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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May 09. 2023

엄마는 왜 차도 없어?

가난을 이야기하다 07



결혼 후 어찌어찌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로 들어가서 살기 시작 한 여동생이 그랬다.


"여기, 차 없는 애엄마가 나밖에 없나 봐. 엄마들이 다들 차 끌고 어린이집 보러 오고, 병원 가고. 나만 없어, 나만."


새로 생긴 좋은 집이었지만 외벌이 대출금에 허덕이며 한창 힘들 시기인 아이 둘은 자주 아프기도 해서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였다.


"집 앞 놀이터 나올 때도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나만 무릎 나온 바지에 슬리퍼 신고 나가는 것 같아. 다들 여유가 많은 건지 체력이 좋은 건지. 나만 이래 나만. 아 몰라, 신경 쓰는 것도 피곤해."


애써 신경 안 쓰는 척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맘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차가 없어 불편한 때도 물론 많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불편함은 '비교'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한창 친구들이 좋았던 첫째가 근처 공원 축제에 친구들이 모였다고 가고 싶다고 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건강이나 운동을 핑계로 웬만한 거리는 아이들 이끌고 걸어 다니곤 했는데, 그때에는 저녁이었고 걸어가기 쉬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비도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해서 아래 두 아이들을 같이 끌고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던 시간이었다.


"미안, 오늘은 안 되겠다."

"엄마는 왜 차도 없어?"


좋다 싫다 소소한 감정 표현이나 때를 부리는 것도 별로 없던 첫째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딸아이가 엄마가 차가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말을 했고, 그것이 서운해서 그 말을 하면서 울먹거렸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마트를 다니면서 같이 짐을 들고 오는 것도, 대중교통에서 아이들에게 온갖 신경을 쓰느라 그저 한번 나갔다 온 것임에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


그런 감정들은 도무지.. 괜찮아지지가 않는다.





나갈 사람 다 나가고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낡은 동네.


그래도 지금은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교류도 전혀 없으며, 아이들 친구들도 비슷비슷한 모양새였으니 그런 비교할 일은 없어서 그거 하나는 좋았던 것 같다. 무언가 마음이 조금 쉬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최근 하나둘씩 허물고 새로 지어지는 곳들이 생겨나면서 다시금 눈에 보이는 격차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를 보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사하는 것을 보면서 막내만 "왜 우리는 저기로 이사 가면 안 돼?"라는 질문을 몇 번 했으나, 이제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 학교 생활과 친구들은 너무 좋아해서 이 집(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지금 이 낡고 가난한 삶에 내가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라 아이들도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문득 소소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좋은 것도 먹어본 놈이 잘 안다고. 그 말의 뜻을 잘 모르고 지내다가 이제야 알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자랐다고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그 환경을 물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아이들 마음이 편안해서 엄마에게 맨날 불평불만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은 하면서도 혹여 그것이 이런 곳에 혼자 사람들도 안 만나고 처박혀 있으면서 현실도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간혹 한다.



"엄마는 왜 차도 없어?"라는 말을 들은 지도, 저 수많은 집들을 보면서 자동으로 '왜 저렇게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게 된 것도 몇 년이나 지났는데 겉으로 보이는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은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의심이라도 자꾸만 해야 내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 더 열심히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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