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아, <여름의 피부>
"몸의 기운이 올라와야 기침도 없어지죠."
한의원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이비인후과에서 들었다. 기침으로 한 달을 채우고 있다. 감기약도 소용없어
민간요법에 기대어 본다. 커다란 냄비에 배를 듬성듬성 자르고, 대추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옅게 대추 냄새가 흐른다.
"몸에 좋은 거야. 물처럼 마셔."
한 모금 맛보는 시늉을 하고
"읔! 싫어. 찬물 줘."
못 먹을 걸 먹은 사람마냥 기겁을 했는데...
엄마들은 그렇게 몸이 쑤시고 아픈 것들을 견뎌내고 있었구나. 엄마의 바지런함 속에 쑤셨을 통증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지만 이른 새벽, 기침 때문에 아이와 남편이 뒤척여서 안 되겠다.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고 미끄러지듯 침대에서 나와 물을 데운다.
밤, 부엌 식탁에서 자신의 나신을 그리는 중년의 여인을 떠올린다.
두 번의 이혼을 겪고 다섯 살 난 아들을 떠나보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낙관하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오랜 시간 알 수 없었던, 바로 그 여인.
이 시리즈의 제목은 〈나는 I AM〉이다. 〈나는〉으로 끝나는 그 제목이 좋다.
그 뒤로 어떤 단어든 문장이든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있는 풍경과 수많은 가능성을.
1955년 우르타도는 한 인터뷰에서 이 시리즈의 기원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풍경이고, 세계이고, 당신이 가진 전부이고,
당신의 집이고, 당신이 사는 곳입니다.
그의 말을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다시 적어본다.
나는 풍경이다. 나는 세계이다. 나는 내가 가진 전부이다. 나는 나의 집이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현아, <여름의 피부> 중에서
그러니까 나는,
뒤에 이을 말을 생각한다. 지금 주요 포지션은 엄마인데.. 엄만데...
물려줄게 비염이라던가, 의지박약, 탄수화물을 사랑하는 식습관... 따위는 주고 싶지 않은 엄마이다.
밤, 식탁에서 그렸다는 루치타 우르타도의 그림을 본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녀의 그림에서
나를 본다.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다 놓아버린 듯 지내지 말자.
깊은 밤 식탁에서 삼일도 가지 못할 다짐을 하며. 그래도 생각했던 삶이 아닐지라도.
새벽을 헤쳐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