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부부생활 _ 대화가 필요해. 그렇지만..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아직 젊어서 아직 집안에 이런저런 큰 일들이 별로 없었고, 그는 아이들 교육 포함 집안일은 모두 다 나에게 맡기는 편이었기에 교육에조차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빠였다.
대부분 그저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종종 지나친 무관심으로 비치기도 했다. 잔소리도 없었지만 응원도 없는, 뭐 그 정도.
그렇기에 최근 그와 나의 대화는 납부해야 할 카드값과 같은 '전달'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는 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 너무 많이 같이 붙어 있어서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하루에 얼굴 보는 시간이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듯.
사소한 이야기도 말을 할수록 느는 것인데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원래 시시콜콜한 것들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인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점점 더 심해졌고 작년 어느 날 이후 나 역시 입을 닫았다.
화가 나서, 감정이 상해서 라는 이유라기보다는 뭐랄까... 조금 외롭긴 하지만 원인도 해결 방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
뭐든 다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급한 마음에 혼자만 생각하다가 엉뚱하게 터트리는 날들도 많았었는데. 지금은 잘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더 키우는 것만은 안 할 만큼은 나이를 먹은 건지.
일찍 결혼해서 애도 안 보고 하루종일 게임만 하던 뒤통수도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뒤늦게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며 기를 쓰며 쉼 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 일단은 그것으로 좀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조금 더 커지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가끔 보내는 톡이라고는 거의 '오늘 밥 한 끼도 못 먹었다' '오늘 유독 힘들다'와 같은 말들이지만 어쩌면 그것도 나름 나에게 보내는 긍정적 대화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사진 같은 거 관심도 없는 사람인데 간혹 셀카도 찍어서 보낸다. 그에게 그건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수고했어' '괜찮아' '밥 잘 챙겨 먹어~' 등의 응원과 애정이 담긴 문장을 보낸다. 그래봐야 어쩌면 사무적으로 보일만큼 무뚝뚝하게, 일주일에 몇 번이나 되겠느냐마는 나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그런 말에도 대부분 대답도 없어서 가끔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둘 다 애정표현 잘 못 하고 무뚝뚝한 성격들이라 혀 짧은 소리를 내면서 하트를 잔뜩 보내버리면 무섭다고 폰을 떨어뜨리려나 혹은 은근히 좋아하려나.
잘 모르겠다.
다 괜찮은데. 다 기다릴 수 있는데.
간혹 말 많은 그의 지인과 대화하는 것을 볼 때면 속이 좀 뒤집어지긴 한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내 말은 고작 5분을 못 들어주면서. 같은 주제에 대해서 서론 본론 결론 생각 등등 길게 이야기하는 것을 열심히 대답해 주면서 몇십 분을 들어주고, 같은 얘기를 또 하면 또 들어주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 사람이 여자였으면 오해할 뻔.
물론 그 사람과는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면서 친해졌고 같은 일을 하는 선배이자 동료이며 취미도 같은.. 뭐 그런 위치이기도 하고, 나와는 다르게 매일 보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한데.
가끔 나 혼자 마음이 꼬이는 날에는.. 본인은 힘들어 죽겠는데 나는 능력이 없어서 도움도 안 되고 그래서 나에 대해서는 조금도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자격지심이겠지.
반대로 가끔 복잡해지는 내 마음과는 달리,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나와 그렇게 지내는 지금 이 시간들이 간섭도 본인 업무 이외에 해야 할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저 편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약 20년을 함께했는데, 하나하나 표현해주지 않는 그의 속마음은 여전히 알아채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