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on Lif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scus Jan 03. 2019

무언가를 진정으로 배운다는 것

Jan 3, 2019 · 8 minute read · by Discus

배움의 4단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부터 배울 생각이 있었는데 적절한 기회를 만들지 못했어요. 너무 주저했던 거죠. 그래서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들이밀었습니다.

기타 선생님이 좋은 분입니다. 수업을 듣다 보면 기타 연주에 관한 넓은 안목을 배우는 기분이 들거든요. 예컨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스케일도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재료입니다. 결국 내가 연주하는 건 멜로디예요." 이런 말은 정말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해요. 연주라는 행위의 어떤 핵심을 짚는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핵심을 간과하는 설명이 주변에 흔한 것 같아요.


최근 어떤 재즈 기타 강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봤는데, 거기서 강의하는 사람이 그럽니다. 나는 대가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저 사람들 머릿속에는 어떤 스케일들이 지나가고 있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라고요. 이런 말은 사실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 독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하는 사람은, 특히 대가들은 스케일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자칫 멜로디보다 스케일에 초점을 맞추고 연습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케일을 연습하되 초점은 항상 멜로디에 맞춰져 있어야 해요.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대가들은 연기를 하든 연주를 하든, 이럴 땐 저렇게 해야지 저럴 땐 저렇게 해야지 막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해요. 수십 년 연주하면 근육과 신경에 그 사람만의 인이 박입니다. 그 인으로 연주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살아온 과거의 시간으로 연주하는 겁니다.

스케일은 다들 아시는 '도레미파솔라시'를 말합니다. 이걸 메이저 스케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타 연주자들은 스케일을 무진장 연습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를 칠 수 있어야 기타를 연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스케일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특히 솔로 연주를 한다는 건 결국 멜로디를 연주하는 겁니다. 스케일은 연습 재료일 뿐이지요.



뜬금없이 기타로 말문을 연 것은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섭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빅터 우튼(Victor Wooten)을 아실 겁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재즈 베이시스트죠. 빅터 우튼과 함께 베이스 워크숍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어요. 앤서니 웰링턴(Anthony Wellington). 빅터는 앤서니를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음악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앤서니는 베이스를 연주하는데 4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좀 찾아보니 이게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배움의 4단계이기도 하고 저명한 영화학자 노엘 버치의 숙달의 4단계(Four stages of competence)이기도 하더라고요. 여러 군데에서 말만 바꿔서 재활용되는 개념인 것 같은데 아무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뭔가를 배울 때 우리는 4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단계(Unconscious not knowing)입니다. 아직 배울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인 거죠. 제가 기타를 배우기로 막 마음먹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뭘 배워야 할지도 모르는 깜깜한 단계였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단계(Conscious not knowing)입니다. 이제 기타와 관련된 지식을 배웠고, 뭘 연습해야 할지도 아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직 숙달되지는 않았죠. 내가 모르는 게 이러이러한 것이다. 이걸 깨닫는 단계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내가 안다는 걸 아는 단계(Conscious knowing)입니다. 이제 좀 숙달되었습니다. 연주도 꽤 하죠. 내가 무엇을 아는지 내가 인지하고 있어요. 각종 스케일을 꿰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설명도 할 수 있어요.


흥미로운 건 마지막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내가 익힌 지식을 잊어버리는 단계(Unconscious knowing)입니다. 분명히 연주는 멋지게 할 수 있지만 이제 남에게 그럴듯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숙달된 근육은 습관으로서 오래 남지만, 근육을 숙달하기 위해 배웠던 지식은 계속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근육이 남고 지식이 사라지는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나는 이제 스케일을 생각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학습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저는 위의 4단계에서 마지막 단계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단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머리로 배우기, 근육으로 배우기


머리로 기타를 연주할 수는 없잖아요. 마지막 단계는 우리가 손으로 기타를 연주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일깨웁니다. 머리로 알았으면 손으로도 숙달해야 한다는 것이죠. 학과 습. 머리로 배웠으면(學), 손으로 숙달(習)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학습입니다.


저는 우리의 배움과 학습이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기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슬로가 심리학자로서 '배움'의 4단계라고 이름 붙이고, 앤서니가 연주자로서 '의식'의 4단계라고 이름 붙였지만, 매슬로의 모형이든 앤서니의 모형이든, 저 4단계는 우리에게 인간의 학습에 대한 중요한 인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습의 표준 과정. 이렇게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배우는 것이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좋은 영어 회화 선생님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영어만 배운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배웠어요. 그분이 항상 하는 말은 신기하게도 기타 선생님이 하는 말과 맥락이 같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혀'가 아는 게 중요하죠.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아는지가 아니라 혀의 습관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영어를 10년 이상 배워도 외국인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혀를 숙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대한 지식만 배운 것이죠. 하긴 지식을 테스트하는 데만 혈안이 된 한국의 공교육은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잖아요.


