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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랑 Mar 06. 2020

내 이름 새긴 맥주잔과 곰팡이 핀 튤립 구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마지막 날

호스텔 체크 아웃이 10시라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어제는 방에 친구랑 둘만 있어서 편하게 준비를 했는데, 오늘은 새벽 늦게 들어온 룸메이트(?)가 아직 자고 있었다. 조심조심 준비해서 9시 30분쯤 체크아웃을 하고 조식을 먹었다. 어제랑 메뉴가 똑같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하이네켄 박물관을 10시 45분에 예약해놔서 밥을 빨리 먹어야 했다. 큰 짐은 호스텔에 맡겨놓고 양치는 못하고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늦긴 했지만 지하철 역 앞에 있는 알버트 하인 마트에 가서 맥주 안주로 먹을 Lays를 하나 샀다. 도착했을 때 10시 45분 팀은 이미 출발했지만 11시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팔찌에 두 개의 토큰을 끼워준다. 코스 맨 마지막에 바가 준비되어있는데 거기서 하이네켄 맥주로 교환할 수 있다고 한다. 

관광(?)은 영어 안내로 이루어졌다. 누가 설립했고, 과거에 이 곳이 어떻게 공장으로 쓰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영어라 듣기가 어렵기도 했고, 굳이 궁금하지도 않아서 자세히 안 들었다. 중간중간에 맥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보리(?)를 젓거나 가는 것들이었다. 하이네켄 맥주병에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곳이 있었고(6유로 정도였던 듯) 웰컴 드링크를 줘서 다 같이 Proost!를 외치고 마시기도 했다. Proost는 네덜란드어로 Cheers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진 찍는 곳도 있었고, 하이네켄 맥주들을 배달하는 듯한 뒷배경에서 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찍을 수도 있었다. SNS 홍보용 사진을 찍을 만한 곳도 많았다. 

마지막 바에 도착했다. 생맥주 기계들이 있길래 저기 가서 토큰 주고 술을 받으면 되는구나 싶어서 무작정 직진했는데 알고 보니 누가누가 생맥주를 잘 따르나 대결을 하는 곳이었다. 졸지에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대결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번에 4명이 대결할 수 있었는데 남은 자리가 1자리라서 친구랑 같이 서있었다. 생맥주를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알려주고 대결을 시작했다. 근데 중간에 착오가 생겨서 생맥주잔에 거품만 가득 담겼다.(ㅠㅠ)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리 맥주를 보고 웃었다.ㅎㅎ 결국 대결이 끝나고 진행하는 사람이 우리 맥주를 다시 따라줬다. 

그냥 맥주를 주는 바를 다시 제대로 찾아서 맥주를 한 잔 받아왔다. 역시나 오리지널 맥주는 너무 내 취향이 아니다. 차갑고 탄산 많은데 꿍한 맛이 나는 게 아주 별로다. 과자라도 사가서 다행이었다. 토큰을 대결에서 하나, 맥주 받느라 하나밖에 안 써서 친구랑 둘이 총 2개가 남아있었다. 친구가 다시 대결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다시 한 대결에서 친구가 1등을 했고, 하이네켄 맥주 모양의 배지를 선물로 받았다. 진행하는 사람이 "15분 전쯤에 대결에 참여했던 사람인데, 일취월장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름만 새겼는데 새겨주시던 분이 센스있기 새겨주신 Amsterdam 2020

남은 코스는 기념품점이었다. 맥주 따개, 맥주병, 맥주잔, 우산, 옷 등등 다양한 기념품이 있었다. 맥주잔을 살까 하다가 하이네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굳이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나왔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맥주잔을 사서 맥주잔에 자신이 원하는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이었다. 맥주잔 4~6유로(사이즈에 따라), 글씨 새기는 거 3유로였다. 요즘 과일 맥주 먹는 거에 재미가 들려서 내 이름 새긴 잔에 먹으면 좋겠다 싶어 구입을 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입장권이 18유로나 하는데 솔직히 돈이 아까웠다. 하이네켄의 엄청난 팬이거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와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지막 날, 날씨가 엄청 좋았다. 맑은 하늘이랑 적당한 구름이 합쳐져 아름다웠다. 네덜란드에 운하가 많아서 운하랑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도 좀 찍고, 튤립을 사러 꽃시장으로 갔다. 튤립 구근을 판다고 해서 기념으로 사가서 키워 볼 생각이었다. 꽃시장이 나름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다 비슷한 제품을 팔기는 했지만 조금씩 달랐다. 각 시장을 다 둘러보고 제일 키우기 쉬워 보이는 제품을 골랐다. 캔으로 만들어진 화분에 구근 1개와 흙을 함께 파는 제품이었다. 물은 매일 주면 된다는 말까지 듣고 2.5유로에 구매를 했다. 이건 나중 이야기이지만 이날 밤 11시쯤 집에 도착해서 피곤하지만 튤립을 빨리 심고 싶은 마음에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튤립 구근에 곰팡이가 펴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곰팡이가 펴 있으면 꽃이 안 자란다고 한다. 사기당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곰팡이를 씻어서 심어봤지만 약 5일이 지난 지금 전혀 자라지 않고 흙을 조금 파보니 곰팡이가 다시 생겼다. 버려야 할 것 같다. 

