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이야기하다 05
예전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했다지만 요즘은 식탁 교육이라고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 많이 듣던 말이었다. 식탁 의자에 바르게 앉아서 TV를 보지 않고 밥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그래야 음식을 먹는 것에도 집중하면서 엄마와 대화도 하고 건강에도 좋고 식탁 예절도 배우고 뭐.. 그렇다나.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 중요한 식탁 교육이란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어도 편안하게 넘겼는데 시간의 흐르면서 문득문득 사소한 무언가가 그 부분에 턱 걸리면 짜증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아니 뭐, 식탁이 있어야 식탁 교육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식탁이 없다는 것은 집이 식탁을 놓을 수 있을 만큼 넓지 않다는 것이고, 그런 집에서 밥상은 TV앞에 놓기 가장 좋다. 대부분은 그 공간이 가장 넓거나 편한 경우가 많을 테니.
밥상 앞의 TV는 나를 자꾸만 유혹한다. 칭얼대는 아이 앞에서 꾹 참고 잘 넘어간 날도 있었지만, 공간만큼이나 마음이 좁은 나는 유혹을 못 참고 아이에게 편하게 밥을 먹이기 위해 TV를 켜기도 했다.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래도 나를 위한 TV프로그램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
그저 막연하게 어디서 좋은 말은 주워들은 것들이 있어서, 꼭 넓은 집이나 좋은 환경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라던가.. 좁고 불편해도 행복하게 좋은 것들을 잘 배울 수 있다던가.. 이런 이상적인 말들을 머릿속에 자꾸만 끄집어내면서 행동은 반대였다.
나는 주변 환경에 쉽게 휩쓸리는 나약하고 우울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밖으로는 여유 있는 척, 식탁 따위 없어도 괜찮은 척을 하면서 사실은 그 좁은 공간이나 나를 둘러싼 환경에 지배당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지질한 내가 자꾸만 충돌을 하며 점점 거리감이 생겼던 것 아니었을까. '좋은 식탁 교육'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고 밥 먹는 아이 앞에서 TV를 켜는 현실의 나 자신이 자꾸만 싫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꾸만 식탁 탓 작은 집 탓을 하고 싶은 못난 내 모습도 짜증이 나고, 그렇다고 아이에게 제대로 편안하게 밥 먹는 시간에 좋은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모자란 엄마라는 것도 짜증 나고.
한마디 더 보태자면..
간혹 남편이 있을 때면 꼭 본인을 위한 TV를 켜곤 했는데, 그것이 싫은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을 하지도 못했었다. 싫은데 싫은 이유도 설명을 못 했고, 했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안 그래도 제대로 된 식탁 교육도 못 하고 있는데 더 못 하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느낌?
그런 감정들이 쌓인 시간들을 꾸역꾸역 눌러 담고 있으니, 생소한 곳에서 나와는 상관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식탁 교육'같은 말에도 느닷없이 울컥, 울분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나도 안다. 식탁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원래도 마음 그릇이 아주 작디작은 나에게 '작은 집' '식탁도 없는'과 같은 '가난'과 관련된 환경들은 점점 더 나를 작아지고 치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