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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Feb 04. 2023

거기는 가지 마.

가난을 이야기하다 03



동네에는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공사하는 모습이 오래 걸려 좋을 것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심 조금 천천히 완공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무너지는 과정은 오래 걸렸어도 새로 지어지는 것은 어찌나 빠르던지.


아이의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우리처럼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새 집으로 이사를 한 친구들도 있었고, 아이의 눈앞에는 깨끗하고 예쁜 놀이터가 생겼다. 아이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간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더 좋아했던 것은 새로운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그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래요"


예상했던 일이었다. 심지어 같이 논다는 친구들 중에 아이가 가고 싶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안의 놀이터에 그 아파트 주민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 오지 못 하게 한다거나, 심지어 통학하는 길목임에도 가로막는다는 등의 뉴스 기사를 많이 봤던 터라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거기는 안 가면 좋겠는데"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새로 생긴 아파트 놀이터에 그 아파트 주민도 아닌 동네 다른 아이들이 와서 노는 것이 꼴 보기 싫을 사람도 있을 것이었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여기 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여기 와서 노느냐고 직접 뭐라 싫은 말을 할 사람도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해서 동네 아이들이 좀 논다고 망가지는 것도 아닐 것, 어른들이 애들이 노는 것 좀 가지고 치사하게 뭐라 한다는 것을(직접 겪은 일은 아니다) 집단 이기주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싫은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힘겹게 겨우 마련한 새 아파트일 것이고, 누구는 그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낡은 집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버텨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놀이터 근처에 거주하면서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서 노는 것에 대한 소음 등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사회는, 다른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는 행동을 다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여유 있게 바라봐주고 지켜봐 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게다가 부모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 귀엽게 노는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초등 중 고학년의 아이들끼리 몰려와서 놀고 있는 그 옆에 그 아파트 주민의 어린아이가 치일 수도 있는 등 많은 상황이 있을 것이었으니. 내 아이에게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누군가에게는 항의를 할 만큼 싫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니 내 아이가 굳이 거기 가서 놀면서 그런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내 아이의 눈에는 그저 오픈되어 있는 새로운 놀이터만 있을 뿐이었다. 


"거기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던데?"


그렇다고 미리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겁을 주면서 어른들을 다 이기적이고 나쁜(아이의 시선에) 사람으로 포장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새로 생긴 아파트 놀이터에서 못 놀게 할 수 있을까. 






지금 학교와 친구들이 너무 좋으니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은 싫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좋은 새 건물과 그 좋을 내부를 상상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놀이터 하나만으로 아이는 "우리도 그 아파트로 이사 가면 좋겠다"라는 말을 간혹 했다. 


"그러게, 엄마도 그러고 싶다."


이 동네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비교 대상이 없으니 아이는 그저 만족해하며 지금 생활을 충분히 좋아했을 텐데. 동네가 좋아지면서 원치 않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지 친구들이 학원 시간에 쫓겨 같이 놀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아이의 관심사도 계속 바뀌어서 새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다는 마음도 시들해졌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 때에 충분히 제공해 주지 못 한 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다행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쉽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모든 것을 다 제 때에 이루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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