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을 위한 사용 설명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말기인 거죠?
그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화면이 밝아지고 그가 질문을 건넨 상대는 남색 간호사복 차림의 여 간호사였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당에 모여 있는 쇼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에 대해서 묻고 있는 듯했고, 잠시간 간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난 병원복을 입은 사람의 정체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중 덜 아픈 사람 있어요?
간호사의 답변을 들은 그가 다시 한번 더 그녀에게 묻는다.
-왜 그러시죠?
-혹시 맞을 일이 있을까 해서요.
그의 말에 간호사가 피식하고 웃는다.
-제가 하는 일이 스탠드 업 코미디잖아요 그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쇼가 끝나기까지 제가 서있어야 된다는 말이거든요. 여기서 자신이 체격이 크다거나 혹은 운동을 배웠다거나 왕년에 힘을 쓰는 일을 했다 하시는 분들 잠깐 손 한 번 들어주실 수 있나요?
그가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에게 꺼낸 첫마디.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은 없었고, 사람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한다. 그러자 그가 안전부절 못 하는 연기를 하면서 마이크를 쥔 채 간호사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당황한 사람은 간호사 쪽이다.
-간호사님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요.
그는 속삭이는 시늉만을 할 뿐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와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관객 모두에게 전해진다. 그는 다시 정면을 쳐다보며 관객들을 향해 말한다.
-사실 원래 쇼를 시작하기 전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보호장비를 착용하는데,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라 해서 걱정 없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정정하신 분들이 많네요. 제가 1대 1은 자신 있는데 다구리는 장사가 없더라고요.
그의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환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일단 그럼 먼저 시작하기 전에 자리를 좀 바꿀게요. 음.. 죄송한데 거기 남성분이랑 앞에 여성분 자리 좀 바꿔주실래요? 통제가 가능하신 간호사분 들 중 한 분만 더 여기 제 앞에 와주시고요. 이왕이면 덩치가 크신 분으로. 네 방금 저랑 눈 마주치신 분이 좋겠네요.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가 시키는 대로 자리를 바꿔준다.
-이제 좀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네요.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 그리고 앞에 여성분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다시 한번의 폭소가 이어진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곧바로 자신의 짝을 찾으려고 하죠. 간호사님들도 여기 있는 분들 잘 감시해요. 서로 언제 눈을 맞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여기 있는 분들은 더 이상 뒤가 없는 분들이라서 특히 더 감시를 잘해야 해요. 비어있는 방이 문이 잠겨있진 않나 항상 확인하시고요. 성스러운 병동에서 문란한 행위가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앞에 여성분 남자친구분 있으시다고요?
효인이 보란 듯이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곤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남편이 있어요.
그가 지목한 여성이 말했다.
-남편분은 여기 없죠?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일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사실 죽을병에 걸렸거든요. (시계를 쳐다보면서) 저 한 네 시간 뒤면 죽을 거 같은데. 그전에 찐하게 연애나 하지 않을래요? 제 사정을 알면 남편분도 허락해 주실 거 같기도 한데.
다시 한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는 그런 웃음소리가 익숙하다는 듯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멈추기까지 잠시 말을 멈춘다.
-사실 이전에도 시한부랑 연애를 한 적이 있어요. 미애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였는데, 하루는 저한테 자기가 너무 폐만 끼치는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미애 넌 당당한 게 매력이라고 너 자신답게 행동하라고 했더니 다음날 죽어버렸죠.
다시 한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제가 그녀가 시한부라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잊을게 따로 있지.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러분답게 행동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 눈치도 좀 보고 가면도 좀 쓰고. 조금이라도 오래 사시려고 여기 있으신 거잖아요.
시한부를 대상으로 한 농담치고는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객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폭소를 터뜨린다. 그는 웃음이 멎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며 자신이 코미디언이라는 사실과 함께 효인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여기 병실에 오래 있다 보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제가 가끔 문제를 내기도 하거든요. 아무래도 상품이 걸려있으면 집중을 잘하시니까. 그래서 팀을 나눠서 가장 점수가 좋은 팀에게 상품을 증정해 드리려고 하는데. 팀을 어떻게 나누는 게 좋을까요?
그가 없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하는 척 뜸을 들이고, 관객들은 그가 다음 말을 하기까지 숨을 죽인 채 그를 기다린다.
-아무래도 걸린 암 종류로 하는 게 좋겠죠? 공통점이 그거밖에 없으니. 그럼 폐암팀 한 번 손들어볼까요?
폐암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손을 든다.
-네 좋아요. 그럼 다음으로 간암팀?
이번엔 간암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손을 든다. 그는 차례로 암의 종류를 말하며 손을 든 사람들을 차례로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에겐 기타부속 암팀이라는 팀명을 지어주었다.
