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오지여행 에세이의 시작
얼마 전 20대 중반에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이 만료됐다. 새로운 여권을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구여권을 가만히 들춰봤다. 이리저리 방황하고, 깨지고 아픔을 여행으로 위로받던 젊은 시절이 이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참 많이도 다녔고, 참 많이도 흔들렸다
어느덧 내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많이 흔들렸던 결과, 점차 나이테 많은 튼튼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고 옆에는 나보다 좀 더 튼튼한 나무줄기들이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쓸 수 있을 거라는 결심이 섰다. 이미 만료되어 버린 여권, 더 이상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는 것. 용량이 꽉 찼다는 메시지를 사정없이 뿜어내는 클라우드와 동시에 이 여권도 가볍게 만들어보자는 생각. 내 불안했던 청춘, 십 년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이십 대 중반, 맨 처음 떠났던 여행지는 "인도"였다. 지금이야 유튜브의 대중화로 많은 사람들이 오지 여행에 친숙해졌지만, 2010년도 초반, 오지 여행에 대해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인생을 보며 내 인생을 위안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여행으로 세상의 다른 '삶'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떴다. 배낭여행이 처음이다 보니 함께 갔던 이들과도 마찰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몰라 많이 흔들렸다. 참 어렸고, 연약했고, 철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티베트 끝자락에서 내 인생 여행지를 만났다.
그 후로 월급을 모아 열심히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신년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떠났던 라오스 여행, 아무 생각 없이 휘리릭 떠났던 대만 여행, 돈이 없어서 무전여행 비슷하게 떠났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주말에 수시로 떠났던 일본여행까지. 여행을 가면 마치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십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계속되는 사랑의 실패, 그리고 사람들과의 지독한 관계 중독.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 같다는 피해의식까지 절어 있으며 그들에게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관종 증상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구 엉켜있는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세상의 정 반대편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남미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두 개의 해가 뜨는 모습도 보고 싶었고, 잉카 제국의 미스터리 문명이라는 마추픽추도 가보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찬 곳 말고, 하루를 힘들게 버텨내는 삶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곳에서 숨을 쉬고 싶었다.
남미 여행은 내게 큰 에너지를 가져다주었고, 그 후론 인생이 잘 풀리는가 싶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명예도 쌓였고, 돈도 쌓였다. 주변엔 늘 사람들로 북적댔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쭐대며 얼마간 지냈던 것 같다. 모래성은 무너지기 쉽다고 했던가, 튼튼하지 않은 바닥에 쌓은 내 궁전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전보다 더 큰 회의감과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 번 꼬인 일은 계속 꼬였고, 그 결과 내 명예와 꿈 또한 산산조각 났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라며 독기를 품은 내 삶은 당연 온전치 않았다. 열심히 살지만 늘 뭔가가 비어있는 느낌. 너무 아까운 내 젊은 시절. 그리고 나는 "몽골"로 떠났다. 초원을 지나며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몽골에서 치열하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삶을 정갈하게 만들어 나가는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
여행에서 복귀한 후,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지만 길게 가지 못했고, 또 너무 조급했다. 망상증인 건지, 욕심인 건지 내가 하면 다 잘될 것 같았고, 나는 생각한 대로 완벽하게 살 줄 알았다. 결국 예전의 내 불안했던 모습에 기폭제를 더한 꼴이 됐다. 끝이 어딘지 모르고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기차처럼.
브레이크 없이 돌진하는 기차는 결국 처참히 부서졌다. 인생이 끝나는 것 같던 시절. 쌓이고 쌓였던 내 모든 모습들을 뒤로 한채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산다는 것이 버거웠던 그때, 나는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정신적으로 힘든 여행이었지만,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어. 그것으로 된 거야, 제대로 다시 시작하자"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후로 내 인생은 180도 변했다. 내 모습을 냉정하게 보기 시작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내 습관과 감정까지 매 순간 자각하고 기록하며 살았다. 책을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고,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남는 시간은 재테크 공부와 모임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며, 오랜 방황 끝 허투루 쓴 돈을 메꿔야 했다. 튼튼한 나를 만들기 위해 경제력과 능력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낸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 오지 여행을 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잘 찾지도 않는다. 혼자의 시간이 즐겁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과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이젠 쓸 수 있어졌다. 참혹했던 시절, 내 오지 여행기