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건데
결혼, 부부생활 _ 그럼 난 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by
누리달
Sep 2. 2022
옮겨갈 곳을 예상하고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 달을 쉬고, 예상과 다른 길어지는 기다림에 일단 하루 두세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즈음의 일이다.
결혼 후 그의 방어 가득한 화법에 어색해하고 서운해하다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대로 지나간 것도 오래되었다.
나도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험하게 하거나 빈정대는 것도 아닌데, 내 말은 그의 마음에 늘 내 예상과 다른 뜻으로 해석되어 박히곤 했다.
그런 그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나도 내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집에서만 생활하는 나이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없으니 할 말도 없지만
..
그래도 가끔은 나도 내 이야기라는 것을 하고 싶은 인간인지라.
한 번은 "약속하고 등록을 했는데 아이가 계속 운동을 안 가서 속상해"라고 말을 시작했고 잠시 그는 잘 들어주다가..
"좋든 싫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했고 아무튼 본인이 결정을 한 거잖아.." 등등.. 사춘기 아이에 대한 하소연이 약 3~4분? 되었을 때 그는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잖아. 불만이 있으면 아이에게 직접 얘기하면 되지
왜 나한테 계속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요즘 돈도 안 번다고 우스워서 이러는 거야 지금? 나도 힘들어. 그래도 어떻게든 당신이 돈 안 벌고 생활비는 다 가져다주고 있잖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 아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닌 거구나. 그의
마음의
그릇은 여전히 아주 작아서 내 마음 따위 들어줄 수 없는 거구나.
나는 도대체 뭘 기대하고 전화를 했을까. (그가 바쁜 시간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였다. 되려 나에게 계속 뭐라 하는 그에게 나는 그 말만 반복했다. 고작 10분 통화 시간 중 어쩌면 그 시간이 더 길었을 것 같다.
진심으로 그에게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 정도 아주 조금 알아주길 바랬던 것조차 내 욕심이었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일이 있어' - '이렇게 해봐' - '그래'
이렇게 1~2분 안에 끝나는 대화였을 것이다.
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면서도 나는 또 왜 그랬을까.
겨울과 봄 몇 개월 동안 그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자신감도 좀 생겼다고 했다.
나도 그가 일을 하면서 힘든 거 좋은 거 자랑까지 다 들어주면서 '네가 옳다, 잘하고 있다'만 해 주었었다. 그랬던 그가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조차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었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으니 그래도 조금은
그의 마음의 그릇이 커졌을지 모른다는 기대
, 그러니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
, 내가 돈은 안 벌고 있지만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인정과 위로
등등.
나는 그것을 아주 조금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여전히 그는 하루 두세 시간 일 하고 와서 유튜브 보고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인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더 힘들어 그러니 네 마음이나 생각은 안 들을래. 네가 날 좀 알아줘'라고 외친다.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과 무기력, 그리고 뾰족한 자기 방어는 늘 같이 다닌다
. 나도 그러하고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 이해는 한다. 나 역시 그에게 그런 모습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그 짧은 시간의 감정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는 친한 지인의 수다의 반복은 종종 다 들어주고 있으면서 나에게는 몇 달에 한번 있는 그 정도의 시간도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작 그런 거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내 그릇도 여전히 고작 그 정도
라는 것이다.
15년 전, 1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머물러 있나 보다.
keyword
대화
자존감
남녀
17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누리달
밀레니얼 세대 결혼 19년 이혼 1년 차.
팔로워
184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그 어떤 노력도 닿지 않았다.
왜 나만..?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