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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Sep 02. 2022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건데

결혼, 부부생활 _ 그럼 난 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옮겨갈 곳을 예상하고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 달을 쉬고, 예상과 다른 길어지는 기다림에 일단 하루 두세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즈음의 일이다.




결혼 후 그의 방어 가득한 화법에 어색해하고 서운해하다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대로 지나간 것도 오래되었다.


나도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험하게 하거나 빈정대는 것도 아닌데, 내 말은 그의 마음에 늘 내 예상과 다른 뜻으로 해석되어 박히곤 했다.


그런 그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나도 내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집에서만 생활하는 나이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없으니 할 말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도 내 이야기라는 것을 하고 싶은 인간인지라.


한 번은 "약속하고 등록을 했는데 아이가 계속 운동을 안 가서 속상해"라고 말을 시작했고 잠시 그는 잘 들어주다가..


"좋든 싫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했고 아무튼 본인이 결정을 한 거잖아.." 등등.. 사춘기 아이에 대한 하소연이 약 3~4분? 되었을 때 그는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잖아. 불만이 있으면 아이에게 직접 얘기하면 되지 왜 나한테 계속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요즘 돈도 안 번다고 우스워서 이러는 거야 지금? 나도 힘들어. 그래도 어떻게든 당신이 돈 안 벌고 생활비는 다 가져다주고 있잖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 아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닌 거구나. 그의 마음의 그릇은 여전히 아주 작아서 내 마음 따위 들어줄 수 없는 거구나.


나는 도대체 뭘 기대하고 전화를 했을까. (그가 바쁜 시간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였다. 되려 나에게 계속 뭐라 하는 그에게 나는 그 말만 반복했다. 고작 10분 통화 시간 중 어쩌면 그 시간이 더 길었을 것 같다.


진심으로 그에게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 정도 아주 조금 알아주길 바랬던 것조차 내 욕심이었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일이 있어' - '이렇게 해봐' - '그래'

이렇게 1~2분 안에 끝나는 대화였을 것이다.






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면서도 나는 또 왜 그랬을까.


겨울과 봄 몇 개월 동안 그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자신감도 좀 생겼다고 했다.


나도 그가 일을 하면서 힘든 거 좋은 거 자랑까지 다 들어주면서 '네가 옳다, 잘하고 있다'만 해 주었었다. 그랬던 그가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조차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었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으니 그래도 조금은 그의 마음의 그릇이 커졌을지 모른다는 기대, 그러니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 내가 돈은 안 벌고 있지만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인정과 위로 등등.


나는 그것을 아주 조금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여전히 그는 하루 두세 시간 일 하고 와서 유튜브 보고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인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더 힘들어 그러니 네 마음이나 생각은 안 들을래. 네가 날 좀 알아줘'라고 외친다.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과 무기력, 그리고 뾰족한 자기 방어는 늘 같이 다닌다. 나도 그러하고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 이해는 한다. 나 역시 그에게 그런 모습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그 짧은 시간의 감정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는 친한 지인의 수다의 반복은 종종 다 들어주고 있으면서 나에게는 몇 달에 한번 있는 그 정도의 시간도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작 그런 거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내 그릇도 여전히 고작 그 정도라는 것이다.


15년 전, 1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머물러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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