오른 펍인데, 생맥주 종류가 3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선인장 맥주'가 맛있다고 해서 그걸 시켰다. 맥주를 원래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맥주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와봐야 하는 맛집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맥주의 꿍한(?) 맛과 탄산 때문에 맥주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선인장 맥주'는 그 꿍한 맛이 안 났다. 정말 처음 먹어보는 특이한 맛이었다. 그래도 정말 맛있다고 느낄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작은 컵의 한 잔은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맛이었다. 유럽에 와서 맥주 맛을 알려고 했는데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해가 져서 다시 그랑 플라스로 가봤다. 네이버에서 찾았던 그런 불빛은 없었다. 아마도 불을 켜주는 시기가 지난 것 같다. 아쉽긴 했지만, 건물의 원래 빛으로도 충분히 야경은 아름다웠다. 건물 전체를 잘 찍고 싶었는데 건물이 너무 높아서 찍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담는다고 한들, 실제 건물의 웅장함을 담지 못할 것 같다. 낮에는 정말 따뜻했는데, 해가 지니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엄청 추웠다. 돌아다니다가 대마로 만든 음식이나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담배랑은 다른 특이한 향이 났다. 네덜란드만 대마초가 합법인 줄 알았는데 상점이 있는 것을 보니 벨기에도 아마 대마초가 합법인 것 같다. 궁금하긴 했는데 무서운 게 더 커서 아무것도 못 사고 나왔지만 동행은 대마 사탕을 하나 샀다. 근데 먹어보더니 아무 느낌이 없다고 했고, 내가 보기에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다. 검색해보니 사탕에 든 대마 정도의 양은 그냥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정도라고 한다.
춥고 배도 고파서 햄버거랑 핫도그를 파는 곳에 들어갔다. 햄버거 하나, 핫도그 하나를 시켜서 셋이 나눠먹었는데 배가 금방 불러서 햄버거 하나만 나눠먹고 핫도그는 포장을 했다. 집이 제일 가까운 동행 분께 드렸다. 그러고 나니 시계가 9시였다. 슬슬 가게들도 문을 닫고 아까보다 사람들도 많이 줄어서 집에 가려고 나왔다. 브뤼셀 시내와 시내에 있는 역에는 노숙자가 많다. 너무 늦은 밤에는 위험할 것 같다. 딱히 붙잡거나 하진 않는데 그래도 사람이 적어지면 동양인 여자애를 만만하게 볼 확률이 크니까..
집에 가는 길에 탄 지하철은 문을 내가 직접 열어야 했다. 그전에 탔던 지하철은 문에 있는 초록색 버튼을 누르면 열렸는데, 이 지하철은 아예 문 손잡이가 있어서 내가 잡아당기니까 열렸다. 그렇게 큰 힘이 필요하지는 않고, 내가 문고리만 잡아당기면 나머지는 기계가 여는 시스템인 것 같다. 무사히 지하철에 내려서 버스를 타러 갔는데 무려 18분 뒤에 온다고 했다. 주말 밤에는 배차 간격이 넓어지는 건지, 보통 10분 내외였는데 지나치게 길었다. 집에 도착하니 10시였다. 피곤해서 씻고 바로 누웠다. 내일은 9시부터 intensive french class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