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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May 16. 2024

우울증 치료 04

아침부터 왜 이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잘 자고 잘 일어났지만, 여전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머릿속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


.. 과는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심지어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 혹은 어제 있었던 일들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온갖 부정적인 기억들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원래도 무거웠던 감정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무언가 나를 자꾸만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는 느낌. 


무거운 정신과 몸을 이끌고 아이들 아침을 간단하게 챙겨주고 나면, 왠지 잠이 부족한 것 같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다시 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무거운 감정이 되었기에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편했던 아닐까. 


나는 어쩌면 감정이 무거운 것을 몸이 무겁다고 느끼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는지도 모르겠다.




약물 치료를 하기 전, 마음 챙김 책을 아주 감명 깊게 봤었다. 어려워 보이는 명상과는 달리 조금은 쉽게 느껴졌고 이것이야 말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행동으로 옮기고 변화를 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까지는 하고. 때때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그것들을 내쫓아버리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까지 막지는 못 하고 있다.


약물이 그러한 부분에 도움이 좀 될까 했는데, 아직까지는 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기억삭제처럼 한 번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그래도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은 있었는데. 




하루에 몇 번 감정이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것이 조금 더 많은 날이 있고 적은 날이 있고. 아마 나아진다는 것은 감정이 늪으로 빠지는 횟수와 날들이 적어진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여전히 아침은 늘 이모양이다. 잘 자고 잘 일어났으면서 스스로 하루를 망치려고 작정을 한 사람처럼. 


어느 순간 문득, 별 도움도 안 되고 도움이 된다고 해봤자 뭐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어차피 내 능력과 환경이 바뀌면 다 해결될 일인데 정신의학과 약은 그것을 해줄 수 없는 거잖아,라는 생각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고 올라오기도 한다. 


바꾸어야겠다, 바꾸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숨어서 나를 간지럽히는 것 같다. 우울증과 무기력증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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