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기쁜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렌의 애가>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책입니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책을 우연하게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서 입수하였습니다. <렌의 애가>는 ‘시몬’과 ‘렌’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몬’은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옛 이름에서 따왔고 ‘렌’이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깊은 숲 속에서 저 혼자 우는 새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혼자서 울지만 또한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혼자만이 듣는 새를 말합니다. 작가 모윤숙 님은 자신과 닮은 새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여자 주인공 이름을 ‘렌’으로 지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책은 시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에 앉아 이 밤을 지새웁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고 1 때 이 책을 읽으며 그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무척이나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그런 사랑이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지금 저의 유별난 감수성은 그때 이미 씨앗이 뿌려졌던 모양입니다.
늘 그러하듯이 책의 맨 뒤에 실린 작품 해설부터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저의 오랜 책 읽기 습관입니다. 거기에 저자가 이 책의 모티브를 제공한 ‘영적 감흥’에 대해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 ‘영적 감흥’이란 상대방의 뛰어난 외모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대방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나 스스로가 인생의 참을 깨달았을 때,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무엇이 내부에서 파르르 떨려와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 우리도 서로에게 영적 감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책을 주문하면서 몇 권의 헌책을 같이 주문하였습니다. 그중 이정하 님의 산문집인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몇 장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데미안의 에바 부인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읽은 <데미안>은 내용이 좀 생략된 청소년을 위한 문고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지 못한 예화들이 다수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책엔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자기를 쟁취하라는 에바 부인의 말이 간략하게 나와 있었지만 이 책엔 좀 풀어서 설명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에바 부인이 말하기를 자신의 소망을 틀림없이 실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면 그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인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망해 놓고도 곧 그것을 후회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고 있는 아들의 친구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념과 힘이 있으면 연인의 사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연인에게 사랑을 호소할 필요도, 요구할 필요도 없게 되지요. 당신의 사랑이 내 마음을 끌어당기게 되면 나는 기꺼이 따라가겠어요. 나는 스스로 나를 바치고 싶지 않아요. 의지적인 행동과 확신의 힘을 가진 사랑에 의해 정복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랑은 쟁취하고 정복하는 것이라는 말이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2005 10.18 산비
지난번 주문했던 책들이 도착하여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보았습니다. 그중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을 들고 목차를 훑어보다가 관심이 가는 부문이 있어 잠깐 살펴본다는 것이 그만 책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2부 ‘사랑’ 편에서 사랑의 속성과 특질 그리고 무엇이 ‘참사랑’ 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색다른 이론이지만 깊이 공감이 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 그 자체가 참사랑은 아니며, 그것은 크고 신비로운 전체 구도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황홀한 느낌은 반드시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며,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일이 가능해 보이고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하는 비현실적인 느낌은, 두 살 난 어린아이가 자신을 집안에서나 세상에서 무한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 착각하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본질은 개인의 ‘자아 영역’의 일부가 무너지면서 다른 사람의 자아 영역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아 경계’ 란 개념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신생아들은 처음 몇 개월간 자기 자신과 자기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아기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는 세계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아기가 배고플 때는 온 세계도 배고픈 것으로 인식하죠. 아기는 자신이 장난감이나 방, 부모와 별개의 개체임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즉 아기와 세계는 하나이며 거기엔 경계도 없고 자기라는 정체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아기는 자신이 외부세계와는 분리된 독자적인 존재임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자신의 원하는 것과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같지 않음을 체험하고서, 비로소 ‘나’라는 느낌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의지는 자신의 것일 뿐 세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각하면서 자신과 세계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한계가 자신의 영역이며 이 한계에 대한 지식이 바로 ‘자아 영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의지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선택도 아닙니다. 그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자아 영역’의 붕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번 사랑에 빠졌던 사람의 자아 영역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즉, 처음에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점점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거죠.
그는 섹스를 원하는데 그녀는 원치 않고, 그는 저축을 원하는 데 그녀는 세탁기 사기를 원하고, 그는 그녀의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녀는 그의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면서 둘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자신과 하나가 아니며, 자기 자신의 욕망과 편견 그리고 생활리듬을 고집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 순간 급작스럽게 ‘자아 영역’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 참사랑’ 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점진적이고도 발전적으로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고, 외부 세계와 자기 내부 세계의 통합을 통해 자아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나가면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자아와 세계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마침내 ‘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은 종류의 황홀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면 전체를 아우르는 교집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참사랑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미지의 세계로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살면 살수록 더욱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큰 위험은 성장에 따른 위험이라고 합니다. 성장을 위한 도약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자유로이 정신적인 성장의 길을 전진해 나가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가르쳐 줍니다.
스캇 펙 박사는 진정한 참사랑은 자기 훈련의 힘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하고 성찰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성장해 나갈 때 사랑은 더욱 커지며 그 참사랑은 자신을 다시 채워준답니다. 그것만이 생을 근본적으로 기쁨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5 10.24 산비
어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 속에서 한 가닥 진리를 터득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직도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 의지적인 선택이 아니고, 내 자아의 한 영역이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어떤 존경스러운 대상이 있어 내가 아무리 사랑해보려 노력해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게 아니며, 반대로 사랑해선 안 되는 부적합한 상대여서 내가 아무리 거부해보려 해도 결국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참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 빠져 눈멀고, 귀 멀어 있다가 그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입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랑에 빠지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훈련과 의지력의 강화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참사랑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 휩쓸려 ‘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결국 내가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해야 합니다. 주변 환경에 예속되고 거기에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임을 지배하고 주도해라” “게임을 즐겨라” 그렇습니다. 그 말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은 내가 지배하고 내가 주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즐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삶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아무런 열정이나 성취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변 환경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환경이 자신에게 맞춰지도록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질량이 커다란 물체의 주변 공간이 강한 중력에 의해 휘게 되는 것처럼..
2005 10.24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