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에 첫 손자를 본 외할머니
출산이란 힘든 선택
엄마는 당신의 외할머니를 은근히 어린 나에게 자랑을 하시곤 했다.
" 할매가 얼마나 깔끔하고 바르게 사시는지 절대 맨발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도 않으시대. 여름엔 하얀 모시 삼베 치마저고리를 빳빳하게 풀 먹여 입으시고... 늘 머리 한 올 흐트지지 않게 쪽 진 머리를 하고 계셨어"
증조외할머니는 조선 말기인 1899년 경 태어나셨으니 조선 시대의 여성교육을 받고 성장하신 분이셨음이 틀림없다. 조선 말기인 1900년대 초기엔 한성을 제외한 지방도시에 변변한 여성교육기관은 없었으니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여성을 위한 가정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1916년생이시니 일본이 식민지여성에게 요구한 여성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여겨진다. 이 두 분을 먼 기억 속에서 소환하면 두 분의 행동방식과 자식들을 대하는 무덤덤한 태도는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분 다 몸가짐을 청결하게 하시고 옷을 깔끔하게 입으셨다.
내 주위엔 이젠 얼마 안 계시지만 일제강점기 여성교육을 받으신, 아주 고령이신 그분들은 지금 60대인 우리보다 훨씬 더 청결개념이 강하시고 여성으로 어머니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아시는 것 같다. 교육기관을 통해 배우지 않았어도 가정에서 듣고 보고 체득한 지식으로 정말 이른 10대부터 자신의 삶에서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고 살아내셨다.
100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너무도 변했다. 모든 것이 외부기관의 교육에 의해 사고를 지배당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고 힘든 선택으로 진행된다.
나의 외할머니는 41세 때 손자를 보셨다
나의 어머니는 52세 때 손자를 보셨다.
나는 모녀 4대의 맨 아래인 내 딸이 출산이란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출산이란 과정을 통해 여성의 신비로움을 깨닫았다.
나는 내 딸도 같은 경험을 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그 신비롭고 자연스러운 잉태를 그리고 출산을 경험해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