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깐 말씀드렸던 분이 바로 ‘신정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다시 쓰는 택리지> 전 5권을 완간하였다고 합니다. 25년을 일주일에 평균 3일은 걷고 나머지 날엔 그걸 정리하여 책을 써냈다고 합니다. 어떤 날은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꼬박 64km를 걸은 적도 있다고 하네요. 니체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말했듯이, 그도 ‘가장 정직한 글은 길 위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걷는 것만큼 정직한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택리지의 중요성을 말하고 인용도 하지만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신정일 님으로 하여금 ‘현대판 택리지’에 매달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지리학을 한 사람들은 역사를 안 쓰고, 역사로 택리지를 본 사람들은 지리를 쓰지 않더랍니다. 학문의 분화와 전문화가 낳은 오류이지요. 그는 재야 문화사학자로서 그러한 구애 없이 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6 2.16 산비
어쩌면 ‘善’의 반대말은 ‘惡’이 아니라 ‘최선’ 일지도 모릅니다.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순간은 종종 최선을 다하려는 인간들이 빚어냈다는 것입니다. 최선이라는 말속에는 스스로 강하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오만과 자기기만이 내재되어 있다는군요. 善은 조화를 뜻하는 말인데 최선이 위험한 것은 물러설 자리를 예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뮌헨>의 영화평에 거론된 이야기입니다.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이스라엘 선수단이 무참히 살해됩니다.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 정부가 모사드의 정예요원 ‘애브너’에게 테러의 배후 인물들을 처단하도록 하지요. 암살자 ‘애브너’는 가족조차 돌보지 않고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바쳐 최선을 다한 것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두들 최선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것이 기자의 물음이고, 스필버그 감독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삶은 늘 모순이지만, 그 또한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헤쳐 나아가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늘 문제가 던져지기에 우리는 그것을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가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한없이 나태해질 것입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치워두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풀어나갑시다. 그래서 그 문제의 정답을 찾았을 때의 희열을 만끽합시다. 서로 힘을 합친다면 문제를 훨씬 쉽게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은 고마운 거야, 사랑의 고마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상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지. 나도 예전에는 그랬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침데기처럼 그들이 주는 사랑을 경멸했어.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아. 그들이 주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절대 어떤 순간에도 사랑을 포기해선 안 돼. 사랑을 포기한 순간 삶은 멈추는 거야. 이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 나는 모든 이들이 쉼 없이 사랑을 꿈꿔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늙어버린 나 또한 앞으로의 사랑을 꿈꾸잖아.” - 손숙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2.18 산비
'디자인(design)' 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현재의 것을 파괴한다. 현재의 것을 버린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결국 디자인이란 현재 가장 좋은 것의 단점이 무엇인가 하고 뒤집어 보는 역발상이 모토라는 것이지요. 현재 가장 좋지만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단점을 찾아내고 개선해 나가는 것, 그것이 창조적인 디자인이고 Innovation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 나의 삶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 고쳐 나가야 합니다. 나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체와 정신을 모두 함께. 그런 점에서 文과 武를 함께 수련하고 있는 우리는 자기 혁신의 훌륭한 파트너들입니다.
