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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Jul 25. 2024

끊어질 듯 이어진: 희한한 인연

서울숲 남산길

각 계절에는 구경가야 하는 꽃이 있다.

왜냐하면 그 계절에만 피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수국, 능소화, 연꽃 기타 등등을 구경해야 한다.


봄에는 개나리, 벚꽃, 장미 등등을 구경간다.

올 봄에는 엄마랑 같이 대현산 장미원을 갔다.

이름만 들어서는 굉장한 등산을 한 다음에 널따란 공간에 장미가 펼쳐져 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언덕배기에 다랭이 논 같은 구조로 장미를 심어놓은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온 시간이 아까워서 어디를 추가로 갈까 고민했는데

'서울숲-남산길'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저렇게 가면 서울숲에서 출발해서 남산까지 이어진다는 것이었는데,

그 길에 대현산 장미원이 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남산으로 향했다.


사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양도성처럼 지표가 되는 구조물이 계속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큰 길을 만났다가, 공원같은 곳을 지났다가,

둘레길 같은 곳을 만났다가, 다시 큰 길을 만나고,

굉장히 끊어질 것만 같은데 어떻게든 이어지는 희한한 길이었다.

아마 현재는 길도 뚫고 아파트도 지으면서 뚝 끊겨버렸지만 개발되기 전에는 산등성이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문득 사람 사이 인연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체 먼저 연락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이런 일로 연락하는 것이 굉장히 TMI이고 불편하지는 않을까?

나를 아직도 좋게 생각할까?

너무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에 단톡방이 아니면 연락을 이어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 주는 인연들이 있었다.

한 몇 개월 조용히 있다가도 새해복! 추석복! 생일축! ...을 날려주고,

몇 년을 조용히 있다가도 바뀐 프로필 사진을 보고 졸업을 축하해주고.


그렇게 끊어질 듯 이어진 인연으로 올해는 6년만에 만난 친구랑 여행을 갔다왔다.

6년 만에 만난 거 치고 어제 만난 사람처럼 수다를 떨었다.

서로 달라진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관계였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인연이 끊어질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잇는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매사에 걱정만 앞서지 말고, 일단 던지고 보자.

고마운 일이 있을 때,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뭐든 간에

개인 톡이 부담스러우면 단체 톡으로, 단체 톡도 부담스러우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좋은 인연이 흐지부지 끝나지 않도록.


인간이 산등성이를 끊어놓았지만 그 명맥을 둘레길로 이어놓는 것처럼,

무엇이 내 인간관계를 끊어놓더라도 열심히 이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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