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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Mar 12. 2019

행복을 주는 그림


“저 뜰에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작년과도 다르고, 내일도 다를 것입니다. 순간순간 내뿜는 아름다움을 허심탄회하게 보지 않고 작년과 비교하거나 하면 지금 저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입니다.” - 법정    


자연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왜 어제의 모습과 다른 가 시비 걸 수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냥 다름입니다. 그 다름을 발견하고 찰나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의 단풍은 작년과 다르고 오늘의 단풍은 어제의 단풍과 또 다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내일은 내일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즐거움에 대한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괴로운 일이 많은 데 어떻게 만날 즐거울 수 있겠는가? 부모님이 우환으로 누워계신데, 집에서 싸우고 나왔는데, 아이가 속을 썩이는데 어떻게 즐겁게 웃을 수 있겠는가?’    


세상을 살면서 신이 아닌 이상 괴로움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한 가지의 번민이 생깁니다. 그 모든 번민이 해결되어야 즐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즐거울 수 없을 것입니다. 해결책은 마음에 칸을 만들어 괴로움들을 서랍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어떤 괴로움이 내 온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추슬러 마음의 ‘괴로움 칸’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픈 일이 생겨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 슬퍼하다가 그 슬픔을 마음의 창고 ‘슬픔 칸’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전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가르쳐준 방법입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이 순간은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그 괴로운 일 때문에 지금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괴로움의 바닷속을 허우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내 주위에 늘 많은 사건들이 벌어져 나를 괴롭히지만, 그 괴로움을 허허로운 웃음 한 소절로 날려버리고 나는 오늘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07 10.23     산비          



오늘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쓴 <행복을 주는 그림>을 읽었습니다. 책 표지의 디자인이 반 고흐의 ‘꽃 핀 편도나무 가지’라 인상적입니다. 전에 반 고흐 책에서 본 그림, 아시지요? 동생 테오의 아들에게 주기 위해 그린 그림.    


책의 주제는 ‘행복’입니다. 행복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에서 모티프를 가져옵니다. 스물다섯 편의 명작 그림들에 형상화된 얼굴, 형태, 색감, 몸짓을 통해 읽어낸 행복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합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도록 교훈을 들려줍니다.    


“행복은 살아있는 감정, 태어나고, 성장하고, 피어나고, 사라지고, 꺼져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낮과 밤이 그러하듯 행복에는 하나의 사이클이 존재한다.”


책의 구성이 교묘합니다. 행복의 탄생, 충만, 황혼, 사라짐, 귀환을 아침, 점심, 저녁, 밤 그리고 새벽에 빗대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느낌과 교차시키며 그런 그림들을 골라서 보여주고 설명합니다.     


고흐도 나오고 모네나 고갱의 그림도 있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미술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정신 의학자라서인지 인간의 병리학적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행복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즐겁고, 내가 보는 것이 아름다우며, 나 자신이 향기롭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행복의 강 위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젓는 것이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미소 지으며, 웃음으로 처음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행복은 굉장히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옆에서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가진 게 없어 보여도 마음으로는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나 자신이 행복의 주체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행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행복에 행복의 본질이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앙드레 지드는 말합니다. 행복해지고자 함은 본능입니다.     


“사랑은 얼굴을 마주 보고 완전히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동으로 행동하고 건설해 나가는 것, 목표를 향해 함께 항해하는 것이다. 육체보다는 정신, 게다가 영혼에 더욱 충실한 사랑. 필리아, 그것은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다. 피곤한 느낌, 노후한 감정이 강요되지 않는다. 필리아, 그것은 그 대상이 자기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능한 사랑이다. 그의 부재나 멀어짐이나 결핍에 대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우정에 따른 행복, 상호적인 애정, 존경심, 나눔의 사랑이 여기 속한다.”     


필리아! 좋은 밤 되십시오.    


2007 10.23     산비        



“내게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밥 먹고 몇 시에 글 쓰느냐’는 식으로 일과를 묻는 거라면, 내겐 그런 일과가 없어요. 하루하루가 달라요. 예를 들어 다음 주 화요일엔 지붕 고치는 사람이 올 거예요. 수요일엔 1박 2일 여행을 갈 거고요.”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의 말입니다. 8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녀의 일상입니다. 매일 같은 일과라고 해도, 오늘이 어제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른 삶. 정해놓은 일과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습관을 규칙적으로 지켜나가되 필요에 따라 합리적인 융통성을 발휘하며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삶을 꾸려나가면 됩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노란, 갈색의 주홍빛의 단풍이 조금씩 물들고 있었습니다. 애당초 같은 초록의 잎들이었는데 제각각의 빛깔로 단장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노년도 각자의 역량에 따라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 보이겠지요. 일교차가 커야 단풍이 제대로 든다고 하는데, 예쁘고 곱게 물들기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렇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2007 10.24     산비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행복을 주는 그림>을 완독 하였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클로드 모네의 ‘작은 양산을 들고 왼쪽으로 돌아서 있는 여자’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바람이 몹시 부는 초원의 언덕 위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양산을 받쳐 들고 있는 여인의 그림. ‘모네 전’에서 보았던 바로 그 그림입니다. 그때도 바람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져 무척  인상  깊었는데 책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어서 더욱 감동적입니다.    


“각자는 각자의 삶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단지 행복을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행복을 창조하고자 한다.”

“이 행복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을 체험했다는 것은 영원한 진실로 남을 것이다.”   

  

이 두 구절이 이 책의 주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능동적인 행위에 의해 창조되어야 합니다. 행복 뒤에 불행이 따라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 뒤에 오는 이별의 아픔을 미리 걱정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꿈꿉니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수많은 선인들이 가르쳐주었지만,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기실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비록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고 파국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서로가 사랑했다는 진실만은 영원히 이 우주에 남을 것입니다.    

  

2007 10.24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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