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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주15시간 이상으로 하는 게 좋다

1년 이상 일했으나 퇴직금을 못 받는 경우에 대하여

by 미레티아

어쩌다보니 급하게 이번 달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인생의 중대사가 이렇게 하루이틀만에 결정되어도 되는 것인가 그래도 연구를 완전히 놓을 순 없고, 새로 일을 벌리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마무리하고 떠나기로 교수님과 합의를 보았다.


그러면 퇴사 시 준비 서류를 볼까. 음, 일단 경력증명서는 어딜가도 필요하니까 하나 떼어두고, 사직서, 개인정보보호서약서, 1년 이상 근무했으니 퇴직금 관련 서류, 다 작성했나?


...그리고 서류는 다 냈는데 퇴직금을 못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게 내가 작년 8월부터 계약서를 쓰고 근무하였는데, 당시에 남은 연구비가 애매해서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계약서는 주10시간 근로하는 걸로 쓰고 일하다가 올해 2월에 연구비 갱신이 되자마자 월급을 팍팍 올렸다. 사실 돈을 받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게 아니라 내 주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뜬 시간을 메꾸기 위해, 그리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한거라 불만은 없었다.


그렇지만! 퇴직금 적용 대상자는! 주15시간 이상 근무자라고 한다.

그러니 나는 올해 2월부터 퇴직금 적용 대상자이므로 실제로는 1년 이상 근로하였지만 1년 이상 근로가 만족하지 않아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닌 것이다.


참고로 건강보험서류주 15시간 이상 근무해야 본인이 근무하는 장소로 나온다.

그러니 경력증명서 대신 건강보험 서류를 내야겠다, 가 가능한 경우는 주15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이며, 나 같이 계약서랑 실제 기여량이 다른 경우경력증명서교수님 추천서를 따로 받아둬야한다.


이 점을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엄청 안타까워하셨다. 자꾸... 먹을 것을 사주신다... 교수님 제 덩치를 봐요 더 이상 못 먹어여


근로계약은 웬만하면 주15시간 이상으로 하자.
그게 안 된다면 경력증명서를 위해서 주5시간이라도 계약하자.
계약 없이 그냥 일하고 있다면 꼭 추천서를 받아두자.
추천서도 안 준다면 그 연구실은 그냥 때려치는 게 낫다.


그런데 내가 과학계의료계 양다리를 걸친(?) 입장으로써 보다보면

이게 뭔가... 전공의도 그렇고, 대학원생도 그렇고,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고 한정하면서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연구원을 써서 일을 해야 하는 것들도 그냥 대학원생이나 대학원 들어오고 싶어하는 인턴을 밤새도록 부려먹고, 전문의를 써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그냥 전공의를 밤새도록 부려먹는 것이다. 훨씬 가격이 싸게 동일한, 혹은 약간 안 좋더라도 평타를 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는데, 그러면 다음 단계를 못한다. 대학원생 학위는 교수님이 준다. 교수님이 안 주면 그냥 못 받는거니까 월급 없이 일을 하는 게 부당하지만 해야하는 것이다. (저는 거의 9년을 박사를 못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답니다...?!) 전공의도 마찬가지로, 안 하면 전문의를 못 따고 못 따면 할 수 있는 게 피부미용 밖에 없다.

이러니까 과학계도 의료계도 망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 아닐까?

우리는 열정만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보상이 없거나 적은 상태를 버티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만약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어서 집 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문제가 해결이 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퇴직금을 못 받아서 슬프지만... 그래도 경력증명서가 남았으니 만족한다!


'하찮은 사고뭉치 연구원'은 그래서 이번 글이 마지막이다.

이제는 전업 연구원이 아니게 되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간 당당하게 의사과학자 OOO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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