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큼이나 가볍지 않은 질문이다. 여행기의 서두에 죽음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이 험난한 모험의 여정이었던 까닭이다. 몸이 힘들고 고된 것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인지. 육체의 고통은 극복하면 성취감이 생기지만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대한 두려움 뒤엔 무엇이 남게 될지. 힘들어서 죽겠다가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었던 위험이 그 길 위에 있었다.
십 년 전, 그러니까 2009년에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히말라야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온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꼭 히말라야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트레일들을 다녀봤지만 히말라야만큼이나 영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곳은 없었다. 히말라야에는 멋지고 아름답다는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좀 더 영적이고 숭엄한 무언가가 있다. 히말라야에 갔다 오면 무엇을 얻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온 느낌이 든다. 온몸의 기를 다 빨린 듯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공허감에 사로잡힌다. 공허도 중독일까?
이번에는 히말라야 트레킹 십 주년을 기념하여 대규모 원정대를 꾸렸다. 내가 경험했던 축복과 행복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총 9명의 대원이 이번 여행을 함께 했다. 구민체육센터에서 함께 운동하는 동호회 회원들과 나의 은사님이신 김 교수님이 동행하셨다. 그동안 다녔던 해외 트레킹 중에 최대의 인원이다. 인원이 많은 만큼이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서로의 입장과 처지가 달랐고 가치관과 생각이 달랐다. 먹고 마시고 자는 스타일도 제각각이었다. 숙소의 레벨을 별 몇 개의 수준에 맞출지, 포터는 몇 명이나 써야 할 지에 대해서도 각자 의견이 달랐다.
네팔 카트만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 노선을 운행 중이다. 중국 베이징이나, 싱가포르, 태국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서 들어갈 수도 있다. 나 혼자였다면 저렴한 중국의 남방항공이나 에어 아시아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가성비보다 가심비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의견을 수렴하여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만족도가 높은 대한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려면 카트만두에서‘포카라’로 이동해야 하고,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려면 ‘루클라’로 가야 한다. 포카라는 육로를 통한 버스 이동이 가능하지만 루클라는 오직 비행기나 헬기로만 들어갈 수 있다. 여의치 않으면 지프차로 아랫마을까지 접근한 후 이틀을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루클라 공항’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라는 것! 활주로가 짧아서 경사를 이용하여 뜨고 내린다. 착륙 과정에서 비행기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이번 여행의 목적지 ‘콩데 산’이 있는 쿰부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서는 루클라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루클라 가는 비행기는 활주로 사정상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우기가 아닌 봄, 가을 시즌에도 자주 결항되곤 한다. 그래서 일정을 짤 때 이런 상황을 대비한 예비 일을 넉넉히 두어야 한다. 우기에는 이삼일은 고사하고 일주일씩 비행기가 못 뜨는 경우도 허다하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네이버의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네히트)’ 사이트에 가보면 루클라 탈출에 관한 무용담을 흔히 볼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십 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히말라야에 갔을 때는 루클라 비행기에 대해서 별로 걱정이 없었다. 운이 좋았던지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날 루클라에 잘 갔고, 트레킹을 마치고도 루클라에서 카트만두로 아무 문제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는 게 병이라고 알아갈수록, 정보의 양이 쌓여갈수록 걱정은 커져만 갔다. ‘아!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게다가 8명의 대원을 이끌고 있는 대장의 입장이 되고 보니 더욱 고민이 많았다. 괜히 사람들에게 히말라야 가자고 부추겼나? 남들은 가지 않는 우기에 꼭 히말라야에 같이 가자고 해야 했을까? 일정이 엉키면 죽도 밥도 안 될 텐데 어쩐다지...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은 커져갔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미룰 수가 없어 네팔 국내선 예매에 나섰다. 그런데, 어라, 대표적인 항공권 비교 검색 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에 카트만두 - 루클라 노선이 뜨지를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현지 여행사에 알아보니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 활주로 재포장 공사로 인해 루클라 가는 비행기가 카트만두에서 뜨지 않고 라메찹 공항으로 가서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메찹’까지는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4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복잡하다. 어떡하지? 공사기간이 4월부터 6월말까지라는데 과연 공기를 맞출 수 있을까? 역시나, 공사는 6월까지 끝마치지 못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몬순 우기인 7, 8월 두 달은 공사를 중단하고 루클라행 비행기가 카트만두에서 정상 운항. 공사가 재개되는 9월부터는 다시 라메찹 공항으로. 우기라서 좋은 점도 있다.
