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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Apr 22. 2020

아버지, 저를 왜 낳으셨나요?

프란츠 카프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세상의 많은 착각 가운데 가장 큰 착각을 고르라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착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곁에서 지켜봤으니까. 그러나 자식의 생각은 다르다. 소설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으로 ‘부모’를 꼽곤 한다. 자신의 내밀한 모습이, 자신을 굉장히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에게 드러나는 걸 막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편지라고는 하지만 편지치고는 꽤 긴 분량이고, 무엇보다 이 편지는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카프카는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아버지 앞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 냈다. 그가 이 글을 쓴 나이는 31살이다. 31살은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는 다 어른이 된 나이에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사춘기의 반항은 흔하다. 하지만 그 반항을 서른 살 때까지 간직하는 건 흔치 않다. 큰아들이었던 카프카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은 사춘기를 지나 결혼할 나이 때까지 이어졌고, 그의 전 생애를 지배했다. 이 편지를 쓰고 5년 뒤에 카프카는 사망했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리 특별하진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권위적인 아버지. 자신은 지키지 않는 계율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아버지. 왕성한 사업욕을 지닌 아버지와 달리, 카프카는 내향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그런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시한다. 심지어 그의 친구마저 무시한다. 아버지에게 무시받고 자란 카프카는 자신감을 잃고, 이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에게 세 번의 파혼을 안긴다. 그는 결혼생활을 위해선 “아버지한테서 보아온 모든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들’이란 바로 “강인함과 타인에 대한 경멸, 건강과 어느 정도의 무절제, 뛰어난 언변과 불충분한 설명, 자기 신뢰와 모든 것에 대한 불만족, 세상에 대한 우월감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억압, 인간에 대한 이해와 불신”이다. 카프카 자신에겐 없는 것들이다.

  편지의 말미에 카프카는 (자신이 상상한) 아버지의 반론을 인용한다. 반론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그 일로 고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내가 너를 결혼하지 않도록 도와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너는 편안히 몸을 쭉 뻗고서 네 자신을 나한테 떠맡긴 채 내가 이끄는 대로 그저 이끌리고자 한다. 너는 이 편지 자체만 보아도 아직 나한테 빌붙어 살고 있다.” 이는 카프카 자신의 내밀한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카프카는 결혼을 못한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리고자 했으나, 한편으론 독립을 두려워하며 아버지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아버지의 억압으로 인한 자신감 하락이, 그 억압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을 쓴 마르트 로베르는 근대소설을 두 종류로 나눈다. 아버지에 맞서 싸우는 소설과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떠나는 소설. 전자는 사실주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풍의 소설이고, 후자는 낭만주의 소설, 돈키호테풍의 소설이다. 카프카는 둘 다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와 대결하지도 못했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아버지에게 동화되어 또 다른 아버지가 되지도 못했다. 아버지에게 끈질기게 고통받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고통을 문학으로 기록했다. 마르트 로베르는 책의 말미에서 세 번째 유형의 소설, 카프카풍의 소설을 언급한다. 아버지(권위적인 존재)에게 저항하지도, 아버지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한 카프카의 소설이 독특한 위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불리는 소설이 사적인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인류는 새로운 소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지만, 카프카 개인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 전체를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로 해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그의 내밀한 고통에서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고통을 해석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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