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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Mar 11. 2019

지중해의 영감



“밤은 우리로 하여금 단일성을 깨닫게 한다. 밤은 낮이 뚜렷이 선을 긋고 갈라놓은 존재를 모으고 섞어놓는다. 빛은 시샘하듯이 사물들 사이를 가로질러 슬그머니 끼어들고, 우리에게 그것들이 서로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그 사물들은 다만 하나일 뿐이다. 또 밤은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고,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찾고 있던 것을 드러내 보여 준다.”  -  장 그르니에     


어제부터 새로 손에 잡은 책이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입니다.    


“그르니에는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욕망과 덧없는 삶을 오가며, 때때로 대자연 앞에서의 명상이 영겁의 한 순간 완전한 행복을 체험하게 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 명상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떼어 놓고 마침내 우리가 아닌 그 무엇, 하지만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그 무엇과 마주하도록 한다.” 옮긴이의 말입니다.

   

이 책 <지중해의 영감>은 그르니에가 북아프리카의 싼타 크루즈, 알제리, 메디나 이탈리아 로마, 베로나, 세빌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등지를 여행하며 느낀 감상들을 쓴 글입니다.


글이 무척이나 서정적입니다. 책 몇 쪽만 넘겨보아도 이 사람이 얼마나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글이 묘사하는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세상이고 따라 하고 싶은 글 분위기입니다. 그르니에 전집이 있다더군요. 그의 다른 책들도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아야 할 곳입니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2007 10.18    산비     


   

쟝 그르니에(1898-1971)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철학자입니다. 그의 글은 시적 명상과 묘사, 철학적 반성, 풍부한 서정으로 가득 차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풍경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서정적입니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아프리카, 그곳은 빛이 넘쳐흐르고 하루에도 시시각각으로 빛이 변하는, 알몸인 채로 유린당하는 땅이다.”

“별들은 광물질의 빛남으로써 땅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의 빛남에 응답하곤 했다.”     


빛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더불어 밤에 대한 명상적인 서술도 많이 보입니다. 빛과 어둠, 그것이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명상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살아있다는 그 단 하나의 힘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대는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리라. 물, 구름들, 침묵 그리고 밤을.”

“해가 떠오르는 최초의 시각에 완벽하게 홀로인 채, 팔라티나 언덕에 올라 부서진 기둥들 사이를 거닐어 보라.”     


로마의 평원에서 그르니에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로마는 그런 곳인가요? 사람들이 두 눈을 들면 어디에서나 한 조각의 추억, 아니면 차라리 하나의 현재가 바로 자신을 위해 다시 태어나는...      


그르니에는 그리스에 대해서 말하려면 어떤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다 하네요. 이미지 대신에 하나의 감성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그의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점점 커다랗게 자라나다가 마침내는 그 이미지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지중해의 영감> 책 제목처럼 우리의 영혼에 신비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책입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2007 10.18  당신의 문우   산비        



聖人은 和之以是非하야 而休平天鈞하나니 是之謂兩行이니라.

“성인은 시비를 조화해서 천균에서 편안히 쉰다. 이것을 일컬어 양행이라 한다.”    


장자를 읽으며 출근하였습니다. <장자>와 <시경>을 묵혀두고 있는데, 저녁마다 틈틈이 읽어보려 합니다.  

  

성인은 시비를 따져서 대상을 차별하지 않고 저절로 균등해지는 천균의 세계인 자연에 맡긴 채 편안히 쉰다고 합니다.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하여 시비를 나누지 않고 천하의 시비를 따르기 때문에 是와 非가 모두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모순과 대립이 동시에 함께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모순이 없는 경지를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경지입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이 행복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행복을 가져오지도 않고, 가져온 적도 없다. 오히려 사랑은 언제나 번민이고, 전쟁이고, 내 판단이 옳은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느라 잠 못 이루는 밤들이다. 진정한 사랑은 엑스터시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 파울로 코엘료    


그렇습니다. 사랑은 고통입니다. 괴로움이고 안타까움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울부짖음입니다. 사랑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율동하고 몸부림치고 날개 짓하는 가장 역동적인 정신활동입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며, 꿈과 희망을 견인하는 강력한 엔진입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죽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사랑은 쉽게 끝납니다. 쉽게 만나면 쉽게 헤어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렵습니다. 만남이 어려웠던 만큼 헤어지기도 어렵습니다. 육체의 결합은 일순간으로 끝나버리지만, 영혼의 결합은 永續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따뜻한 영혼의 온기를 교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배려해야 합니다. 독단은 상처를 낳고, 독행은 오해를 불러옵니다. 혼자 넘겨짚지 말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가슴을 적셔주고 영혼을 울리는 비입니다. 사람은 가끔씩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눈은 항상 눈물에 젖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건조해서 눈을 깜박일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도 감동과 희열과 연민의 눈물로 항상 젖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메마른 영혼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차고 넘칠 정도의 감격스러운 일들을 겪어야 합니다. 영혼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7 10.19  당신의 영혼의 동반자  산비     



쟝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은 책입니다. 감성적인 문체이긴 한데 조금 알쏭달쏭합니다. 책을 읽다가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을 되돌아가서 다시 읽었습니다. 풍경에 대한 감상이지만 사람에 대한 생각들이 더 많이 담겨있습니다.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가 각주 없이 나옵니다. 선행학습이 돼있지 않았다면 어려움을 더 겪을 뻔했습니다.     


“애정 없이 만들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묶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 천천히 익은 과일일수록 더 달콤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의 선택이 우리를 구속하기는커녕,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으리라.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하여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장애에 부딪쳤을 때이다.”     


고난이 없으면 성취도 없습니다. 콤플렉스와 핸디캡이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인간은 어떤 장애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고 애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삶의 모순이지만, 그것이 또한 삶의 진실입니다.     


“삶이란 절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노엘 베스페르    

“나는 낯선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런던은 낯설게 만드는 데 뛰어난 도시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빠르게 외롭다는 것을 느끼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됨을 느낀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저항에 부딪히고...”     


정말 런던은 그러합니까? 어떻던가요? 런던을 동경했습니다. 우중충한 런던의 하늘, 안개에 젖은 템즈 강변을 걷기를 갈망했습니다. 그곳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서울 하늘 아래 있습니다.      


“공정함은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있어야 한다. 반드시 대상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의 균형이다.” 그르니에는 어떤 의미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를 다녀오신 프로네 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또 자신에게 그의 모든 운명을 걸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무시해 버려야 한다.” 약간 도가적인 사상이 그르니에에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有가 있는 것인지, 無는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무가 있는 것인지, 유는 없는 것인지...    


“살아가노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갈등이 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우리의 운명으로 알고 감수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져 있다. 의지할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역 안에서만 우리를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가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승리는 일회적인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 마음의 혼란을 누르고 얻는 승리 이리라.”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결국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겠지요. 기대를 하지 않아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불만이 없어집니다. 그렇지만...    


2007 10.19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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