-사실 근데 여기 있는 분들 모두 곧 죽을 사람인데 상품이 뭐가 필요 있겠냐 하실 수도 있어요. 상품으로 드라이기를 받아봐야 다 빠진 머리 때문에 말릴 머리도 없으실 테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딱 맞는 선물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다시 한번 폐암팀 한 번 손 들어볼까요?
그의 말에 폐암팀이 손을 든다. 그는 들고 온 종이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여러분들을 위해선 제가 말보루 레드 한 보루를 가져왔습니다. 말보루 레드가 담배 중엔 최고봉인 거 아시죠? 사실 전 모르거든요 저는 술 담배를 안 해서. 오래 살고 싶어거든요.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우승하시면 조금 있다 병동 주차장에 흰색 모닝 앞으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번 농담은 아무리 웃음을 위한 것이라지만 살짝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제겐 친구 같은 할아버지가 한 명 있었어요. 건망증이 심했죠. 하루는 제가 그에게 건강이 걱정된다고 담배를 끊으라 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한대만 피고 담배를 끊겠다고 했죠. 그리고 그는 그렇게 5년간 꾸준히 하루에 한 번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피고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그를 존경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죠. 주변 상황에 상관하지 않고 처음처럼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스탠딩’ 이거든요.
과거에 내가 썼던 소설의 일부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고 자니 윤 선생님의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을 접하고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효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흔히 가장 친한 친구를 ‘x랄 친구’라고 부르듯 나는 아직도 그 친구의 연락처를 ‘양 x랄 중 오른쪽 xx’라고 저장해 두었다. 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더라도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져 현재의 상황을 모두 잊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친구.
아직도 나는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쌓여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할 때, 그를 찾곤 한다. 그와 만나면 잠시라도 머리에 가득 찬 생각들을 배설하고, 올바른 경로를 재탐색할 수 있으니깐. 효인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영원한 이정표 같은 친구이다.
왜인지 소설을 쓰기 위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코미디언’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면서 자꾸만 그 친구가 생각났다. 내가 그를 떠올린 것은 물론 그가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항상 광대짓을 하는 이유 때문도 있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가 내게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결정적이라고는 말은 해도 사실 그 당시 그가 내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분위기와 조각 같은 기억들로 그때 그가 어떤 말을 했었다 하고 추측을 할 뿐이지. 앞서 말했듯 나는 불량품이고, 그때는 특히 알코올이라는 연료를 주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억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었다.(불량품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연료는 딱 세 가지이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
그럼에도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만큼은 명확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해보라는 것. 현 상황을 버틸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계속해서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단순 작가가 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목표에 심취해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쓴 지 6년이 넘어간다. 지난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총 10편이라는 장편소설을 써왔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 글은 노력이 아닌 재능의 영역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억지로 귀를 닫은 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꿈꾸어 왔던 이상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날 발견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란 또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상실하게 될 것들에 대한 고통을 겪을 충분한 자원 혹은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불쑥 찾아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이런 생각들은 나를 내가 만든 링 위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링 위에 서있는 것은 ‘나’뿐이고, 나의 처절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은 링 위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하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인생을 복싱이라는 게임에 비유하자면, 나는 상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는 상대를 쓰러뜨릴 체중을 실은 훅을 포기했고, 시간이 지나 스트레이트와 잽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 내게 남은 것은 가드 밖에 없다. 가드는 링 위에 버티고 서있기 위한 최후의 수단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오직 서 있기 위한 힘만 남을 때까지 계속해서 얻어맞다 보니 나는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그제야 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에 쓴 ‘스탠딩’이라는 소설 역시 그 깨달음에서 비롯한 소설이다.
상대에게 눕힐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땅에 두 발을 버티고 고집스럽게 서있는 것 다른 이들은 그런 나를 두고 우둔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나의 가치관이며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복싱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은 상대를 얼마나 때려눕혔는가가 아닌 링 위에 오래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실제 복싱 경기에서는 승패를 판단해 줄 심판이라도 있지만 현실에는 승패를 판단해 줄 심판조차도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 속에서의 규칙처럼 모든 세상의 규칙이 공정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지만, 세상의 규칙은 그리 공정하지 않다. 사람이 만든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공정해지길 바라는 사람의 숙원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만 가지의 게임에도 모두 똑같이 적용되는 승리 조건이 하나 있다면 그건 그 자리 그대로 남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가만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게임에서 이길 수는 없을지언정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불공정한 게임을 만들어낸 사람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오직 묵묵히 자리를 잡고 서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규칙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들은 자신의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상대를 바라보며 약이 오르거나 혹은 상대를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다 제 풀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불공정한 게임 속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오직 스탠딩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