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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Sep 19. 2022

왜 나만..?

결혼, 부부생활 _ 우울에 잠식되는 중


주말이나 휴일은 유독 더 힘들다. 다들 각자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들이라 아침은 대충 먹는다 쳐도,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고 치우는 일은 주부 16년 차임에도 도무지 재미가 없다(밀키트, 가끔은 배달음식을 이용해도 그렇다).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해 보던 때도 있었는데. 내가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디오북을 듣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월 정액 금액이 아까워져서 그것도 해지했다.


'이사 가고 내가 돈 벌면, 대형 식기세척기를 꼭 살 테야!'


식기세척기를 사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를 생각한다. 다섯 식구라 밥그릇 하나씩 컵 하나씩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것이 내 이 지루한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다 또.. 설거지 하는 시간이 내 뇌가 쉬거나, 혹은 이런 나 자신에 대한 잡다한 생각과 정리를 하는 시간임을 인지한다.


머리 식히기 위해 일부로 설거지 등 단순 노동을 하기도 한다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쓰고 싶은 글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대부분 설거지하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그냥 감사하자!'


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며칠 전 첫째가 운동 가기 너무 싫으니 오늘은 안 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을 했다. 이미 아파서 몇 번 빠진 상태였기에 그건 안 되겠다고 하다가.


"그럼 일단 들어가, 그래도 수업받기 너무 싫으면 돌아와. 그 정도는 하자"

라고 했더니,

둘째가 옆에서 "그럼 나는?"이라고 말을 한다.


매일 가기 싫다고 툴툴대는 첫째와 달리 그 정도는 인정하고 잘 다녀오는 둘째는 혼자라면 잘 다녀올 텐데, 이런 날은 꼭 같이 가기 싫다고 요구한다.


"너는 뭐. 아 제발! 너랑 첫째랑 매일 뭐든 다 똑같아야 해?"



주말이나 휴일이 더 힘든 이유는 나 빼고 모든 가족들이 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지 그냥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나면 바로 각자 방에 틀어박혀서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으며, 그것은 내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각자 마음속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다들 놀고 있는데 나만 계속 일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은, 똑같은 일을 혼자 하고 있을 때 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그가 옆에 있던 없던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데, 나는 사춘기 아이처럼 옆에 있는 사람이 놀고 있을 때는 자꾸만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다.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데도 이런 날들이 겹치면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가 하루 두세 시간 파트타임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휴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라는 생각이 갑자기 태풍처럼 휘몰아치다가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힘들고 듣기 싫은 말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냥 또 거기서 멈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들겠지.


내가 느끼기에 그는 자신의 힘들거나 부족한 부분을 나와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진심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거나 돈을 벌어서 이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니라면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지겨운 휴일을 비롯한 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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