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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챨스디킨스 Nov 30. 2020

큐레이터와 도슨트 사이

나는 학예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2007년 8월...


OO사이버대학교 예술경영학과 복수전공 멀티미디어 디자인학 전공


내가 학과를 원래 전공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나마 내가 버티면서 공부를 했던 건 학예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버텼다. 일하면서 학교 수업 공부하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학예사에 대한 나의 로망이 컸다.


그렇게 학과 과목들 박물관학, 미술관학, 전시기획 그 외에 여러 과목들을 4년 동안 들으며 제대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할 찰나에 학예사 시험을 준비를 하고 필기시험을 치렀는데, 역시나 떨어졌다.


학예사라는 직업이 무엇이기에... 나의 로망은 그때부터 깨졌다. 필기와 실기는 하늘과 땅 차이로 시험이 매우 어려웠다. 필기는 그래도 통과는 했지만 실기에서 매번 막혔다. 그래서 3번이나 떨어지고 내가 뭐가 문제인가 라고 생각을 했었더랬다. 결론은?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리고는 학예사의 로망을 접을 시기쯤에 박물관에서 도슨트 모집을 한다며 학과 게시판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고 그리고 도슨트 교육을 받고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전시해설가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학예사의 꿈은 접었다.


학예사의 꿈을 접은 이유는? 전시해설가로서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품의 해설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단순히 백과사전처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닌 작품의 작가나 그 사람의 생각 그리고 내면에서의 느끼는 점들... 물론 하나 간과하고 있는 점은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재밌게 풀어서 관람객들에게 전달해 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러한 전시해설가로서의 매력이 학예사보다 더 크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학예사라는 직업이 하는 일은 소위 말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예술품이나 작품을 전시 기획하거나 비용처리부터 여러 가지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정확하게는 작품에 대한 감성적인 부분을 이해하면서 따진다기보다 경영적인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예사라는 것이 그냥 단순히 박물관의 여러 경영이나 기획만 하는 것만 보고는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성 등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라는 건 내 생각이고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다. 소수이지만...)


그러나 학예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생각되었다. 인맥도 인맥이고 인턴기간과 인턴이 머무는 시간들을 종합적으로 다 계산해서 학예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학예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위 외국 박물관에서 학예사를 한 이력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우선적으로 그들을 채용을 한다. 이해는 한다. 아무래도 경험과 경력들이 필요한 자리이기에...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이걸 공부하고 시험 준비를 할 때쯤에 자격증 열풍이 불어서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장롱자격증으로만 생각해서 시험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학예사에 대한 매력이나 난 꼭 그걸 하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따두면 낫지 않겠냐는 소위 장롱자격증 소지자들이 많다. 당연히 필기는 책만 보고 있음 무사통과... 실기는 주관식이라 이건 채점하는 시험감독관의 주관적인 견해를 따지기에 여기서 운으로 붙거나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앞서 이야기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한 이유도 아마도... 아마도... 인맥으로 인해 그냥 붙여주는 경우도 존재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때 당시에 풍문으로 그런 말들이 오갔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주관식의 실기문제는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도 당시에 이슈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마음을 비웠다. 그냥 학예사는 버리고 전시해설가로서의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먹은 건 내가 나중에 정말 나중에 갤러리 같은 것을 지어서 내가 작품을 올리든 누군가 올리든 내가 한번 전시기획을 내 갤러리에서 해보고 싶은 생각을 마음을 먹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마음가짐이라며...)


전시해설가는 정말 매력이 크다. 이건 직업으로서나  문화적으로 매우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전시해설가를 직업으로 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봉사적인 개념의 활동으로서 인식이 있기에...

이걸 돈 버는 직업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공공의 문화를 알리는 직업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돈 버는 직업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전시해설가로서 돈을 벌려면 유명해지거나 요즘처럼 콘텐츠를 유튜브나 아니면 강의 같은 의뢰가 들어와야 기회가 주어진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첫 전시해설가로서 14년 동안 한 곳에서 한 박물관은 다른 기타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왜냐하면 영화를 전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국영화박물관이라고 하길래 포스터로 전시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역대 한국영화에 대한 자료들 즉 신문 사설과 기증한 품목들 그리고 배우들이 기증한 특별상 그리고 연도별로 보관하고 있는 한국 영상자료원 아카이브에 자료들이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외국... 특히나 이탈리아나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이 아카이브 시설은 오래전부터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국영화의 아카이브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도슨트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영화의 대한 영화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험난했던지... 그래서인지 더욱더 박물관에서의 전시해설이 나에게는 관람객들에게 의무감으로써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한국영화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애착이 간다. 전시해설가로서 한 곳에서 해왔다는 것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영화의 역사, 영화평론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에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 이 글을 어디까지 쓸지는 모르지만 전시해설가로서 내가 전시해설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 한국영화박물관은 상암동에 영상자료원 1층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기획전시관과 상설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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