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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Aug 06. 2023

내가 가난한 이유 02

고작 치킨 한 마리일 뿐인데..

고작 치킨 한 마리에 짜증


차라리 분유 같은 것은 구입하기 좀 편했다. 아이에게 맞는 것이 있었으니 이 제품 저 제품 따질 필요가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잘 맞는 분유가 정해지면 가격만 비교하고 구입하면 될 일이었는데. 물티슈나 기저귀 같은 것들은 구입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성능과 가격에 나는 여러 사이트를 열어놓고 개당 원 단위로 쪼개서 가격 비교를 하기도 했었다. 특히 특가라고 쓰여 있는 것들이 보일 때면 이것이 과연 저렴해서 많이 구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은 더 많아졌다.


돈이 없으니까, 부족하니까. 그거라도 아껴야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조금 더 아낀 금액은 고작 몇백 원에서 많아야 몇천 원일 것이다. 티도 안 나는 금액인데 그렇게 쇼핑을 하고 나면 머리도 아픈 것 같고 에너지가 바닥나곤 했다. 그래서 나에게 쇼핑은 늘 힘든 일이었는데, 아이가 셋이다 보니 사야 할 물건들은 늘 넘쳐났다.


고작 몇백 원 아낀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바닥난 에너지 충전 할 여유 따위 어디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늘 몸과 마음이 힘들다며 일상을 버거워했고, 그렇게 튀어나오는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지.






나는 그랬다. 내 머릿속에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늘 부족했고 나는 돈 한 푼 벌지 않는 인간이었으니 늘 쪼개고 쪼개 아껴야만 했다. 결혼 후 바로 첫 아이를 임신하고 돈 안 벌고 집에 있던 시절에는 내가 먹는 컵라면 하나를 아까워해서 봉지 라면과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런 하루를 보냈는데 늦게 들어온 남편이 출출하다며 치킨을 배달하자고 하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곤 했다. 기저귀값 몇백 원을 아낀다고 한 시간을 허비 한 나였기에 마음 편하게 같이 먹지도 못할 그 음식이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아이들 돌보고 나서 겨우 주저앉아볼까 하던 그 시간에 남편을 위한 야식을 해주는 것 같은 못 했고, 또 안 하고 싶었다. 아껴 쓸 줄 모르는 철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뭐, 집에서 편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사는 줄 아나.


그에게도 저녁을 못 먹었거나 혹은 그 시간에 나에게 밥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미안해서였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당시에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의 입속에 들어가는 그 비싼 치킨 한 조각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심지어 내가 이해도 못 하는 게임방송 TV를 틀어놓는 등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라니!)


고작 치킨 한 마리에 경제관념 없다는 등 대놓고 구박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가 벌어온 돈이라고 구분 지어 말한 적 없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튼 유일하게 돈 벌어오는 사람이었으니.


그래도 내 시선 끝 어딘가에는 '나도 저녁때 밥 한 끼 제대로 못 챙겨 먹었는데 사치를 하느냐' 하는 원망이 담겨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도 불편한 감정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자세히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도 분명 그 시기에는 내 눈치를 많이 보았다고 했다.




내 잘못이다. 나도 안다.


당시에 내가 그런 것에 스트레스 덜 받고 조금 더 많은 에너지를 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전달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모든 면에서 억척같이 아끼고 모아 목돈을 만들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좋은 마음으로 대하는 남편은 안정된 마음으로 일을 잘했을지도 모르고, 나 역시 그 에너지로 조금씩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도.


지금도 종종 나는 습관처럼 무언가를 살 때 담겨 있는 용량을 따져보고 단위를 쪼개 계산을 하면서 가격을 비교하다가 어느 순간 그러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기도 한다.


레버리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당시에 내가 그 말을 알았던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알아도 당시에는 잘 못 지켰을 것 같기도. 그래도 지금은 그런 몇백 원 몇천 원 아낀다고 힘 다 빼고 시간 쓰고 다른 것 못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고는 있다.


내 경제적 상황은 여전히 엄청나게 팍팍해서 그렇게라도 푼 돈 아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사실 모든 일에 다 그렇게 아껴가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끼고 저축하고 하는 것들이 나 혼자 아등바등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나 자신이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다른 일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될 것이다. 오래된 안 좋은 습관이 한 번에 고쳐지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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