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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부터 다시 배운 프랑스어

라따뚜이가 라따뚜이가 아니었다니!

나는 프랑스어 학원을 다녔다거나 불어불문 전공을 한 학생이 아니었다. 프랑스어 같은 로망스어는 이런 전개로 흘러가는 구나 하는 정도로 수업을 한두 번 들었을 뿐, 내 전공은 영어였다. 영어 배우러 간 미국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온 남자를 만나 지금 불어를 배우고 있다니 세상만사 새옹지마!  


가끔은 기본부터 흔들렸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인삿말, 불어의 안녕하세요. 가장 쉬운 불어가 봉쥬르 아닌가? 아 이런... 너무 만만히 봤다. 내가 상상한 그 봉쥬르가 그 봉쥬르가 아니었다. 입을 아주 동그랗게 벌려주고 하관 전체를 통해 '봉' 소리를 낸다. '쥬' 소리 역시 은근 만만치 않다. 입을 동그랗게 모은 상태에서 쥬~ 하고 느끼하게 소리내야 한다. 봉쥬? 봉주? 프랑스어 알파벳부터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불어는 모음 지옥이다. 


전화 상황 같이 상대방의 모습을 못 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할 때는, 봉주르 부터 인사만 나눠도 그 사람이 네이티브 프랑스인인지 알 수 있다. 한번은 파리의 한 한인 마트에 문의할 것이 있어 전화를 하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당연히 상대가 한국인일 줄 알고 "안녕하세요?"로 통화를 시작했던 적이 있다. 상대는 아주 느끼한 발음으로 "봉쥬르?"로 응대해 왔다. 옆에서 수화기 너머로 어찌 그 소리가 들렸는지 남편이 프랑스인이라고 한국인 아니라고 말해주어서 급하게 불어로 문의를 해야 했다. 한 문장만으로도 상대방이 네이티브임을 간파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한 단어. 봉주르?안녕하세요?


성대를 끌어올리고 입 하관을 모아서 최대한 느끼하게 봉쥬흐? 라고 할 수 있다면 네이티브일 확률이 높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양한 톤을 활용해서 내는 봉쥬 소리. 아... 인삿말부터 고난 시작의 느낌이 났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안녕하세요부터 다시 배웠다. 카페에 들어설 때, 프랑스인 가족과 인사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최대한 자연스럽고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내뱉는 봉쥬? 여야 한다. 이전에는 모르고 또 귀에 들리지도 않았는데, 알고보니 톤도 다양하게 참 여러가지로 올리고 내리고가 가능한 봉쥬.  



프랑스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여행지 이름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있다. 가령 한국인에게 익숙한 불어 여행지명으로 몽마르트가 있다. 그런데 아마 지나가는 프랑스인을 잡고 몽마르트가 어디냐고 영어로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른다. 다시 배운 몽마르트는 몽마흐트흐(Mont Martre)였다.


남편과 많은 계절을 함께 보내기 전, 아주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프랑스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저 딱 남들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달까. 아니 그보다는 적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어의 발음과 단어 체계 정도만 아는 정도였고 라따뚜이에 나오는 쥐를 아주 귀엽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으니까. 


처음에 그에게 최대한 프랑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노력했던 때였다.


 "라따뚜이 알아? 그 영화 참 재미있게 봤어"

그와 그의 친구 얼굴이 갸우뚱해진다.


"라따뚜이?"

"응, 라따뚜이~"

"라따뚜이? 라따뚜이가 뭐야?"

"라따뚜이!!!"

"???"


이런 대화의 패턴으로 30분 정도를 실랑이 했던 것 같다. 라따뚜이가 뭐냐니. 그걸 프랑스인이 모를 수도 있나? 라따뚜이가 그 쥐 이름이잖아. 결국 이 논란을 종결짓기 위해 해당 영화 내용을 설명을 해준 다음에야 그와 그의 친구는 "아~ 하따뚜이으~!!!!"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라따뚜이가 라따뚜이가 아니었다니.


지금으로선 8년 정도 된 이야기인데 가끔 그들이 를 놀려먹는 소재가 되곤 한다. 여담이지만 당시 프랑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라따뚜이가 거기 나오는 쥐 이름이라고 잘못 기억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넘겼었다. 나중에 보니 라따뚜이는 토마토와 가지, 호박으로 요리한 프랑스 가정식 이름이었다.


이렇게 아주 기본적으로 한국발음으로 배운 프랑스어 단어들을 종종 현지에서 쓰려고 할 때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땐 알파벳으로 다시 돌아가 불어로 다시 발음해서 외우곤 한다. 프랑스어를 조금 더 배우고 난 지금은 대충 발음은 괜찮아진 편에 속하지만 아직도 너무 어려운 발음들이 있다.



처음 1년 간 나는
행복하다 (Je suis heureuse)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행복하다는 불어로 '쥬 수이 으흐즈(Je suis heureuse)'라고 한다. 그런데 heureuse에서 모음들의 발음이 한글 모음으로 치면 으와 오의 중간같은 발음인데, 이 eu 발음이 한국인이 평소 발음하던 성대나 입 모양으로는 단번에 습득하고 받아들이기가 잘 안되는 발음이다. 처음 1년은 행복하다는 말 대신 대체어를 사용했다 쌍기역(ㄲ)과 쌍디귿(ㄸ)이 들어간 발음이 더 편했다. 


"쥬 수이 꽁떵뜨(Je suis contente)"

나는 행복해, 만족해.


이제는 자연스럽게 봉쥬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가끔 프랑스인처럼 입 모양 전체를 움직여 봉쥬르 소리를 내는 게 오글거려서 참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났다고, 최소한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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