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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o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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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cus Jun 10. 2019

하나레이 베이 : 설명하는 영화와 보여주는 영화

A Lesson In Storytelling #4

※ 영화 <하나레이 베이>(2018)와 <밀양>(2007)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언제나 배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배경 자체가 이야기의 주제를 대변하죠. 주인공은 그 배경 속에서 좌충우돌하게 되는데, 이것은 영화의 주제 안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모습을 은유합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이라는 영화가 그렇습니다. 제이크(잭 니콜슨)라는 사립탐정이 한 사건을 의뢰받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그보다 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죠.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모든 것이 어그러진 순간, 동료였던 형사가 제이크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잖아(Forget it, Jake. It's Chinatown)." 차이나타운은 원칙 따위는 없고 돈과 권력만이 판치는 어지러운 세계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제이크가 형사로 일했을 적에 어떤 비극을 겪었던 장소이기도 하죠.


<하나레이 베이>도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하와이의 하나레이 해변입니다. 주인공인 사치(요시다 요)는 매년 하나레이 해변을 찾아옵니다. 이 해변에서 아들이 서핑을 하다 익사했기 때문이죠. 사치는 해변에 다가가지 않습니다. 해변 앞에 앉아 책을 읽을 뿐이에요.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 사치는 해변에 발을 담급니다. 그리고 아들의 상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영화는 사치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줍니다.



아들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경관이 사치에게 말합니다. "이곳 카우아이 섬에서는 이따금 자연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때때로 거칠고 치명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요. 우리는 그런 가능성과 함께 여기서 살아갑니다. 아드님의 일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부디 이런 일로 우리 섬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주제넘은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드리는 부탁이에요."


이 말은 영화의 주제를 드러냅니다. 자연엔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다는 것 말입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그런 무작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영화는 건넵니다. 해변에서는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나갑니다. 그렇게 있었다 또 없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담담히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레이 해변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를 상징합니다. 영화는 죽음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해변에 몸을 담그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침내 사치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레이 베이>는 배경이 주제를 은유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고 충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함정은, 배경이 주제를 은유한다는 멋진 장점을 다른 결정적인 단점이 삼켜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경관이 사치에게 말하는 장면 있죠. 그 장면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자,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이러면서 주제를 찾아야 할 관객의 역할을 경관이 대신해버립니다. 관객의 흥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예술에 규칙 따위는 없겠지만, 어떤 예술 작품이든 지킬수록 좋은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그건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입니다. 설명하는 순간 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지, 지루하고 괴로운 교장 선생님의 일장연설을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작년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보여주지 않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어요. <스윙키즈>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2분이 넘는 뉴스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수많은 정보를 주입합니다. <인랑>과 <마약왕>의 오프닝도 마찬가지였죠. 인물의 대사와 갈등을 통해 녹여내야 할 배경을 9시 뉴스 전하듯이 설명하고 있으니 관객은 심드렁할 밖에요.

<하나레이 베이>도 설명합니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영화 전반에서 주제를 모두 설명해버려서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상실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비교해보면 이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밀양>은 매우 깊은 영화죠. 왜 깊은가요.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밀양>과 <하나레이 베이>는 거의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데요. 거대한 상실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두 영화의 핵심은 정반대입니다. <밀양>이 주인공 신애가 아들을 잃고 난 후 주변인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오답 사이에서 헤매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하나레이 베이>는 주인공 사치가 아들을 잃고 난 후 주변인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정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 이야기는 납작해집니다. 주제 자체가 깊어도 소용없어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것이 훈계로 들리면 보는 사람은 눈과 귀를 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장점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그건 배우 요시다 요의 얼굴입니다. 그의 얼굴은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처럼 보입니다. 거의 배우에게 모든 걸 맡긴 것처럼 보일 정도죠. 요시다 요는 사치를 연기하지 않고 사치 그 자체로 작품 속에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츠나가 감독은 그에게 같은 연기를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 시켰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그는 잡념을 비울 수 있었고, 덕분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내내 담담해 보이던 사치는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폭발하면서 하나레이 해변을 마구 뛰어다닙니다. 조용하던 영화는 그 순간부터 점차 끓어오르고 관객을 집중시킵니다. 달리던 사치는 어떤 나무 앞에 섭니다. 그 커다란 나무에 두 팔을 대고 밀어낼 듯 끌어안을 듯 힘겨워하는데 카메라는 그때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보여줍니다. 그 순간 영화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감흥을 전달하죠. 영화 후반의 요시다 요의 연기는 사치의 복잡한 내면을 그대로 표현해 보이면서 관객이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제게 <하나레이 베이>는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들과 그 정답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치의 모습이 영화의 심심한 전반을 이룹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에서 사치는 누군가에게서 놀라운 말을 듣게 되고, 그 이후 영화는 배우의 표정을 전면으로 보여줍니다. 이때 비로소 해변이라는 배경이 삶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요시다 요의 얼굴은 사치의 혼란스러움을 마치 천천히 데워진 물이 마침내 끓어 넘치듯이 표현합니다.


<하나레이 베이>의 단점은 영화의 전반에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사실, 설명한다는 단점은 원작 소설에서 비롯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에 실린 <하나레이 해변>이라는 단편인데요. 경관의 긴 대사도 소설에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소설에도 적용되는 불문율이지만, 소설은 때때로 이 규칙에서 자유롭습니다. 주제를 조금씩 드러내는 인물이 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소설보다 이 규칙에 더 엄격해요. 매체 자체가 '보여주는' 영상인 까닭입니다.


만약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경관이 무언가 눈빛으로 말하지만 사치는 읽지 못한 채 지나가고, 아무런 힌트도 얻지 못한 채 해변을 더욱 원망하는 겁니다. <밀양>의 신애처럼 더 극적으로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랬다면 후반부에 누군가를 찾아가 문 앞에서 호소하는 뻔한 장면도, 그에게서 받아온 물건에 손바닥을 대는 클리셰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클리셰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사치의 진심 어린 표정만은 뇌리에 남게 됩니다. <하나레이 베이>는 비록 이야기의 호소력은 부족하지만, 요시다 요의 눈빛과 표정 자체의 호소력으로 끝까지 돌파하는 영화로 제게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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