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을 위한 사용 설명서
처음 보는 가전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부터 가구 조립 혹은 조그마한 장난감을 조립하기까지 사람들은 제품에 함께 동봉되어 있는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 설명서를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품이 지닌 제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
하지만, 설명서가 아무리 쉽고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더라도 제품 자체가 불량이라면 어떨까? 제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분명 설명서에서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눌렀는데, 제품이 명령을 무시한다거나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그 설명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설명서가 될 것이다. 설명서는 제품에 대해서 잘 아는 척 겉만 번지르르하게 써놓았지만 정작 제품의 기능을 쓰는 데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가 글의 제목을 ‘불량품을 위한 사용 설명서’라고 지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는 뭔가 아는 척 도움이 될 것 같은 척하며 글을 써 내려가겠지만, 내가 적을 글들은 모두 척하는 것일 뿐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자체가 불량품이기 때문이다.
나도 자기 계발서를 꾀나 읽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서점에 꼭 한 자리 차지 하고 있는 자기 계발서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공통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했는데 되더라.”
“네가 살고 있는 삶은 잘못된 삶이야.”
“지랄.”
여기서 지랄은 자기 계발서가 아닌 내가 한 말이다. 너는 상대를 무시했어. 내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놈인지 모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이와 비슷한 예로 예전에 직장 혹은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해 나의 사수쯤 되는 사람들은 모두 “편하게 형처럼 대해.” 혹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것 역시 나라는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실수이다. 뭐 친구처럼 대하라고 그는 내가 친구한테 어마어마한 개새끼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영민아 이 자료 제본 좀 해줄래?”
“얼마?”
“뭐?”
“얼마 줄 거냐고.”
“아니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해주면 되지.”
“안 어려우면 네가 해. 개새끼야.”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품에만 사용 설명서가 쓸모가 있듯이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듯 떠들어 댈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만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불량이다. 작가가 쓴 플롯대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지. 키스로 잠든 공주의 잠을 깨울 수 있는 상황에서 잠든 공주의 목걸이를 훔쳐 달아 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불량품의 사람이 불량품을 위한 사용설명서를 쓰고자 한다. 이 사용설명서에는 불량품의 사람이 조금이라도 세상에서 쓸모가 있어지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생존원리 같은 것이 담겨 있다. 물론 정상인에게는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고, 이 글을 쓰는 목적도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별종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일종의 생존신고와 같은 것이고, 일종의 푸념 혹은 광대짓이라고도 생각해도 좋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한 명의 광대로서 글을 찌그릴 것이고, 내가 쓴 글이 나와 같은 불량품의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웃음거리 혹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불량품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정상인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