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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Mar 10. 2023

놀이터 원정대

가난을 이야기하다 04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형 아파트가 가장 부러운 것은 가격보다 '놀이터'였다. 매일 오른다는 집값이야 뭐 어차피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것까지 신경 쓰며 부러워할 시간은 없었는데. 


매일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었는데, 집 밖을 나가면 더러운 모래 위에 덩그러니 있는 그네와 미끄럼틀은 늘 나를 기운 빠지게 만들었다.


내 차도 없었고 종종 키즈카페나 체험하러 갈 돈도 없었으며 체력은 더더욱 없던 시절에 내가 좁아터진 집 안에만 있는 것을 답답해하는 아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와중에 교육에 관한 나름의 욕심은 있어서 하루종일 TV나 틀어놓고 있는 꼴은 못 보던 나였기에 주말만 되면 최선을 다해 유모차든 뭐든 끌고 아이들과 조금 더 나은 놀이터를 찾아다녔다. 


집값이 싼 곳은 생활환경이 좋지 않다. 큰 병원이나 공원 등에서는 거리가 멀게 마련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을까. 


아니, 가르쳐 주셨던들 그 상황에서 내가 그것들을 다 고려해서 집을 선택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을 만큼 나는 경제에 관해서 멍청했었다는 사실도 역시 종종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아무튼. 


나는 비가 오지 않고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날에는 놀이터가 있는 공원을 찾아다녔다. 아이 셋 이끌고 신경 쓰며 20 ~ 30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치는 체력이었기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것은 못 했지만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그러려니 하고 놔두고 저희들끼리 잘 놀곤 했다. 


오고 가는 길에 가끔씩은 그 길목에 있는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서 들려 잠깐씩 놀다 오기도 했고, 오래되긴 했지만 대형 아파트 단지에 살던 친할머니 집과 가까이 살 때에는 할머니네 집 앞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너무 많이 놀면 집에 올 때 짜증을 내고 힘들어하는데, 내가 안아주거나 할 수도 없었으니 적당히 체력을 조절해서 놀아야 하기도 했다. 


"이 아파트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조금 먼 공원, 혹은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서 종종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 앞에서 쓰린 감정을 애써 꿀꺽 삼켜야 했다. 가끔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날에는 거기서 내가 몇 마디 말이라도 하면 내 울분이 괜한 아이들 앞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 


그래도 결혼 시작할 때에는 작은 아파트 한 채 있었는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사치하거나 돈을 많이 쓴 일도 없는데 자산을 늘리지 못할 망정 까먹고 또 까먹고 있는 현실이라니. 


내가 돈 안 쓰고 아이들과 긍정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내 남편은 알기나 할까? 





나는 내 스트레스나 못난 감정들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때때로 아이들에게 내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 전달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가 가장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며 참으려 애를 쓰던 부분이었다. 


좋은데도 아니고 고작 놀이터에서 놀겠다고 그 먼 길을 오고 가며 내가 툴툴대면 아이들의 그 여정이 즐거울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없던 나였으니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꾹꾹 씹어서 삼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 괜찮았다. 그럴 수도 있지. 


조금 멀긴 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아이들은 그런 것으로 불평 불만 하면서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일부로 운동도 하는데 그 정도 걷는 일은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고, 다녀오면 샤워하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을 가장 외롭고 힘들게 했던 것은 그런 내 노력을 남편이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만큼이나 좁은 마음을 쥐고 있던 그였기에 그저 이런 내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그는 '왜 더 좋은 아파트를 구입하지 못하니'라는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대화의 패턴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 나는 혹여 내 말이 그에게 잘못 전달되고 서로 상처받을까 봐 대부분 입을 꾹 다물었고, 그러한 것들은 내 마음을 점점 더 가난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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