잡지 한 권을 얻었습니다. <Climber> 창간호입니다. 우리나라에 ‘산’에 대한 잡지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클라이밍에 대한 전문 잡지가 없어 마니아들의 속을 태웠다고 합니다. 이 책은 주로 암벽 등반이나 빙벽 등반에 대한 기사와 칼럼들을 싣고 있습니다. 오후 내내 이 잡지를 읽었습니다. 거대한 빙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그 도전 정신에 탄복하게 됩니다. 고생 고생하며 빙벽을 기어오르면 추락의 위험도, 낙빙의 충격도, 세상사의 시름도 오로지 ‘오름 짓’에 묻혀 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오로지 오르는 일에만 몰입하는 것. 몰입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마나슬루를 세 차례나 오르고, 다울라기리 II 봉을 정복했던 김정섭 씨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최종적으로는 성공이나 실패로 귀착하게 된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 그것은 하나밖에 없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성공도 있을 수 없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겁쟁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2.21 산비
오늘 오후 독서 시간에는 지난번 읽다가 만 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님의 <빛나는 아이>를 계속 읽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반죽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면 물도 필요하고 열심히 손동작을 놀려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인내와 경청이다. 반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케이크가 될 수도 있고 도넛이 될 수도 있다. 만일 반죽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혼자 굳어져서 아무 짝에 쓸모없는 밀가루 덩어리인 채 남아 있을 것이다. 훌륭한 빵은 그냥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아이들은 생각을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대답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너는 그것도 몰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독약이라고 합니다. ‘모르겠다’라는 아이의 대답에 아이가 대화할 의사가 없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또 한심하다고 무시하지 말고, 인내와 이해를 무기로 끝까지 버티면서 대화하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2006 2.22 산비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은 감성이 주는 즐거움을 얻으려고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감성이 주는 즐거움은 영원할 수 없는데도 이를 가지려고 집착하니 그 자리에 고통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상적인 것은 감성과 이성의 조화입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깨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너무 감성 지상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생각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즐거움이고 허망하기 그지없는 순간의 쾌락일 뿐입니다.
이성이 요구됩니다.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고 깨달아 알아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수행을 끊임없이 하여 조금씩 조금씩 참 자아에 다가간다면, 그래서 나와 네가 하나이고, 자연과 사람이 한 몸임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행복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딘가로 쏟아부은 사랑은 결코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의미를 찾고 꽃을 피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가 쏘아 올린 사랑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습니다.”
명상 여행가 정희재 씨의 티베트 인도 순례기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에 나오는 글입니다. 사랑은 물리학보다 더 엄정한 질량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사랑이 어느 순간 잊히고 지워지며 단절되더라도, 우리가 일구어 낸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 우주에 남아 면면이 이어져 내릴 것을 믿습니다.
티베트인들이 성스러운 사원이나 탑 주위를 돌며 기도하는 행위를 ‘꼬라’라고 한답니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네요.
“우연히 똑같은 것을 보고 웃거나, 똑같은 것을 보고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것을 보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도록 하소서.”
당신과 나도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보고 같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 2.23 산비
오늘은 참 기쁜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렌의 애가>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책입니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책을 우연하게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서 입수하였습니다. <렌의 애가>는 ‘시몬’과 ‘렌’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몬’은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옛 이름에서 따왔고 ‘렌’이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깊은 숲 속에서 저 혼자 우는 새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혼자서 울지만 또한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혼자만이 듣는 새를 말합니다. 작가 모윤숙 님은 자신과 닮은 새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여자 주인공 이름을 ‘렌’으로 지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책은 시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에 앉아 이 밤을 지새웁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고 1 때 이 책을 읽으며 그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무척이나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그런 사랑이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지금 저의 유별난 감수성은 그때 이미 씨앗이 뿌려졌던 모양입니다.
