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을 위한 사용 설명서
오래전 내가 했던 실수라는 이름의 침대 위에 누워 내가 가진 불안이라는 베개를 베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할 때면, 나의 주변에 널려 있는 불안들로 인해 항상 잠이 들기가 힘들다.
하루를 이루는 낮과 밤 중 낮에는 몸을 움직이느라 뒤로 미루어 왔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덮치고, 매일 있는 밤 같은 시간이 되면 나는 그러한 생각들과 전쟁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그렇게 밤새 생각들과 전쟁을 하다 보면 내가 잠을 청해야 하는 밤이라는 시간은 금방이고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아닌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하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가히 ‘불면의 시대’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잠이 들지 않는 밤. 깜깜한 방을 홀로 밝히는 휴대전화의 하얀 불 빛 속 인스타그램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그럴 때면 분한 마음이라는 제목의 자장가까지 더해져 그날은 잠을 다 잔 것이라 보면 된다.
나도 가끔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린다.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발견했다거나 평소에 접할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할 때면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꼭 내가 웨어링 작가의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사진 작품 속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사진 작품에는 한 중년의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너무 신이 나서 콧노래라도 부르지 않고는 신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만큼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응시하고 있지만, 그가 들고 있는 종이 팻말에는 ‘I’m desperate’라는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적혀있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태도가 이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떨린 다리를 부여잡고 지원한 회사에 면접을 잘 보기 위해 웃는 표정을 연습하고 있는 지원자를 떠올려 보라.
모두가 자신이 가진 불안을 감추고 오직 환한 표정으로만 사람들을 맞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이로 하여금 그의 미소는 또다시 불안의 요소가 되고, 어쩌면 나의 모습조차 타인에게는 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가히 말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불안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불안을 그림자로 비유하자면 그림자가 어느 정도 짙은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흰 벽에서 조차 그림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말 내가 가진 불안은 내가 없애야만 하는 장애물 같은 것일까?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나의 뇌는 그렇다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는 역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역치는 사람이 행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외부 자극을 의미하고 사람들은 이 역치보다 큰 세기의 자극을 수용했을 때만 비로소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있다. 즉 불안은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림의 명암이다. 그림에 명암이 존재해야만이 그림은 생기를 가지고 빛나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강한 그림자를 그려 넣어야만 한다. 즉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상은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명암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훗날 만나게 될 경험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코카콜라의 맛은 동일하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콜라(실제로 운동을 마치고 콜라를 마시면 후회하기 마련이지만)와 음식을 시켰을 때 서비스로 따라 나와 억지로 마시게 된 콜라의 맛은 어쩐지 다른 것 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내가 가지게 된 힘든 경험은 미래에 만나게 될 행복한 경험을 배가 시켜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불안은 기대가 될 수 있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나뿐 아니라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 때문이 아닌 미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불안하고 불안으로 인해 행동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내가 가지게 될 상황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줄 것이니 말이다.
사람에게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불안이 불행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불안이 포기가 아닌 행동으로 이루어질 때 결국 우리는 원하는 상황을 모두 가지게 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도 나는 불안에 의해 잠을 못 이루고 있기에 이런 글을 써 내려가고 있으면서 다음 날 사람을 만날 때면 또다시 환하게 웃는 표정을 연습해야겠지만, 나는 먼 훗날 나뿐 아니라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자신이 들고 있는 ‘나는 절망적이다.’라는 종이 팻말을 찢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오늘도 겨우 눈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