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일기
가을바람이 불어와 가을을 실어가고 있다.
가을인데 더워도 너무 더웠지. 보란 듯이 독기 품은 바람이 겨울에 맞설 패딩까지 꺼내게 만들었다.
어느 달에도 31일은 있지만, 11월로 달력을 남기자 12월의 31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에 놀란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나는 기분. 올해가 이렇게 가는구나
나는 또 어떤 새해를 맞이할까. 나이가 들면서 내 기준이 강해져서일까.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일 저런 일 많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고 일상을 단단히 지키려 노력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들은 겨울의 눈처럼 춥지만 녹아들 것이다.
[하퍼스]로부터 소설을 거절당한 쉰아홉 살의 버지니아 울프는 부엌 청소와 또 다른 원고로 실망을 이겨 내며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이 절망의 골짜기가 나를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고독은 거대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옛날의 박력이다.
올 한 해 나는 고독과 싸웠다.
전세계약을 위반하고 배째라 하는 집주인과, 외벌이로 힘들어하는 남편과, 숨 막히게 사랑을 주고받은 아이에게서 왠지 모를 무기력과 고독감에 몸살을 자주 앓았다. 왜 이런 기분에 자주 사로잡히게 되는지 괴로웠다.
그 옛날의 박력이 그립기도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다.
라디오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사랑과 이별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듯 슬픔과 기쁨, 빛과 어둠 다 짝이 있기 마련.
자신이 고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고독의 짝'을 찾아보라고 했다.
아마 고독의 짝꿍은 '충만', '풀니스'fullness 이런 단어를 연상하게 한다고.
그걸 찾는 순간 고독은 아마 사라질 것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빨간 문이 예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간식으로 줄 마들렌 포장에 리본 하나가 더해지고,
아메리카노를 시킨 손님에게 모양에 실패한 연습 쿠키를 곁들여 주는 친절.
부쩍 추운 날씨에 감기엔 걸리지 않았는지 안부를 묻는 친구의 문자.
고독을 벗어나게 해주는 작은 씨앗들 아닐까.
5,4,3,2,1...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거창한 연말이 아니어도
작은 고마움으로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는 연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