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비 Mar 22. 2019

사랑이 스치면


         

“자연의 모든 노력은 쾌락을 지향한다. 쾌락은 풀잎을 자라게 하고 싹을 발육하게 하며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 / 둔한 유충을 번데기로 변하게 하고 번데기의 감옥에서 나비를 해방시키는 것도 쾌락이다. / 나는 책 속에서보다 쾌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 명쾌함보다는 난삽함을 더 많이 발견했다. / 우리의 온 존재가 스스로를 의식하는 것은 쾌락 속에서이다.” - 앙드레 지드    


지드가 말하는 ‘쾌락’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정밀한 사유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자연의 모든 노력이 쾌락을 지향하고 있다’는 지드의 선언에 깊은 공감을 갖게 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합니다. 유충이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것도 자유와 즐거움, 안락함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쾌락을 향해 나아갑니다. 쾌락은 이 우주를 팽창시키는 에너지입니다. 우주는 자유롭게 스스로를 확장해나갑니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쾌락에의 의지입니다. 엔트로피가 비가역적으로 증가되어 가는 것도 쾌락을 향한 자연의 몸부림입니다.


잘 나가던 모임이 깨지는 것은 더 이상 거기에 ‘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이별하는 것도 만남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겹고 우울한 것은 쾌락에의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떡해야 즐거울 수 있을까요?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입니다.   

  

마음의 평정은 욕망을 줄임으로써 성취할 수 있습니다.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쾌락을 추구하지만 절대 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남겨놓습니다. 먹을 만큼만 먹습니다. 때가 되면 버리고 떨쳐내고 홀연히 침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진정한 쾌락입니다.   

 

저도 쾌락을 추구합니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신나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즐거울 수 있는지를 연구합니다. 재미있을만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재미없는 일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들을 시도하고 평가합니다. 음식도 퓨전과 복합을 선호합니다. 이것에 저것을 넣어보고, 볶아보고, 끓여봅니다. 새로운 맛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새로운 것을 배워봅니다. 새로움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글감을 찾아 스크랩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더해 글을 써 보냅니다. 매일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이 늘 새롭습니다. 글을 읽고 미소 지을 당신을 생각하면 저도 덩달아 흐뭇해집니다.     


2008 3.25   산비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우리가 한 번쯤 사유해봐야 할 글귀들의 보고입니다. 책의 여기저기에 빛나는 문구들이 널려있습니다. 그래서 ‘<지상의 양식>으로 우리의 영혼은 달라졌다.’는 찬사를 듣는 것이겠지요.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삶을 가장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복지부동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다니던 길로만 다니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일을 삼가고, 골치 아픈 일을 안 만들면 됩니다. 아무 발언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쁘지 않은 평균적인 삶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아름답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고민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도전하고 성취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헛된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진리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우주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연구하여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꼭 실현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 죽음이란 끔찍한 거야.”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강인하게도 하고, 허약하게도 만듭니다. 이생에서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해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삶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웁시다. 자신의 생업에 매진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미술을 감상하고, 땀 흘려 달리고 산에 오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면 삶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야채 재배인의 수레가 키케로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보다 더 많은 진실들을 실어 나른다.”    


실천적 지혜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을 통해 익힌 배움보다, 야채를 실제로 키워보고 재배하고 나르는 것에 더 많은 진실들이 담겨있다는 가르침이겠지요. 직접 부딪치고 체험하고 겪어보는 삶을 살아갑시다.      


2008 3.26    산비     



“죽고 싶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읽었던 정희재 님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난주 ‘이주향의 책 향기’ 코너에 이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주향의 책 고르기 성향이 우리와 아주 닮아있습니다. 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든지,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 사랑 그리고 마무리>도 이 코너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공포를 안겨주더군요. 다시는 사람 사는 세상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지요. 아름다움은 순간에 지나가, 다시는 반복해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나면 자신의 에고가 무너지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성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험과 비슷하지요. 정희재 님은 카일라스 산을 보고 아름다워서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워서 몸이 굳어버리는 것, 영원히 지금 이대로였으면 좋겠는 것,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죽고 싶도록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순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조건과 상황이 절묘하게 만나 빚어진 찰나적 아름다움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주헌 님도 ‘살아 이런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하며 고백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며,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까닭입니다.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감수성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플라톤은 “사랑이 스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 만물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모든 사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미소 짓고, 손짓합니다. 관심 없던 나무와 꽃과 나비와 벌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늘의 달과 별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이 스치면.

   

2008 3.28      산비       

매거진의 이전글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