튤립 구근을 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팠다. 어제 미트볼 가게에 가다가 줄 서 있는 팬케이크 집을 봤어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근데 정말 우연히 역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같은 팬케이크 집의 다른 지점을 발견했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줄도 안 서 있어서 들어갔다. 네덜란드 전통 팬케이크와 미국식 팬케이크를 다 파는 집이었다. 혼자 하나 다 먹으면 느끼하다는 후기가 있어서 네덜란드식 팬케이크 하나와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유럽 와서 신기했던 점이 하나 있는데, '에이드=탄산'이 아니다. 한국에서 에이드 시키면 당연히 탄산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기는 그냥(?)과 탄산 두 가지 옵션이 있거나 옵션이 없으면 탄산 없는 채로 나온다. 그리고 탄산이 조금 더 비싸다. 우리는 느끼할 것 같아서 탄산이 있는 걸로 시켰다. 미국식 팬케이크와 다르게 한국의 전처럼 매우 얇게 나온다. 사과, 시나몬, 아이스크림 토핑이 얹어져 있는 걸로 시켰는데 시나몬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름 맛있게 먹었다. 레모네이드는 엄청 맛있었다. 계산을 하니까 이 가게 로고가 새겨진 나막신 하나를 줬다. 아마 시키는 팬케이크 수에 따라 주는 것 같다. 


아마 3-4시쯤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저녁 8시에 브뤼셀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했고, 친구는 저녁 10시 30분에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해서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 근처의 '룩아웃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성인용품점이 있길래 구경하려고 들어갔다. 야한 속옷부터 어디 쓰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지하철 타고 중앙역에 내렸는데 속이 느끼해서 라면, 짬뽕 이런 게 너무 땡겼다. 원래는 저녁으로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에서 파는 햄버거나 피자를 먹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근처에 아시안 마트까지 가려면 왕복 한 시간이라 가면 전망대는 못 가는 상황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시안 마트에 가서 라면을 사 오기로 했다. 

아시안 마트 가는 길에 무슨 매장인지는 모르겠는데 잡다한 물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유리창 너머로 내가 찾아 헤매던 텀블러를 닦을 수 있는 수세미가 보였다. 아시안 마트에서 라면을 사서 그 매장에 들렸다. 다이소에서 천 원이면 살 걸, 3유로가 넘는 가격이었지만 브뤼셀에서 도저히 찾지 못했기 때문에 구매를 했다. 그 앞에 알버트 하인이 있어서 닭고기로 된 미트볼도 샀다. 이것저것 사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8시 버스에 늦지 않으려면 매우 서둘러야 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김치라면'을 샀는데 국물은 맛있는데 면에 맛이 하나도 베기지 않았다. 좀 실망스러웠지만 국물이 만족스러워서 다행이었다. 


7시 15분쯤 나왔는데 구글맵에 의하면 버스 정류장까지 약 40분이 걸린다. 간당간당했다. 구글맵에 21분에 타야 할 지하철이 온다고 해서 갔는데 지하철 도착 시간이 달랐다. 10분이나 뒤에 지하철이 온다고 했고 결국 구글맵에는 뜨지 않지만 지하철 노선도상으로 좀 더 빨라 보이는 방법대로 갈아타서 가기로 했다. 1번 환승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 환승하는 곳이 매우 가까웠고 무사히 타서 촉박하지만 늦지 않게 역에 내렸다. 오면서 플릭스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 찾아봤지만 사람들마다 말이 달랐고, 어플에서 안내한 방향으로 갔는데 막힌 길이었다. 결국 역무원한테 물어서 길을 찾아갔다. 플릭스 버스 정류장이 대체로 좀 외진 곳에 있어서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아직도 문제가 남아있었다. 여권 검사. 버스 출발 5분 전, 불안한 마음으로 표를 내밀었고 정말 다행히도 여권을 검사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국경을 넘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밤이라 그런지 예정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고, 내가 내리니 친구가 버스를 탔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암스테르담 여행이 끝이 났다. 시작부터 여권을 챙기지 않고 보스턴백이 너무 무거웠고, 정말 많이 걸어서 아직도 다리가 아프지만 여행이 원래 다 힘들고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져서 재밌는 거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룩셈부르크도 갈 거고 친구 보러 튀빙겐이랑 프랑크푸르트에도 갈 건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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