네팔 국내선 항공권은 네팔 현지 여행사인 ‘에베레스트 아리랑 여행사(MEA)'를 통해서 예매했다. 네팔 타라 항공 예티 에어라인에서 직접 예매하는 것보다 10%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표를 구매할 수 있다. MEA 이호철 대표로부터는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았다. 네팔에서만 13년 째 살고 계시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보다 네팔이 더 편하다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세 번의 팀워크 훈련 산행을 실시했다. 9명 전원이 다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이나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이번 여행의 재무적인 일을 총괄한 나총은 먼저 출국해서 덴마크를 여행하고 코펜하겐에서 카트만두로 들어와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련된 짐은 모두 대장에게 맡겨두고. 그 바람에 공용 짐을 포함해서 내가 책임져야 할 짐이 많아졌다.
7월29일 오후 2시25분 비행기. 인천 공항 2터미널에 12시 정각까지 모이기로 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도착했는데 회사에 들러 업무를 보고 오는 재일 씨만 지각이다. 십분 정도 늦게 슬리퍼를 신고 헐레벌떡 나타난 재일 씨, 넉살 좋게 웃음을 터뜨리며 늦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한다. 그런데 매고 온 큰 배낭에 등산화가 한 짝만 데롱데롱 매달려 있다.
“신발이 왜 한 짝만 있어요?” “어! 어디로 갔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쏜살같이 사라지는 재일 씨. 어두운 낯빛으로 다시 나타난 재일 씨. “에이, 없네” 혹시 중간에 떨어뜨렸나 해서 공항철도역까지 가보고 오는 길이었다. 하는 수 없다. “등산화는 네팔 가서 하나 사도록 합시다.”더 늦기 전에 수속을 밟고 보안 구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걸로 이번 여행의 액땜이 끝이었을까? 그거 하나였다면 아마도 우리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네팔 공항에 도착해서 먼저 도착해 있던 나총과 잘 만나고 짐들을 챙겨 공항 밖으로 나왔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픽업을 나오기로 한 호텔 측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매니저가 모르고 있다. 이메일을 주고받은 매니저는 이미 퇴근하였단다. 이 놈들이 정말! 하는 수 없이 택시 세대에 나눠 타고 호텔로 향했다. 타멜 지구 내 호텔까지 택시비로 700루피를 냈다. 100루피가 1000원 정도이니 각각 7000원 정도 낸 셈이다. 호텔에 도착해서 매니저에게 항의를 하니 차가 막혀서 어쩌고저쩌고 불라불라...계속 똥 씹은 표정으로 목청을 높이니 그러면 나중에 서울 갈 때 공항 드롭 서비스를 해주겠단다.
짐들을 방에 옮겨놓고 저녁부터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배낭 하나가 보이지를 않았다. 포터 두 명을 쓸 요량으로 큰 카고백과 60리터 배낭에 공용 짐을 넣어서 가져왔다. 그런데 공용 짐 배낭 하나가 보이지를 않았다. 누구 보신 분? 공항에서 짐을 찾아서 카트에 실을 때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황이 없어 각자 자기 짐만 챙기다보니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공항에 전화를 해봤더니 자기들은 확인할 수가 없다고 공항으로 직접 오라고 한다. 일일이 수하물표를 대조한 끝에 김태일 님이 짐표를 가지신 것을 확인했다. 영어에 능통하신 이장님(이은한 씨 닉네임)이 동행해서 공항에 다시 다녀오기로 하고 남은 대원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짐이 어디 가지는 않았겠지?’
시작부터 꺼림칙하다. 에베레스트 맥주를 시켜 잔을 부딪치고 “치어스”를 외쳐보지만 맘이 치어서 맥주가 목에 자꾸 걸린다. 네팔 정통 백반 ‘달밧’을 시켜서 맛을 본다. 시선이 음식에 가지 않고 자꾸 시계에 머문다. ‘올 때가 됐는데...’ 짐을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니 심적 부담감이 더 무거웠다. 최악의 경우, 정말로 짐을 찾지 못하고 분실되는 사고가 벌어지면 어쩐다지? 아이고. 게다가 몇 년 전 스웨덴 쿵스레덴 트레킹을 할 때 배낭 하나가 공항에 도착하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던 상처가 있어 긴장과 초조가 깊어갔다. 마침내... “부라보~” 짐을 찾았다는 소식이 왔다. 그제야 밥이 목에 넘어가고 맥주가 시원해진다. 이제부터는 좋은 일만 생기겠지.
배낭을 찾아 의기양양하게 복귀 합류한 대원들과 모두 함께 저녁 만찬 기념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와서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를 타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