토론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한국의 공교육을 잘 아실 텐데요.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던 해프닝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질문 안 하던 사람한테 질문해 봐, 하면 잘 못 합니다. 질문도 습관이거든요. 그러니까 평소에 질문하고 토론해야 내 질문과 토론의 근육이 숙달됩니다. 팔을 들어봐야 질문할 줄도 알아요. 우리는 머리가 아니라 손과 혀와 팔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배움의 마지막 단계를 소홀히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모국어니까 당연하겠죠.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라면서 말을 학습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문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제가 대단한 국어 문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문학자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국문학자만큼 유창하게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문법은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혀의 근육은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어나 기타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몇 가지를 알고 있지만, 혀가 모르고 손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혀와 손입니다. 근육이죠. 머리와 근육은 다르게 학습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습의 표준 과정을 머리와 근육의 상호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차례로 나열해 볼까요.

1. Unconscious not knowing : 머리도 모르고(Unconscious) 근육도 모르는(Not knowing) 단계
2. Conscious not knowing : 머리는 알지만(Conscious), 근육은 모르는(Not knowing) 단계
3. Conscious knowing : 머리도 알면서(Conscious) 근육도 아는(Knowing) 단계
4. Unconscious knowing : 머리는 이제 잊어버렸지만(Unconscious), 근육은 여전히 아는(Knowing) 단계

머릿속 지식의 발전과정은, 모르다가(Unconscious) 알게 되고(Conscious), 배우면 계속 알게 되지만(Conscious) 이내 다시 모르게(Unconscious)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임상학적으로 증명된 적도 있습니다. 제 전공 지식이 이런 식으로 휘발되었거든요. 반면 근육의 지식이 발전하는 과정은, 처음에 모르고(Not knowing) 아무리 해도 계속 모르지만(Not knowing), 어느 순간 알게 되고(Knowing) 나중엔 머리가 몰라도 근육은 여전히 알게 됩니다(Knowing).


머리가 걷는 것이라면 근육은 자전거 타기입니다. 누구든 쉽게 걸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걸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알고 싶으면 계속 걸어야 합니다. 반면 자전거는 배워야 탈 수 있습니다. 그냥 걷는 것보다는 페달 밟는 데 더 많은 힘이 들어가요. 그러나 자전거가 일단 움직이면 걷는 것보다 더 멀리 갑니다. 종종 페달을 밟지 않아도 갈 수 있어요. 머리는 시작의 효율이 높지만, 지속의 효율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육은 지속의 효율이 높아요.


그래서 우리는 근육으로 배워야 합니다. 머리로도 배워야 하지만 근육으로도 배워야 해요. 영어 단어와 문법을 배워야 하지만 결국에는 직접 말을 해봐야 영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스케일을 연습해야 하지만 결국엔 멜로디를 연주해야 자신만의 연주를 할 수 있어요. 질문도 해봐야 할 수 있고, 글도 써봐야 쓸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배운다는 것


게다가 머리보다는 근육을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의 4단계에서는 머리부터 배우는 식으로 나와 있지만 때때로 삶은 근육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버즈가 대유행했습니다. 그대 기억이~하면 지난 사랑이~가 자동 반사였어요. 그때 버즈를 보면서 저와 한 친구는 밴드를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코 흘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품는 꿈이었죠. 저는 밴드가 되는 법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버즈 민경훈이 되어 무대를 휘어잡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그 길로 기타를 구하더군요.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자작곡을 들려줬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 형편없었겠죠. 제대로 기타를 배우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저는 여전히 음악 문외한으로 남아있었을 때, 그 친구는 자기가 만든 기타 리프에 드럼을 입혀 자작곡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하고는 그곳의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실제로 학교밴드 활동을 시작한 건 당연히 그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저의 차이는 간단했습니다. 하기로 하고 머리로 해결책을 찾은 저, 하기로 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 친구. 저는 조금 걷다 말았고 그 친구는 서투른 실력이지만 작은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리곤 제가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달려나갔어요. 저는 이제야 기타를 배웁니다.



'해봐야 안다'라는 낡은 얘기를 뭐 이렇게 길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얘기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이렇게 글로 써서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머릿속으로만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친구와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저는 잘 설명하지 못했어요. 위의 4단계를 쉽게 떠올리지도 못했습니다. 머릿속에만 있었던 생각이었으니까요. 손가락을 움직여가며 머리보다 근육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우는 지금에야 저는 더 또렷이 배웁니다. '해봐야 안다'라는 말을 브런치를 매개로 '해보니 알게 된' 것이죠.


결국 무언가를 진정으로 배운다는 것은 근육으로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머리로 배워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서 움직여야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직접 보고 만져야 합니다. 


머리로는 내가 당장 해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도 있고 사고실험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머리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말하자면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수없이 해보면 배울 수 있어요. 근육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육이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됩니다. 그런 습관은 진정한 배움으로 내 안에 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차를 놓치는 일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