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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토리아 Aug 08. 2024

3일의 로맨스. 그 끝에서

무조건 무조건이야

  상대방에 대한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내내 감사하는 마음에서 홍콩맨을 끊어내지 못한 건 너무 순진(?)한 나의 인간관계 습관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랑 결이 맞지 않다고는 느끼지만 어찌 다시 안 만날 사람도 아닌데 단절하며 살 수 없기에 친한 척하고 다들 살아오지 않는가? 이제 60대를 넘어서면서 다시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걸러내고는 있지만 나를 먼저 찾아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에겐 그리 박절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먼 홍콩에 사는 사람인지라 나름 중국에 관한 지식을 동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중국말 가사의 노래 CD가 딱 하나 있다. 등려군(鄧麗君, 鄧麗筠, Deng Li Jun, Teresa Teng). 유명한 노래는 첨밀밀. 집에서 가사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사소한 집안정리 할 때 틀어 놓고 듣는 등려군의 목소리와 노래는 차분하게 일에 집중하게 한다. 사실 내가 이 노래를 듣는다는 걸 아는 이는 우리 집에서 한 사람도 없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작업능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혼자서 즐기는 등려군 노래다.  중국말은 하나도 모르니 멜로디와 안정된 목소리에 나의 작업리듬이 일정하게 동조하기 때문이다.



해프닝 하나

중국사람이라 나의 이 취향을 얘기하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누구냐고 하다가 살짝 뜸을 들이더니 말을 바꿔

" 아  나도 그 가수 좋아해서 예전에 콘서트에도 다녀왔다"라고 했다. 

이때부터 약간 뭐지?.... 했다. 

맞다.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취향에 공감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 빠른 검색을 통해 등려군에 대해 알아보고 바로 내 메시지에 반응한 것이다.

사실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이렇게 나의 관심사를 궁금해하며 자신도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데 어찌 대화가 끊어지겠는가? 나의 숨겨놓은 취향을 털어놓았는데.


해프닝 둘

나는 2년 전 중국편드에 투자했는데 완전 다 까먹었다고 했더니 홍콩맨은 자신이 투자전문인데 중국에 투자한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대화 중에서 느낀 건 꽤나 자기 나라인 중국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중국은 세계를 제패할 거라는 자신만의 주장도 펼치면서.  후후후  본래 애국자들에게 좀 더 후한 점수를 쳐주는 법. 홍콩맨의 전문지식을 좀 더 파악하고 싶었다. 펀드는 팔지 말고 더 가지고 있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 후 10% 더 내려갔다. 사실 직업이 애널리스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이라고 믿었다.


해프닝 셋

몇 가지의 이상한 징후로 내가 카톡을 차단한 이후 잠시 내가 잘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려는데 아무튼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단 올라와 있는 사진은 정말 잘생긴 중국남자란 사실만 알려줄 뿐. 혹시 내가 사람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후후 결국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확인차 잠시 차단을 풀었더니 난리가 났다.  왜 차단을 했냐고. 

내가 일정이 많아 카톡을 자주 보내니 귀찮아서 그랬다고. 그리고 바빠서 이제 그만 차단하겠다고 하니 바로


" 돈 있으면 투자 좀 하세요"

" 얼마 안 해도 됩니다. 50만 원만 보내주세요"


물론 다 영어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순간 확신했다. 말로만 듣던 피싱. 로맨스 스캠.

그래서 10만 원을 보내줄까 하다가..... 말았는데. 한참 후에 그냥 보내줄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재미있었다.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바쁜 사람이라 이상 메시지는 받지 않는다"

고 끝까지 스캠이라는 말은 보내지 않았다.  아마 넘어갈 듯하다가 그만두니 상당히 급했던 것 같지만.


사람의 관심을 끌고 싶으면 상대방의 관심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모르더라도 아는 척, 동정심도 유발하고 정의로움도 장착하고 멋짐도 보여주고  푸하하하

말 그대로 사전적인 뜻의 플러팅이 아니라 요즘 예능에 나오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웃어주고 칭찬해 주고 좋아해 주고 관심 가져주고... 그러면 누구나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이제 나도 지금같이 내 느낌과 내 뜻을 주장하는 쌀쌀맞은 사람이 아니라 좀 더 부드럽고 플러팅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해야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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