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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Feb 03. 2020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에 관하여

   최근에 '독서 운동'을 하신다는 분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근데, 솔직히 내가 여자애들한테 얘기하는데,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훨씬 나아. 여자애들이 읽은 책 남자애들이 읽은 책 내가 정확히 알아. 남자애들은 그래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읽어. 여자애들은 재미로 읽는 책만 되게 많이 봐. 독서량은 여자애들이 많을지언정 읽는 책은, 예를 들어 조던 피터슨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 20대 남자애들이 읽지, 20대 여자애들은 안 읽어. 그래 놓고 페미니즘 외치는 거야. 개소리하지 마. 어림없어."


   발언의 여성혐오적 요소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었으니 여기선 생략하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저분께서 추천한 책의 제목부터 보자. '12가지 인생의 법칙.' 인생의 법칙이 12가지로 정의될 수 있을까? 아니, 인생에 법칙이란 게 있을까? 피터슨이 말하는 법칙은 이런 식이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이런 류의 당연한 말을 12개 적어 놓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인생이 존재한다. 각자가 처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저마다의 특성과 성격이 다르다. 우리가 인생에서 방황하는 이유는 당연한 12가지 말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인생의 법칙'은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공허해진다. 가령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라는 법칙은 어떠한가? 만약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면? 아니면 어깨를 펴고 주장하려는 사상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라면? 이런 경우에도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야 할까?

   이렇게 삶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철학이 등장하고 문학이 나왔다. 철학은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로 인간을 파악하려고 했다. 문학은 다양한 군상을 실험해 인생을 이해하려고 했다. 철학과 문학은 인생을 '12가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삶을 직접적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쉽게 단정 짓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저분께서 말한 '재미로 읽는 책'은 아마 소설책을 일컫는 듯싶다. 차라리 소설책이 더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을 12가지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저분께서 운영하시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런 제목의 글이 나왔다. '오랫동안 행복한 연애를 하는 3가지 방법.' 이런 글 보다는 연애소설을 읽는 게 행복한 연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관계가 3가지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 참고로 피터슨은 철학자 지젝과의 토론에서 크게 망신당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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