늘 그러하듯이 책의 맨 뒤에 실린 작품 해설부터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저의 오랜 책 읽기 습관입니다. 거기에 저자가 이 책의 모티브를 제공한 ‘영적 감흥’에 대해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 ‘영적 감흥’이란 상대방의 뛰어난 외모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대방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나 스스로가 인생의 참을 깨달았을 때,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무엇이 내부에서 파르르 떨려와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 우리도 서로에게 영적 감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책을 주문하면서 몇 권의 헌책을 같이 주문하였습니다. 그중 이정하 님의 산문집인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몇 장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데미안의 에바 부인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읽은 <데미안>은 내용이 좀 생략된 청소년을 위한 문고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지 못한 예화들이 다수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책엔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자기를 쟁취하라는 에바 부인의 말이 간략하게 나와 있었지만 이 책엔 좀 풀어서 설명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에바 부인이 말하기를 자신의 소망을 틀림없이 실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면 그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인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망해 놓고도 곧 그것을 후회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고 있는 아들의 친구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념과 힘이 있으면 연인의 사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연인에게 사랑을 호소할 필요도, 요구할 필요도 없게 되지요. 당신의 사랑이 내 마음을 끌어당기게 되면 나는 기꺼이 따라가겠어요. 나는 스스로 나를 바치고 싶지 않아요. 의지적인 행동과 확신의 힘을 가진 사랑에 의해 정복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랑은 쟁취하고 정복하는 것이라는 말이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2005 10.18 산비
지난번 주문했던 책들이 도착하여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보았습니다. 그중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을 들고 목차를 훑어보다가 관심이 가는 부문이 있어 잠깐 살펴본다는 것이 그만 책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2부 ‘사랑’ 편에서 사랑의 속성과 특질 그리고 무엇이 ‘참사랑’ 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색다른 이론이지만 깊이 공감이 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 그 자체가 참사랑은 아니며, 그것은 크고 신비로운 전체 구도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황홀한 느낌은 반드시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며,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일이 가능해 보이고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은, 두 살 난 어린아이가 자신을 집안에서나 세상에서 무한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 착각하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본질은 개인의 ‘자아 영역’의 일부가 무너지면서 다른 사람의 자아 영역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아 경계’ 란 개념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신생아들은 처음 몇 개월간 자기 자신과 자기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기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는 세계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아기가 배고플 때는 온 세계도 배고픈 것으로 인식하죠. 아기는 자신이 장난감이나 방, 부모와 별개의 개체임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즉 아기와 세계는 하나이며 거기엔 경계도 없고 자기라는 정체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아기는 자신이 외부세계와는 분리된 독자적인 존재임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자신의 원하는 것과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같지 않음을 체험하고서, 비로소 ‘나’라는 느낌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의지는 자신의 것일 뿐 세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각하면서 자신과 세계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한계가 자신의 영역이며 이 한계에 대한 지식이 바로 ‘자아 영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의지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선택도 아닙니다. 그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자아 영역’의 붕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번 사랑에 빠졌던 사람의 자아 영역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즉, 처음에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점점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거죠.
그는 섹스를 원하는데 그녀는 원치 않고, 그는 저축을 원하는 데 그녀는 세탁기 사기를 원하고, 그는 그녀의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녀는 그의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면서 둘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자신과 하나가 아니며, 자기 자신의 욕망과 편견 그리고 생활리듬을 고집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 순간 급작스럽게 ‘자아 영역’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 참사랑’ 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점진적이고도 발전적으로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고, 외부 세계와 자기 내부 세계의 통합을 통해 자아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나가면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자아와 세계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마침내 ‘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은 종류의 황홀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면 전체를 아우르는 교집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참사랑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미지의 세계로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살면 살수록 더욱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큰 위험은 성장에 따른 위험이라고 합니다. 성장을 위한 도약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자유로이 정신적인 성장의 길을 전진해 나가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가르쳐 줍니다.
스캇 펙 박사는 진정한 참사랑은 자기 훈련의 힘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하고 성찰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성장해 나갈 때 사랑은 더욱 커지며 그 참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워준답니다. 그것만이 생을 근본적으로 기쁨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5 10.24 산비
어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 속에서 한 가닥 진리를 터득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직도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 의지적인 선택이 아니고, 내 자아의 한 영역이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어떤 존경스러운 대상이 있어 내가 아무리 사랑해보려 노력해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게 아니며, 반대로 사랑해선 안 되는 부적합한 상대여서 내가 아무리 거부해보려 해도 결국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참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 빠져 눈멀고, 귀 멀어 있다가 그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입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랑에 빠지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훈련과 의지력의 강화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참사랑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 휩쓸려 ‘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결국 내가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해야 합니다. 주변 환경에 예속되고 거기에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임을 지배하고 주도해라” “게임을 즐겨라” 그렇습니다. 그 말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은 내가 지배하고 내가 주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즐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삶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아무런 열정이나 성취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변 환경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환경이 자신에게 맞춰지도록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질량이 커다란 물체의 주변 공간이 강한 중력에 의해 휘게 되는 것처럼..
2005 10.24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