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아침 일찍 센느 강 근처에 산책을 나갔다. 간만에 찬바람을 맞으며 조깅을 해서인지 배에서 시끄럽게 알람이 울렸다. 남편과 집에 돌아오는 길 자주 가는 빵집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바게트, 크라상, 꺄늘레를 샀다. 빵 1개에 약 1유로 내외이니, 빵 4개에 5유로 정도가 들었다.
집에 도착해 아침 식사로 산 빵을 먹으려고 커피를 조르륵 내렸다. 그런데 남편이 식탁 위에 놓인 빵을 쳐다보고는 이유모를 아쉬운 눈짓을 해 보인다. 그리고는 ‘같은 브랜드에서 같은 가격으로 빵을 더 많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어디 들어나 볼까? 남편이 알려준 방법은 바로 휴대폰의 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것이었다.
그가 하늘색 화면의 앱을 열고 근처에 뜨는 음식점들 목록을 보여준다. 촤르륵 내리다 보니 부부가 자주 가는 빵집의 이름이 보였다. 5-6유로 사이의 가격을 지정하고 시간대를 예약한다. 주로 가능한 시간대는 저녁. 미리 입력해둔 지불 정보로 해당 금액을 내고 나면 끝.
저녁 7시 쯤 예약한 시간이 되어 빵집에 갔다. 조금 기다리자, 뒤에도 어떤 사람 2명이 더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빵집 여주인은 남편에게 빵이 가득 든 종이 봉투를 건네주었다. 세상에... 손에 한가득 들어보니 무게 만으로도 이미 빵이 수십 개는 되는 듯해 보였다. 그들 뒤에 줄을 섰던 2 명도 빵이 한가득 담긴 봉투를 손에 쥐고 싱글벙글하며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부부가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몽땅 빵을 쏟아내니 총 30개였다. 지불한 가격은 5유로. 그래, 남편 말대로 5유로에 빵이 30개나 들어있었다.
나는 몇 년 전 한 소셜네트워킹 페이지에서, 마트 직원이 유통기한이 끝나는 날에 해당하는 음식들을 버리지 않고 근처의 노숙인들에게 건네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봤던 것이 기억에 났다. 이 일화처럼, 남은 음식들이 조금 더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분배가 될 수 있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고, 평소 최소한의 금액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여 원하는 소비자가 구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중 무료로 노숙인에게 분배하는 방식인, 전자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운동은 미국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가령 남은음식구조하기(Rescuing Leftover Cuisine)라는 미국의 비영리 NGO단체는 ‘초과 음식물’을 모아 지역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배고픔’과 ‘음식물 배출’ 문제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좋은 사례이다. 초과 음식물을 배출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운동은, 앞서의 두 가지 방식처럼 방식이나 타겟층이나 지향점이 조금은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 초과 음식물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빵을 사기 위해 이용한 앱은 후자의 방법을 이용한 일반 판매 방식인데, 그날그날의 남은 음식을 소정의 금액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다. 2016년, 프랑스의 스타트업으로 ‘Too Good To Go’라는 앱이 출범을 했다. 창업자 루시 바쉬(Lucie Basch)는 영국 농식품 산업에서 경력을 쌓아가다가, 쌓여가는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고민이 늘었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음식점, 일반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방식인 해당 서비스를 고안해 냈다.
현재까지 투굿투고는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스페인,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이 서비스를 통해 매일 3톤 분량의 잉여 음식물이 일반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동네 음식점 뿐만이 아니라 큰 레스토랑 차원에서도 참여하는 곳들이 눈에 보였다. 프랑스에서는 에릭 케이저(Eric Kayser) 빵집, 파티스리 방상 귀흘레(Vincent Guerlais), 파리 만다린 오리엔탈(Mandarin Oriental Paris)의 셰프 티에리 막스(Thierry Marx)도 유명한 브랜드로서 참여하고 있었다.
유명한 음식점이든 동네 음식점이든 아무래도 소비자로서는 좋은 음식점에서 남는 음식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좋다. 나는 다른 음식점들에서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집근처 ZeroWaste (쓰레기 제로) 운동을 슬로건으로 내건 건강식 카페에 투굿투고 2인분(약 16유로)를 시켜두고 저녁에 가서 찾아왔다. 다양한 건강식과 건강 음료수 4병이 딸려왔다. 낮에 가서 음료수만 마시려 해도 4병이면 16유로를 상회한다. 이렇게 보면 이미 여러모로 소비자 입장에서도 본전은 건진 셈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음식점도, 일반 소비자도, 얻어가는 것이 있다.
이 앱을 통해 사서 먹다 보니 느끼게 된 단점이 있긴 하다. 직접 가서 찾아야 한다는 점, 남는 음식이 확정되는 저녁 시간대여야 한다는 점, 남는 음식이 없으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점, 가격만 지정을 하고 무슨 음식을 받아볼 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서프라이즈’라는 점이 있다.
그래서 소비자도 그날 당장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며칠 후 먹을 음식을 주문한다면, 취소가 되어도 놀랍지 않고, 오히려 그 음식점이 그날의 음식을 다 소비했다는 것에 기쁘다. 그리고 무슨 음식을 받아볼 지 몰라서 답답하기 보다는 ‘오늘은 어떤 음식이 주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5유로로 주문했을 때 언제나 빵 30개가 돌아오는 법은 아니지만 늘 기존 판매 가격을 웃도는 분량의 빵이나 음식을 받아드는 건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날 그날 '떨이' 상품을 구매예약해서 받아보는 것과 같다.
프랑스 음식점이나 빵집들은 당일 요리해 당일 소진을 목표로 하기에 다음날이 되면 가치가 하락하여 버리는 것보다는 저녁시간대에 저렴하게나마 팔아서 금액을 보존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초과 음식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음식점의 입장에서 일반 소비자를 타겟으로 소정의 이윤을 보전하게 해주는 이러한 예약판매 방법은,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문득 프랑스와 같은 서구식 음식 문화에서 이런 방식의 서비스가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처럼 깊은 맛을 위해 은근하게 오래 끓여서 우려먹거나 발효하는 조리 방법이 주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의 음식점에서는 오븐이나 후라이팬에 굽는 방식으로 육류, 생선류, 소스, 야채 등을 조리하기에 셰프가 출근하여 그날의 음식을 만들고 그날 소비하지 않으면 ‘신선한’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하락한다.
프랑스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음식점들마다 ‘오늘의 요리(Plat du jour)’가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프랑스 음식점의 ‘오늘의 요리’는 신선함을 판다. 오늘 팔리지 않으면 내일 팔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파리에서 이 앱의 성공은 궁극적으로는 초과 음식물에 대한 경각심이 바탕이 되어서지만, 한편으로는 오늘 요리해 만든 음식은 오늘 팔지 않으면 신선하지 않다는 프랑스인들의 음식에 대한 문화코드 역시 기저에서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