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랑 Jan 09. 2021

늦었지만 써보는 마지막 여행,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내 마지막 여행지였다. 같은 학교에 배정받았던 한국인 친구 3명과 함께 갔다. 꽤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먼 훗날 읽으며 추억할 거리를 남겨놓기 위해 써본다. 유럽에도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는 중이었고, 다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니 마니 얘기가 나오던 때였다. 학교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분위기가 혼란스러웠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며 신나는 마음을 갖고 룩셈부르크로 떠났다. 기차를 타고 3-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던 것 같은데, 중간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차가 거의 한 시간째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내려서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탔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역시 여행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이런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기억에도 잘 남는다. 다행히 갈아탄 기차는 무사히 룩셈부르크에 내렸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서 배가 고팠고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곳에 갔다. 왜 룩셈부르크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냐면 저녁에 룩셈부르크 음식을 먹기로 했고, 마땅히 갈 다른 식당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라자냐, 피자,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음식을 시켰는데 이름 기억 안 나는 그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 라자냐를 한 번도 안 먹어봐서 시켰었는데 밀가루 맛이 많이 나서 좀 거북했다. 음식을 먹고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흐림과 맑음이 공존하던 하늘

아무도 우산이 없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꽤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기엔 적게 내리지만 그냥 걷기엔 좀 많이 젖을 정도? 비를 잠시 피했다가 일단 걸었다. 꽤 비를 맞으면서 걷다 보니 서서히 비가 그쳤고, 하늘의 절반은 맑고 절반은 구름이 잔뜩 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정말 누가 칼로 잘라놓은 듯이 나뉘어있었다. 

호그와트 느낌이 나던 광경

호그와트 느낌이 났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는데 자꾸 해리포터 시작하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한 풍경이었다. 룩셈부르크는 작은 나라라서 당일치기 여행으로 적당한 코스였고 대중교통이 전부 무료라 관광객이 우리도 그냥 탈 수 있었다. 왕궁도 들리고 웬만한 명소는 다 갔다. 시간이 남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유치원 같아 보이는 곳에 있는 놀이터에서도 놀았다(ㅎㅎ). 저녁 먹기엔 시간이 일러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목이 말라서 주스를 벌컥벌컥 마셨다. 카페 주인이랑 대화를 했던 거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좀 어둑어둑해져서 저녁을 먹기로 했던 룩셈부르크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갔다. 달달한 맥주 있냐고 물었더니 없지만 본인이 제조해줄 수 있다고 하길래 믿고 맡겨보았다. 지금은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맛있어서 다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딸기맛이 났던 것 같다. 음식은 맛있었다. 좀 짜긴 했지만 유럽에서 외식한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 다들 매쉬드포테이토를 맛있어했다. 기차 탈 시간이 되어서 버스를 타고 역으로 갔다. 

잠깐 맑았던 룩셈부르크 하늘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게 브뤼셀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역시 절대 한국으로 가지 않겠다며 우리 넷이 같이 잘 살아남아보자고 했었는데, 다음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었다. 비행기를 끊고 보증금을 해결하고 급히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방에서 많이 울었다.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떨어졌다는 불안함이 무서우면서도 재밌었고, 한국에서 쉽게 할 일들도 서툴게 하면서 적응하는 게 즐거웠다. 양가의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이 많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 한국문화를 좋아하던 중국인 친구들, 대만, 홍콩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가장 아쉬웠다. 교환학생을 가서 사람 때문에 많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인복이 있는지 벨기에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초대해 벨기에 음식을 해주신 고마운 분도 있었다. 한국인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 종종 연락하고 지내지만, 코로나 때문에 만날 수는 없었다보니 가까워지기는 어려웠다. 떠나려니 여러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길 막연하게 바랬고, 지금도 바란다. 


내 교환학생 생활, 짧은 2개월 정도의 시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중간에 마지막 이야기를 한 번 쭉 쓰기도 했는데 왠지 불평불만만 늘어놓게 되고 우울해지는 글이라 지웠었다. 룩셈부르크를 여행한 이야기로라도 마지막을 쓰게 되어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이름 새긴 맥주잔과 곰팡이 핀 튤립 구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